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 ~ 198년 · 미상 · 여포 휘하
적진을 늘 무너뜨린 함진영의 주역이자 여포 휘하에서 가장 청렴했던 명장
출전 · 『삼국지』 위서 여포전과 배송지 주의 『영웅기』 · 무제기 · 촉서 선주전과 배송지 주의 『영웅기』 · 위서 하후돈전 · 『후한서』 여포전 · 효헌제기
고순은 여포의 장수입니다. 자와 출신, 태어난 해는 전하지 않습니다. 『삼국지』에 제 전은 없고 여포전 · 무제기 · 선주전에 이름이 나오며, 그의 사람됨은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영웅기』와 『후한서』 여포전이 전합니다. 『영웅기』는 그를 여포의 도독이라 부르고, 『후한서』는 독장, 선주전 주의 『영웅기』는 중랑장이라 적습니다.
『영웅기』에 따르면 건안 원년(196) 6월 한밤에 하내 사람인 여포의 장수 학맹이 군사를 이끌고 여포가 머물던 하비의 관아로 쳐들어왔습니다. 누가 일으킨 반란인지 모르던 여포는 아내를 이끌고 맨머리에 웃옷도 걸치지 못한 채 뒷간의 벽을 밀치고 나와 고순의 진영으로 갔습니다. 고순이 짚이는 데가 있느냐고 묻자 여포는 「하내 사람의 목소리였다」고 했고, 고순은 「이는 학맹입니다」 하고는 곧 군사를 갖추어 관아로 들어가 활과 쇠뇌로 학맹의 무리를 쏘아 흩었습니다. 학맹의 장수 조성이 학맹을 등지고 맞서 싸워 그의 한쪽 팔을 베자, 고순이 학맹의 목을 베었습니다.
『영웅기』는 고순이 깨끗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남이 보내는 선물을 받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그가 거느린 군사는 칠백여 명이었으나 천 명이라 일컬었고, 갑옷과 싸움 도구가 모두 정밀하고 가지런해 치는 곳마다 깨뜨리지 못한 적이 없어 「함진영」이라 불렸습니다. 『후한서』도 그가 말수가 적고 군사를 가지런히 이끌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이겼다고 적습니다. 태산의 장패가 거를 깨뜨리자 여포가 몸소 거로 가려 했을 때, 고순은 장군께서 몸소 동탁을 죽여 위엄이 떨치니 가벼이 군사를 내서는 안 되고 만약 이기지 못하면 이름을 잃는 것이 작지 않다고 말렸습니다. 여포는 듣지 않았고 거를 떨어뜨리지 못한 채 하비로 돌아왔습니다.
『후한서』는 여포가 결정이 가볍고 하는 일에 일정함이 없었다고 적습니다. 『영웅기』에 따르면 고순은 늘 「집안을 깨뜨리고 나라를 잃는 것은 충신과 밝은 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쓰이지 않아서입니다. 장군께서는 움직이실 때 자세히 생각하려 하지 않고 걸핏하면 잘못했다고 하시니, 잘못을 어찌 거듭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간했습니다. 여포는 그의 충성을 알면서도 쓰지 못했고, 학맹의 반란 뒤로는 그를 더 멀리했습니다. 여포는 안팎으로 친척이 되는 위속에게 고순이 거느리던 군사를 모두 빼앗아 주고, 싸울 때가 되면 위속이 거느린 군사를 고순에게 맡겼습니다. 고순은 끝내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건안 3년(198) 여포가 다시 원술 편에 서자 고순은 소패의 유비를 쳐서 깨뜨렸고, 조조가 유비를 구하러 보낸 하후돈도 고순에게 졌습니다. 선주전 주의 『영웅기』에 따르면 그해 봄 여포가 하내로 말을 사러 보낸 금을 유비의 군사가 빼앗자 여포는 중랑장 고순과 북지태수 장료 등을 보내 유비를 쳤고, 9월에 소패성을 깨뜨려 유비는 홀몸으로 달아나고 그 처자가 사로잡혔습니다. 선주전은 고순이 유비의 처자를 사로잡아 여포에게 보냈다고 적습니다.
조조가 몸소 하비를 에워싸자,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는 진궁과 고순에게 성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기병을 이끌고 나가 조조의 양식 길을 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여포의 아내가 진궁과 고순은 본디 사이가 좋지 않아 장군이 나가시면 한마음으로 성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며 말려 여포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에워싸인 지 석 달 만에 여포의 장수 후성 · 송헌 · 위속이 진궁을 묶고 무리를 이끌어 항복했고, 『후한서』는 이때 후성이 장수들과 함께 진궁과 고순을 붙잡았다고 적습니다. 백문루에서 내려와 항복한 여포를 조조는 목 졸라 죽였고, 여포 · 진궁 · 고순 등의 머리를 모두 허로 보낸 뒤 장사 지냈습니다. 『후한서』는 셋을 모두 목 졸라 죽였다고 적습니다. 고순의 집안과 자손은 전하지 않습니다.
順爲人清白有威嚴,不飲酒,不受饋遺所將七百餘兵,號爲千人,鎧甲鬬具皆精練齊整,每所攻擊無不破者,名爲陷陣營『삼국연의』 제11~12회 · 제14~19회
연의에서 고순은 제11회에 처음 나옵니다. 복양에서 진궁이 서쪽 영채를 지키라고 하자 여포는 고순과 위속 · 후성을 보내는데, 조조가 먼저 영채를 빼앗자 사경 무렵 이른 고순이 조조와 어지러이 싸우고, 여포가 오자 위속 · 후성과 함께 조조를 뒤쫓습니다. 제12회에서는 복양성에서 후성의 뒤를 맡아 나와 싸우다 성으로 물러나고, 불길 속에서 남문으로 달아나는 조조의 길을 후성과 막지만 전위가 뚫고 나갑니다. 정도를 잃게 되자 진궁과 함께 여포의 가솔을 지켜 달아납니다.
제14회에서 여포가 서주를 빼앗을 때 뒤따르고, 제15회에서는 원술이 재물을 약속하자 군사 5만으로 유비의 뒤를 치러 갔다가 유비가 이미 떠난 것을 알고 원술의 장수 기령에게 약속한 물건을 내놓으라 합니다. 제16회에서 소패를 지키고, 제17회에서는 원술의 일곱 갈래 군을 맞아 소패로 나가 교유를 막습니다.
제18회에서 여포는 유비가 조조에게 보낸 답장을 손에 넣고 고순과 장료에게 소패를 치게 합니다. 고순은 구원 온 하후돈과 사오십 합을 싸우다 져서 진을 돌아 달아나는데, 진 위의 조성이 몰래 쏜 화살이 하후돈의 왼눈에 박힙니다. 하후돈은 화살을 뽑다 딸려 나온 눈알을 「아비의 정기요 어미의 피」라며 삼키고 조성을 찔러 죽입니다. 하후돈이 돌아서자 고순은 뒤를 쳐서 조조의 군사를 크게 깨뜨립니다. 제19회에서 고순은 장료와 관우의 영채를 쳐서 유비를 소패에서 몰아내고, 장료와 함께 소패를 지키다 진등의 거짓 소식에 성을 비우게 됩니다.
하비에 갇힌 뒤 고순은 장료와 함께 딸을 등에 업은 여포를 따라 포위를 뚫으려다 막혀 돌아옵니다. 성이 떨어질 때 장료와 서문에 있다가 물에 막혀 사로잡히고, 조조가 「할 말이 있느냐」 묻자 대답하지 않아 노한 조조가 목을 베게 합니다. 연의에서 고순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함진영이 나간다.
함진영은 말이 없소. 뚫을 뿐이오.
긴말은 필요 없소. 시작합시다.
…진이 흔들리는가.
다시 조이면 될 일.
무너지지 않는 진은 없소.
주공이 내 말을 들었더라면….
막아선 진은 다 열렸다.
…말없이 물러나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