자 미상 · 미상 ~ 미상 (205년 이후) · 미상 · 원소 휘하
초촉과 함께 원희를 등지고 유주의 현을 들어 조조에게 항복한 하북의 무장
출전 · 『삼국지』 위서 무제기 · 원소전 · 『후한서』 원소전 · 『삼국지』 촉서 선주전 · 오서 육손전
장남은 원소의 둘째 아들로 유주를 맡은 원희의 대장이었습니다. 자와 출신, 태어나고 죽은 해는 전하지 않고, 『삼국지』 무제기와 원소전, 『후한서』 원소전에 초촉과 나란히 이름이 한 번씩 나올 뿐입니다.
건안 10년(205) 정월 조조가 남피에서 원담을 베어 기주를 평정하자, 무제기는 그달에 원희의 대장 초촉과 장남 등이 배반해 원희와 원상을 치니 두 형제가 삼군의 오환으로 달아났고, 초촉 등이 그 현을 들어 항복해 열후에 봉해졌다고 적습니다. 원소전은 두 사람에게 공격받은 원희와 원상이 요서의 오환으로 달아났다고 적습니다.
원소전은 이어 초촉이 스스로 유주자사라 일컫고 여러 군의 태수와 현령 · 현장을 몰아 원씨를 등지고 조씨에게 붙었다고 전합니다. 초촉은 군사 수만을 벌여 세우고 흰 말을 잡아 맹세하며 명을 어기는 자는 베겠다고 했고, 모두 차례로 피를 마셨습니다. 별가 한형만은 원공 부자에게 두터운 은혜를 입고도 그 집안이 망하는 것을 구하지도 따라 죽지도 못했다며, 북면해 조씨를 섬기는 일만은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초촉은 큰일을 하는 데 한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며 한형의 뜻을 이루게 두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장남이 무엇을 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사서에 남은 것은 이것뿐입니다. 열후가 된 뒤 장남이 무슨 벼슬을 했는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전하지 않습니다. 같은 해 4월 고안의 조독 · 곽노 등이 유주자사와 탁군태수를 죽였다는 무제기의 기록이 있으나, 죽은 이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장무 2년(222) 유비를 따라 오를 치다 효정에서 죽은 촉의 장남은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입니다.
袁熙大將焦觸、張南等叛攻熙、尚,熙、尚奔三郡烏丸觸等舉其縣降,封爲列侯『삼국연의』 제33회 · 제41회 · 제48회
연의에서 장남은 제33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가 남피에서 원담을 베고 백성을 달래던 때, 원희의 부장 초촉과 장남이 한 무리 군사를 이끌고 와서 창을 거꾸로 들고 갑옷을 벗어 항복하고, 조조는 두 사람을 열후에 봉합니다. 곽가가 원씨의 항장 초촉 · 장남 등에게 원씨를 치게 하자고 하자, 조조는 초촉 · 장남 · 여광 · 여상 · 마연 · 장의에게 저마다 제 군사를 이끌고 세 길로 유주를 치게 합니다. 원희와 원상은 맞설 수 없음을 알고 요서의 오환으로 달아나고, 유주에서 원씨를 등지자는 피의 맹세는 유주자사 오환촉이라는 사람이 이끕니다.
제41회 장판에서는 원소 수하에서 항복한 장수로서 초촉과 함께 조운의 앞길을 막고, 뒤에서는 마연 · 장의가 쫓아옵니다. 조운은 네 장수와 싸우다 청강검을 휘둘러 에움을 뚫고 나갑니다.
마지막은 제48회입니다. 조조가 청주 · 서주 · 연 · 대의 군사는 배에 익숙하지 않다고 하자, 원소 수하의 옛 장수 초촉과 장남이 나서서 유주와 연 땅 사람이라도 배를 탈 줄 안다며 순찰선 스무 척을 빌려 달라고 합니다. 조조가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해도 이기지 못하면 군법을 달게 받겠다고 하니, 조조는 배 스무 척과 날랜 군사 오백을 내주고 문빙에게 배 서른 척으로 뒤를 받치게 합니다. 초촉은 장남과 배를 절반씩 나누어 이끌겠다고 합니다. 이튿날 초촉은 뱃머리에 선 한당의 창에 찔려 죽고, 뒤따라 소리치며 달려든 장남은 칠팔 척 떨어진 배에서 몸을 날려 건너온 주태의 칼에 베여 물에 떨어집니다. 연의에서 장남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하북에서 왔소.
형세를 읽었을 뿐, 배신이라 마시오.
북방의 바람은 읽기 어려운 법이오.
…또 바람이 바뀌는가.
이번엔 제대로 골라야 한다.
줄을 제대로 선 값이오.
난세 탓이라 해 두겠소.
바람이 우리 편이오.
…오환의 바람이 차구려.
…오환의 바람이 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