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문절(文節) · 미상 ~ 미상 (191년 이후) · 예주 영천군 · 원소 휘하
덕을 헤아려 양보한다며 기주를 원소에게 내준 겁 많은 기주목
출전 · 『삼국지』 위서 원소전 · 무제기 · 순욱전 · 장합전 · 공손찬전 · 촉서 허정전과 배송지 주의 『영웅기』 · 『구주춘추』 · 『헌제전』 · 『후한서』 원소전 · 동탁전 · 유우전 · 순욱전
한복은 자가 문절이며 영천 사람입니다. 『삼국지』 순욱전은 그를 순욱과 같은 군 사람이라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영웅기』는 그가 어사중승을 지냈다고 하고, 『후한서』 동탁전과 『삼국지』 허정전은 상서였다고 적습니다.
중평 6년(189) 영제가 죽고 동탁이 정권을 잡자, 동탁은 주비 · 오경 등이 천거한 이들을 주와 군의 장관으로 내보냈고 한복은 이때 기주목이 되었습니다. 『영웅기』는 그 무렵 기주가 백성이 많고 군사와 양식이 넉넉했다고 하고, 발해태수 원소가 군사를 일으킬까 두려워한 한복이 종사 여럿을 보내 그를 붙잡아 두었다고 전합니다. 동군태수 교모가 삼공의 글인 것처럼 꾸며 동탁의 죄를 알리고 의병을 바라자, 한복은 종사들에게 「지금 원씨를 도와야 하나, 동탁을 도와야 하나」 하고 물었습니다. 치중종사 유자혜가 「나라를 위해 군사를 일으키는데 어찌 원씨니 동씨니 하십니까」 하자 그는 부끄러워했고, 다른 주가 움직이면 따르라는 말을 좇아 원소에게 군사를 일으키도록 허락했습니다.
초평 원년(190) 정월 원술 · 한복 · 공주 · 유대 · 왕광 · 장막 · 교모 등이 함께 일어나 원소를 맹주로 삼았고, 한복은 업에 머물렀습니다. 『후한서』 원소전은 사람들의 마음이 원소에게 쏠리자 한복이 그를 꺼려 군량을 줄여 보내며 그 군사가 흩어지기를 바랐다고 적습니다. 원소와 한복은 종실의 어른인 유주목 유우를 황제로 세우려 했으나 조조가 거절했습니다. 191년 봄 옛 낙랑태수 장기를 보내 존호를 올렸으나 유우는 꾸짖고 끝내 받지 않았습니다.
초평 2년(191) 한복의 장수 국의가 배반해 한복이 싸웠으나 졌고, 원소는 국의와 손을 잡았습니다. 한복은 안평에서 공손찬에게도 졌고, 공손찬은 동탁을 친다는 이름으로 기주에 들어왔습니다. 원소는 생질 고간과 영천의 순심을 보내 한복을 달랬고, 『후한서』는 순심이 너그러움과 결단과 은덕을 하나씩 원소와 견주게 해 세 번 「그만 못하다」는 대답을 받아 냈다고 적습니다. 순심은 기주를 원씨에게 넘기면 어진 이에게 양보했다는 이름을 얻고 몸은 태산처럼 편안할 것이라 했고, 『삼국지』는 한복이 본디 겁이 많아 그 꾀를 옳게 여겼다고 적습니다.
장사 경무와 별가 민순, 치중 이력은 「기주가 비록 외지나 갑옷 입은 군사가 백만이고 곡식은 십 년을 버틴다. 원소는 우리 콧김만 쳐다보는 젖먹이와 같다」며 말렸고, 『후한서』는 이력 대신 기도위 저수를 꼽습니다. 강노 만 장으로 하양에 머물던 종사 조부와 정환도 밤에 원소의 진영 곁을 지나 달려와 지금 있는 군사로 막겠다고 청했습니다. 한복은 「나는 원씨의 옛 부하이고 재주도 본초만 못하다. 덕을 헤아려 양보하는 것은 옛사람이 귀히 여긴 일이다」 하고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상시 조충의 옛집으로 물러나 아들을 시켜 기주의 인수를 여양의 원소에게 보냈고, 무제기는 그해 가을 칠월 원소가 한복을 을러 기주를 빼앗았다고 적습니다.
원소는 한복을 분위장군으로 삼았으나 거느릴 군사는 주지 않았습니다. 『영웅기』에 따르면 원소의 도관종사 주한은 한복에게 대접받지 못한 원한으로 멋대로 군사를 내어 그 집을 에워쌌고, 다락으로 달아난 한복 대신 큰아들을 잡아 두 다리를 꺾었습니다. 원소가 곧 주한을 잡아 죽였으나 한복은 두려움을 떨치지 못해 떠나기를 청했고, 진류태수 장막에게 몸을 맡겼습니다. 뒤에 원소의 사자가 장막과 일을 의논하며 귓속말을 하자, 그 자리에 있던 한복은 자신을 해치려는 꾀로 여기고 뒷간으로 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후한서』 원소전은 그의 죽음을 그해 겨울 공손찬이 황건을 깨뜨린 일 앞에 적습니다.
『후한서』에서 봉기는 그를 용렬한 재주라 했고, 원소는 뒤에 한복이 군량을 끊어 제 일가가 동탁에게 해를 입었다고 탓했으며, 공손찬은 원소가 한복을 핍박해 그 주를 훔쳤다고 꾸짖었습니다. 그 밑에서 군사마로 있던 장합은 한복이 무너지자 군사를 이끌고 원소에게 갔고, 그가 기병을 보내 맞은 같은 군의 순욱은 일가를 이끌고 기주에 닿았으나 원소가 이미 그 자리를 빼앗은 뒤라 곧 조조에게 갔습니다.
吾袁氏故吏,且才不如本初。度德而讓,古人所貴,諸君獨何病焉馥素恇怯,因然其計『삼국연의』 제5회 · 제7회
연의에서 한복은 제5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가 격문을 띄우자 일어선 제후 가운데 둘째 진으로 「기주자사 한복」이 이름을 올립니다. 화웅이 손견의 붉은 두건을 장대에 걸고 싸움을 걸어 원술의 장수 유섭이 세 합 만에 베이자, 한복은 「나에게 상장 반봉이 있으니 화웅을 벨 수 있다」고 나서지만 큰 도끼를 들고 나간 반봉도 곧 베입니다. 제후들이 낯빛을 잃은 그 자리에서 관우가 나섭니다.
제7회에서 하내에 머물던 원소가 군량이 모자라자 기주목 한복은 사람을 보내 군량을 대 줍니다. 봉기는 원소에게 남이 보내는 양식에 기대지 말고 기주를 차지하라 하며, 공손찬에게 함께 기주를 치자는 글을 보내면 꾀 없는 한복이 원소에게 주의 일을 맡아 달라 청할 것이라 꾀합니다. 원소는 공손찬에게 글을 보내 놓고 한복에게도 몰래 그 일을 알립니다. 놀란 한복이 순심 · 신평 두 모사와 의논하자, 순심은 공손찬이 연과 대의 무리에 유비 · 관우 · 장비까지 거느리고 오니 지혜와 용기가 남다른 원소를 불러 함께 다스리라 권하고, 한복은 별가 관순을 보내 원소를 청합니다.
장사 경무가 「원소는 외로운 나그네에 궁한 군사라 우리 콧김만 쳐다보는데, 이는 범을 양 떼 속에 끌어들이는 것」이라 말려도 한복은 「나는 원씨의 옛 부하이고 재능도 본초만 못하다. 옛사람은 어진 이를 골라 양보했는데 그대들은 어찌 시샘하는가」 하고 듣지 않습니다. 경무는 「기주는 끝났다」고 탄식하고, 벼슬을 버리고 떠난 이가 서른 남짓이었습니다. 경무와 관순은 성 밖에 숨어 있다가 칼을 뽑아 원소를 찌르려 했으나 안량과 문추에게 베입니다. 기주에 든 원소는 한복을 분위장군으로 삼고 전풍 · 저수 · 허유 · 봉기에게 주의 일을 나누어 맡겨 그의 권한을 모두 빼앗습니다. 한복은 뉘우쳐도 소용이 없어 가솔을 버려둔 채 말 한 필로 진류태수 장막에게 달아납니다.
뒤에 반하에서 공손찬과 마주친 원소는 「한복이 재주가 없어 기주를 내게 물려주려 했는데 너와 무슨 상관이냐」고 큰소리칩니다. 연의는 한복의 죽음을 그리지 않으며, 그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큰아들(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 원소의 도관종사 주한에게 두 다리가 꺾였다)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기주목 한복이오. 다툼은 원치 않소.
덕을 헤아려 물려주는 것이 옛사람의 도리라 했소. 다툴 일이 아니오.
그대 말이 옳은지 저쪽 말이 옳은지, 종사들에게 먼저 물어보겠소.
…갑옷 입은 군사가 백만이라 했는데, 어찌 이리 떨리오.
나는 본디 겁이 많은 사람이오. 몰아세우지 마시오.
이긴 것이오? 그럼 기주는 아직 내 손에 있구려.
재주가 못하니 물려줄 수밖에. 덕을 헤아린 것이오.
강노 만 장이 아직 녹슬지 않았구려.
본초가 나보다 낫소. 물려줄 수밖에.
저 귓속말이 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