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원(子遠) · 미상 ~ 미상 (204년 이후) · 형주 남양군 · 원소 휘하
오소 기습으로 관도대전의 판도를 뒤집었으나 오만함에 자멸한 책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최염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무제기와 배송지 주의 『구주춘추』 · 『한진춘추』 · 『조만전』 · 원소전과 배송지 주의 『영웅기』 · 순욱전 · 순유전 · 『후한서』 원소전
허유는 자가 자원이며 남양 사람입니다. 『삼국지』에 제 전은 없고, 그의 일은 무제기 · 원소전 · 순욱전 · 순유전과 『후한서』 원소전에 흩어져 있으며, 최염전 본문의 몇 마디와 그 주에 인용된 『위략』의 짧은 전기가 있습니다. 『위략』은 그가 젊어서 원소, 조조와 사이가 좋았다고 적습니다.
영제 때 기주자사 왕분은 남양의 허유, 패국의 주정 등과 호걸들을 모아 영제를 폐하고 합비후를 세우려 꾀했고, 이를 조조에게 알렸으나 조조는 거절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구주춘추』에 따르면 이들은 영제가 하간의 옛집으로 북쪽 나들이를 하는 틈에 일을 일으키려 했으나, 영제가 길을 멈추고 왕분을 불러들이자 왕분은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일은 실패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영웅기』에 따르면 원소가 동탁을 피해 달아날 때 허유는 봉기와 함께 그를 따라 기주로 갔습니다. 원소가 네 주를 차지하고 남쪽으로 허를 치려 할 때, 원소전은 심배와 봉기에게 군사를 맡기고 전풍 · 순심 · 허유를 모주(꾀를 맡은 으뜸 참모)로 삼았다고 적습니다. 공융이 순욱에게 「전풍과 허유는 지혜와 꾀가 있는 선비로 원소를 위해 꾀한다」며 걱정하자, 순욱은 「허유는 탐욕스러워 몸을 다스리지 못한다」고 하고, 심배와 봉기가 뒷일을 맡으니 허유의 집안이 법을 어기면 반드시 놓아주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허유가 반드시 변을 일으키리라고 헤아렸습니다.
건안 5년(200) 원소와 조조가 관도에서 맞섰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한진춘추』에 따르면 허유는 원소에게 조조와 맞붙지 말고 군사를 나누어 붙잡아 둔 채 다른 길로 천자를 맞으라고 권했으나, 원소가 먼저 에워싸 빼앗겠다며 듣지 않자 노했습니다. 『후한서』 원소전은 허유가 조조는 군사가 적은데 모두를 끌고 나왔으니 허에 남은 수비는 틀림없이 비고 약할 것이라며 가벼운 군사를 나누어 허를 덮치자고 했으나 원소가 쓰지 못했다고 적습니다. 마침 허유의 집안이 법을 어겨 심배가 붙잡아 가두자 허유는 뜻을 얻지 못해 조조에게 달아났습니다. 순욱전은 심배가 그의 아내와 자식을 거두어 가두자 허유가 노하여 원소를 배반했다고 하여 순욱이 헤아린 그대로였다고 적고, 무제기는 재물을 탐하는 허유를 원소가 채워 주지 못해 넘어왔다고 적습니다.
허유는 원소가 순우경 등에게 만여 군사로 군량을 맞게 했는데 장수는 교만하고 군사는 게으르니 칠 만하다고 일렀습니다. 좌우가 모두 의심했으나 순유와 가후가 권하자, 조조는 순유와 조홍을 남겨 진영을 지키게 하고 몸소 보병과 기병 5천을 이끌고 밤에 나가 오소에서 순우경 등을 모두 베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조만전』에 따르면 허유가 왔다는 말을 들은 조조는 맨발로 나가 맞으며 손뼉을 치고 웃었습니다. 허유가 군량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자 조조는 한 해, 반 해를 버틸 수 있다고 둘러대다가 실은 한 달 치뿐이라고 털어놓았고, 허유는 원소의 치중 만여 수레가 고시와 오소에 있는데 지키는 군사의 방비가 허술하니 가벼운 군사로 불시에 덮쳐 쌓아 둔 것을 불사르면 사흘이 못 되어 원씨가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만전』은 또 코가 베인 채 사로잡힌 순우경을 조조가 살려 두려 하자, 허유가 날이 밝아 거울을 보면 이 사람은 더욱 원한을 잊지 못할 것이라 하여 죽이게 했다고 전합니다.
『위략』에 따르면 원소가 깨져 달아난 뒤 조조가 기주를 얻을 때에도 허유의 공이 있었습니다. 허유는 그 공을 믿고 자리에서 조조와 농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삼가지 않았고, 조조의 어릴 적 이름을 부르며 「아무개야, 자네는 나를 얻지 못했으면 기주를 얻지 못했을 것이네」라고까지 했습니다. 조조는 웃으며 「자네 말이 옳다」고 했으나 속으로는 그를 꺼렸습니다. 뒤에 조조를 따라 업의 동문을 나서며 좌우에 「이 집안은 나를 얻지 못했으면 이 문을 드나들지 못했을 것」이라 했는데, 누군가 이를 아뢰자 마침내 붙잡혔습니다. 최염전 본문은 조조가 시기하는 성품이라, 노국의 공융과 남양의 허유, 누규가 모두 옛 정을 믿고 공손하지 않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적습니다. 그가 죽은 해는 전하지 않습니다.
至呼太祖小字,曰:『某甲,卿不得我,不得冀州也。』若攸家犯其法,必不能縱也,不縱,攸必爲變『삼국연의』 제7회 · 제22회 · 제30회 · 제32~33회
연의에서 허유는 제7회에 처음 이름이 나옵니다. 원소가 기주를 차지한 뒤 전풍 · 저수 · 봉기와 함께 주의 일을 나누어 맡습니다. 제22회에서는 공융이 그를 곽도 · 심배 · 봉기와 함께 지모 있는 선비로 꼽자, 순욱이 「허유는 탐욕스럽고 지혜롭지 못하다」고 맞받습니다.
제30회 관도에서 허유는 조조가 순욱에게 군량을 재촉하려 보낸 사자를 붙잡아 그 편지를 얻고, 허창이 비었을 테니 한 갈래 군사로 밤을 도와 덮치자고 원소에게 권합니다. 원소가 조조의 꾀라며 듣지 않는데, 마침 업에서 온 심배의 편지가 허유가 기주에 있을 때 백성의 재물을 함부로 받고 조카들을 시켜 세금을 거두어 챙겼으므로 그 조카들을 옥에 가두었다고 알립니다. 원소는 크게 노해 그를 내쫓고, 칼을 뽑아 스스로 죽으려던 허유는 좌우의 권유로 조조의 진영으로 갑니다. 조조는 옷을 벗고 쉬다가 신도 신지 못한 채 맨발로 나가 맞고, 손뼉을 치며 웃고는 먼저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 군량을 묻는 허유에게 조조가 한 해, 반 해, 석 달이라 둘러대다 이달 치뿐이라고 하자, 허유는 「이미 다 떨어졌다」며 빼앗은 편지를 내보입니다. 그리고 오소를 지키는 순우경이 술을 즐겨 방비가 없으니 원소의 장수 장기가 군량을 지키러 왔다고 속이고 들어가 태우라고 일러 줍니다. 조조가 오소로 떠날 때 허유는 순유 · 가후 · 조홍과 함께 진영에 남습니다.
제32회에서 허유는 허창에서 와서 원상이 원담을 치는 틈을 놓치지 말라고 재촉하고, 업을 칠 때는 장하의 물을 터서 성에 대자는 꾀를 냅니다. 제33회에서 조조가 기주성에 들어설 때 그는 말을 몰아 나서서 채찍으로 성문을 가리키며 조조를 「아만」이라 부르고 「네가 나를 얻지 못했으면 어찌 이 문에 들어오겠느냐」 하니, 조조는 크게 웃지만 장수들은 불만을 품습니다. 하루는 동문으로 말을 달려 들어오는 허저를 불러 「너희가 나 없이 어찌 이 문을 드나들겠느냐」 하고, 목숨을 걸고 싸워 얻은 성이라고 맞서는 허저에게 「너희는 모두 필부」라고 꾸짖습니다. 크게 노한 허저는 칼을 뽑아 그를 죽이고 머리를 들고 조조에게 갑니다. 조조는 옛 벗이라 농을 했을 뿐인데 왜 죽였느냐고 허저를 깊이 꾸짖고 허유를 후히 장사 지내게 합니다. 연의에서 허유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내와 자식(이름은 전하지 않음)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오소를 아는 자요.
아만이의 옛 친구요. 못 이길 상대가 없소.
내 계책 없이 이긴 싸움이 있소?
…이 몸을 몰라보다니.
공을 좀 알아주시오.
오소를 태운 머리요. 당연하지.
허, 공신을 이리 대접하는가!
내가 아니었으면 못 이겼소.
…입이 또 앞섰구려.
…입이 가벼웠던 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