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무陳武

자 자열(子烈) · 미상 ~ 215년 · 양주 여강군 송자현 · 손견 휘하

진무 초상

손책의 강동 평정에 기여하고 합비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맹장

능력치

통솔74무력86지력43정치40매력63

카드

공격력 5체력 4비용 3값어치 11직군 맹장
필사 호령
무작위 아군 하나(자신 포함)의 체력 −1, 공격력 +3 (영구 · 체력 1 밑으로는 안 내려간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오서 진무전 · 진표전과 배송지 주의 『강표전』 · 손성의 논 · 손책전 · 오주전 · 손등전 · 정황한장주진동감능서반정전 평 · 삼사주전 배송지 주의 육기 『변망론』

진무는 자가 자열이며 여강군 송자현 사람입니다. 손책이 원술을 따라 수춘에 있을 때 진무는 그를 찾아가 뵈었는데, 그때 나이 열여덟에 키가 일곱 자 일곱 치였습니다. 그대로 손책을 따라 강을 건너 싸움마다 공을 세웠고 별부사마가 되었습니다. 건안 4년(199) 손책이 여강태수 유훈을 깨뜨려 여강 사람을 많이 얻자 그 가운데 날랜 이를 골라 진무에게 거느리게 했는데, 가는 곳마다 앞을 막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듬해 손권이 일을 이어받자 진무는 옮겨 오교를 감독했습니다.

진무는 어질고 너그러우며 베풀기를 좋아해, 고향 사람과 먼 곳의 손님들이 많이 그에게 몸을 맡겼습니다. 그는 손권에게 특히 아낌을 받아 손권이 여러 번 그의 집에 들렀고, 여러 번 공을 쌓아 편장군에 올랐습니다.

건안 20년(215) 진무는 손권을 따라 합비를 치다가 목숨을 떨쳐 싸우다 죽었습니다. 오주전은 그해 손권이 합비를 떨어뜨리지 못하고 군을 물렸고, 물러나던 길에 나루 북쪽에서 위의 장수 장료에게 습격을 받아 능통 등이 죽기로 막았다고 적습니다. 진무전은 진무가 이 싸움의 어느 자리에서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는 적지 않습니다. 손권은 그를 슬퍼하며 몸소 장례에 나갔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손권은 그가 아끼던 첩을 함께 묻게 하고 객 이백 집의 부역을 면해 주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손성은 옛일을 들어 「산 사람을 죽은 이에게 딸려 보냈으니 손씨의 나라가 오래가지 못한 것도 마땅하지 않은가」라고 꾸짖었습니다.

적자 진수는 무인의 기풍이 있어, 열아홉 살에 손권의 부름을 받고 별부사마가 되어 군사 오백을 받았습니다. 새로 모은 군사들이 많이 달아나던 때였는데 진수는 그들을 잘 다독여 한 사람도 잃지 않았고, 손권은 기이하게 여겨 교위로 삼았습니다. 건안 말년 공신의 자손을 거두어 쓸 때 도정후에 봉해지고 해번독이 되었으며, 황룡 원년(229)에 죽었습니다.

서자 진표는 자가 문오로, 어려서부터 이름이 알려져 제갈각 · 고담 · 장휴 등과 함께 동궁을 모시며 벗했고, 손등전은 이들을 태자의 네 벗이라 불렀다고 적습니다. 형 진수가 죽은 뒤 진표의 어머니가 진수의 어머니를 섬기려 하지 않자, 진표는 「형이 일찍 죽어 제가 집안일을 맡았으니 적모를 받들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뜻을 굽혀 적모를 받드시면 바라던 바이고, 그러지 못하시겠다면 따로 나가 사셔야 합니다」라고 해 두 어머니가 깨닫고 화목해졌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싸움터에서 죽었다며 장수가 되기를 청해 군사 오백을 거느렸고, 군사들을 정성껏 대해 모두가 그를 따랐습니다. 나라의 물건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고 모진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던 무난영의 군사 시명을 맡게 되자, 진표는 형틀을 풀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뒤 술과 음식으로 대해 스스로 죄와 무리를 털어놓게 했습니다. 손권은 시명을 용서했고, 시명은 행실을 고쳐 뒷날 장군에 이르렀습니다. 진표는 가화 3년(234) 제갈각이 산월을 칠 때 신안도위로 함께 나섰고, 나라에서 받은 부역 면제의 이백 집을 모두 군사로 돌려 달라고 청했습니다. 파양의 오거 등이 일어나자 경계를 넘어가 깨뜨려 편장군 · 도향후가 되었고, 서른넷에 죽었습니다. 재물을 다 군사를 기르는 데 써서 처자가 몸 둘 곳이 없자 태자 손등이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진수는 이 권의 장수들을 「모두 강표의 범 같은 신하로 손씨가 두터이 대우한 이들」이라 하고, 진표를 두고는 장수 집안의 서자로 이름난 집 자제들과 나란히 날개를 겨루었으니 무리에서 빼어났다고 따로 칭찬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육기의 『변망론』은 오가 일어선 까닭을 들면서 「동습과 진무는 몸을 죽여 주군을 지켰다」고 적었습니다.

凡此諸將,皆江表之虎臣,孫氏之所厚待也
무릇 이 장수들은 모두 강표의 범 같은 신하로, 손씨가 두터이 대우한 이들이다『삼국지』 오서 정황한장주진동감능서반정전 평
董襲、陳武殺身以衞主
동습과 진무는 몸을 죽여 주군을 지켰다『삼국지』 오서 삼사주전 배송지 주의 육기 『변망론』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5회 · 제49~51회 · 제55회 · 제61회 · 제67~68회

연의에서 진무는 제15회에 처음 이름이 나옵니다. 손책과 맞서던 유요에게 「여강 송자 사람 진무, 자는 자열이 주유를 맞아들여 곡아를 빼앗았다」는 소식이 닿고, 이어 손책의 사람이 된 진무를 연의는 키가 일곱 자에 얼굴이 누렇고 눈이 붉어 생김새가 괴이하다고 그립니다. 손책은 그를 몹시 아껴 교위로 삼고 선봉을 맡깁니다. 진무는 열 몇 기를 이끌고 설례의 진에 뛰어들어 쉰여 명의 목을 베고, 손책을 쫓아 나온 장영을 창으로 찔러 죽이며, 경현에서는 짧은 옷차림에 칼을 들고 맨 먼저 성에 기어올라 불을 놓아 태사자를 사로잡는 길을 엽니다. 엄백호를 칠 때는 장흠과 함께 작은 배로 다리를 건너가 엄여를 물리칩니다.

제49~50회 적벽에서는 제4대를 맡아 주태와 함께 적벽의 동쪽에서 쳐들어가고, 제51회 남군 싸움에서는 여몽과 함께 북쪽에서 조인의 군을 들이칩니다. 제55회에서는 반장과 함께 달아나는 유비를 쫓다가 손부인의 꾸짖음을 듣고 물러섭니다. 제61회 유수에서는 반장과 함께 활과 쇠뇌를 든 군사로 조조를 쫓고, 제67회 합비 원정에서는 손권의 중군에 섭니다.

제68회 유수 싸움에서 진무는 강가를 오가며 망을 보다가 싸움 소리를 듣고 달려가 방덕과 부딪칩니다. 뒤를 받칠 군사가 없어 골짜기 어귀까지 쫓기고, 돌아서 싸우려는 순간 우거진 나뭇가지에 소매가 걸려 맞서지 못한 채 방덕에게 죽습니다. 손권은 같은 싸움에서 물에 빠져 죽은 동습과 함께 그를 후히 장사 지냅니다. 연의에서 진무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5열여덟 살에 수춘에 있던 손책을 찾아가 뵙고 따라서 강을 건넜습니다.
  2. 195싸움마다 공을 세워 별부사마가 되었습니다.
  3. 199손책이 유훈을 깨뜨리자 여강의 날랜 군사를 거느려 가는 곳마다 앞을 막는 자가 없었습니다.
  4. 200손권이 일을 이어받자 옮겨 오교를 감독했습니다.
  5. 215손권을 따라 합비를 치다가 목숨을 떨쳐 싸우다 죽었습니다.합비의 진무
  6. 215손권이 슬퍼하며 몸소 장례에 나갔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진수 · 서자 진표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합비로 간다!

말을 열며

낯빛이 사납다고 마음도 사나운 것은 아니오.

되받으며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마시오.

말문이 막혀

…팔이 무겁군.

말문이 막혀

덕은 꺾이지 않소.

설전을 이기고

사람은 겪어 봐야 아오.

설전에 지고

합비의 한이 또 하나 늘었소.

이긴 뒤

합비의 흙을 밟았다!

진 뒤

…이 땅에 눕는가.

쓰러지며

합비의 흙을… 붉게 적신다.

같은 기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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