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曹植

자 자건(子建) · 192년 ~ 232년 · 예주 패국 초현 · 조조 휘하

조식 초상

붓을 대면 글을 이루었으나 태자 자리를 놓치고 봉국을 떠돈 시인

능력치

통솔20무력22지력81정치70매력80

카드

공격력 2체력 2비용 2값어치 6직군 모사
이간 비용 2
적 둘이 다음 국면에 행동하지 못한다 · 둘 다 체력 −1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진사왕전과 배송지 주의 『위기』 · 『위무고사』 · 『전략』 · 『세어』 · 『위씨춘추』 · 『위략』 · 『위서』 · 임성진소왕전 평과 그 배송지 주 · 무제기 · 명제기와 배송지 주의 『위략』 · 무문세왕공전 · 가후전 · 최염전 · 모개전 · 형옹전 · 환계전 · 왕찬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세어』 · 조식의 『낙신부』

조식은 자가 자건이며 조조와 변씨의 아들로, 문제 조비와 임성왕 조창의 아우입니다. 열 살 남짓에 『시경』과 『논어』, 사부 수십만 자를 외웠고 글을 잘 지었습니다. 그의 글을 본 조조가 남에게 대신 짓게 했느냐고 묻자, 그는 무릎을 꿇고 「말이 나오면 논이 되고 붓을 대면 글이 되니 눈앞에서 시험해 보시면 될 것을 어찌 남에게 짓게 하겠습니까」 하고 답했습니다. 업에 동작대가 새로 이루어져 조조가 여러 아들을 데리고 올라 저마다 부를 짓게 하자, 조식은 붓을 들자마자 지어 조조를 크게 놀라게 했습니다. 성품이 소탈해 몸가짐을 꾸미지 않았고 수레와 옷도 화려함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어려운 물음에도 소리 나는 대로 답해 각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건안 16년(211) 평원후가 되었고 건안 19년(214) 임치후로 옮겼습니다. 그해 손권을 치러 가는 조조는 그에게 업을 지키게 하며 「내가 돈구령이었을 때 스물셋이었다. 너도 이제 스물셋이니 힘쓰지 않겠느냐」고 일렀습니다. 재주로 남다르게 여겨진 그에게 정의 · 정이 · 양수 등이 날개가 되어 주어, 조조는 여러 번 그를 태자로 세울 뻔했습니다. 『위략』에 따르면 그를 처음 만난 한단순은 돌아가 그를 「천인」이라 일컬었습니다. 그러나 최염은 조식이 제 형의 사위였는데도 맏이를 세우는 것이 『춘추』의 뜻이라고 드러내 놓고 답했고, 모개 · 형옹 · 환계도 맏이 조비를 세우라 권했으며, 가후는 원소와 유표 부자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로 조조를 웃게 했습니다. 진수는 조식이 제멋대로 행동하며 스스로를 가다듬지 않고 술을 절제하지 않은 반면, 조비는 술수로 대하고 감정을 꾸며 스스로를 다잡아 궁인과 좌우가 모두 그를 위해 말해 주었으므로 마침내 뒤를 잇게 되었다고 적습니다. 『세어』에 따르면 조조가 싸움터로 떠날 때 조식은 공덕을 늘어놓아 좌우의 눈길을 모았으나, 오질의 귀띔대로 울며 절한 조비를 보고 모두 조식의 말은 화려해도 정성은 그만 못하다고 여겼습니다.

건안 22년(217) 봉읍이 1만 호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 조식이 수레를 타고 천자의 길인 치도를 달려 궁의 사마문을 열고 나간 일이 있었는데, 크게 노한 조조는 문을 맡은 공거령을 죽이고 제후의 금령을 엄하게 했으며 이로써 조식에 대한 사랑이 날로 식었습니다. 『위무고사』에 실린 영에서 조조는 「처음에는 자건이 아들 가운데 큰일을 정할 만하다고 여겼다」고 하면서도 그가 사사로이 사마문을 연 뒤로 이 아이를 달리 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조조는 뒷날의 변을 걱정해 재주와 꾀가 있고 원씨의 생질인 양수를 죄로 죽였고, 조식은 더욱 불안해했습니다. 건안 24년(219) 관우가 조인을 에워싸자 조조는 조식을 남중랑장으로 삼아 구하러 보내려 했으나, 조식이 술에 취해 명을 받지 못하자 뉘우치고 그만두었습니다. 『위씨춘추』는 떠나기에 앞서 조비가 억지로 술을 먹여 취하게 했다고 적습니다.

건안 25년(220) 조조가 죽고 조비가 위왕에 오르자 정의 · 정이 형제와 그 집안 남자들이 죽임을 당했고, 조식은 다른 제후들과 함께 봉국으로 갔습니다. 황초 2년(221) 감국알자 관균이 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조식이 술에 취해 오만하게 굴며 사자를 윽박질렀다고 아뢰었습니다. 담당 관리는 죄를 다스리자 했으나 조비는 태후 때문에 작위를 안향후로 깎는 데 그쳤고, 그해 견성후로 옮겼다가 황초 3년(222) 견성왕이 되었습니다. 황초 4년(223) 옹구왕으로 옮겨 도읍에 조회하러 와서는 지난 죄를 뉘우치는 글과 시 두 편을 올렸고, 조비는 그 글을 기려 너그러운 조서로 답했습니다. 『위략』에 따르면 그는 사죄하려고 맨머리에 도끼와 모탕을 지고 맨발로 궁궐 아래에 이르렀고, 조비는 얼굴을 굳힌 채 말도 섞지 않다가 왕의 옷을 다시 입게 했습니다. 『위씨춘추』는 이때 조창이 갑자기 죽고 함께 동쪽으로 돌아가려던 백마왕 조표와도 감국 사자가 길을 갈라놓자, 조식이 분을 담아 긴 시를 지어 작별했다고 적습니다. 황초 6년(225) 동쪽 정벌에서 돌아오던 조비는 옹구의 그의 궁에 들러 500호를 더해 주었습니다.

명제 때인 태화 원년(227) 준의로 옮겼다가 이듬해 옹구로 돌아왔습니다. 조식은 쓸 만한 재주를 품고도 펼 곳이 없음을 늘 원통해하며 스스로를 시험해 달라는 글을 올려, 서쪽 대장군이나 동쪽 대사마에게 딸려 한 부대를 맡겨 주면 앞장서 싸우겠다고 청했습니다. 명제기의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그해 황제가 죽고 따르던 신하들이 옹구왕 조식을 세웠다는 헛소문이 돌아 도읍이 두려움에 떨었다고 적습니다. 태화 3년(229) 동아로 옮겼고, 태화 5년(231)에는 친족끼리 안부를 묻게 해 달라는 글과 인재를 바르게 들어 쓰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명제는 제후국끼리 오가지 못하게 하는 조서는 본디 없었고 아래 관리들이 지나쳤을 뿐이라며 그의 말대로 고치게 했습니다.

태화 6년(232) 2월 진의 네 현을 받아 진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따로 만나 정사를 논하고 쓰이기를 바랐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고 실망해 돌아갔습니다. 그 무렵 법제는 번국을 엄하게 다그쳐 관속은 하찮은 이들이었고 군사는 늙은 이를 주어 많아야 200명이었는데, 조식은 지난 허물로 그마저 반으로 줄었습니다. 열한 해 동안 도읍을 세 번 옮기며 늘 즐거움 없이 지내다 병이 나 그해 11월 마흔하나로 죽었습니다. 배송지 주는 그가 늘 지어 부르던 노래를 싣는데, 뿌리를 떠나 바람에 굴러다니는 쑥을 들어 머물 곳 없이 떠도는 괴로움을 누가 알겠느냐고 읊었습니다. 그는 장사를 검소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일찍이 어산에 올라 동아를 내려다보며 생을 마칠 곳으로 여겨 그곳에 무덤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아들 조지가 뒤를 이어 제북왕이 되었습니다. 경초 연간 명제는 조식이 허물이 있었으나 스스로를 이기고 삼가 앞의 잘못을 메웠고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며, 황초 연간에 그의 죄를 아뢴 글을 모두 없애고 그가 지은 부 · 송 · 시 · 명 · 잡론 백여 편을 모아 안팎에 간직하게 했습니다. 그가 남긴 『낙신부』는 머리말에서 황초 3년 도읍에 조회하고 돌아오다 낙수를 건너며, 그 물의 신을 복비라 한다는 옛말에 느껴 지었다고 밝힙니다. 진수는 그의 글재주가 넉넉하고 빛나 뒷세상에 이름을 전하기에 넉넉하나 물러서고 멀리 대비할 줄 몰라 끝내 형제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고 평했고, 『위략』을 쓴 어환은 그의 빛나는 글을 볼 때마다 생각이 신들린 듯하니 조조의 마음이 움직인 것도 까닭이 있다고 했습니다.

陳思文才富艷,足以自通後葉,然不能克讓遠防,終致攜隙
진사왕은 글재주가 넉넉하고 빛나 뒷세상에 스스로 이름을 전하기에 넉넉하나, 물러서고 멀리 대비할 줄 몰라 끝내 틈이 벌어졌다『삼국지』 위서 임성진소왕전 평
餘每覽植之華採,思若有神
나는 조식의 빛나는 글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이 신들린 듯하다고 느낀다『삼국지』 위서 임성진소왕전 평의 배송지 주에 실린 어환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34회 · 제44회 · 제68회 · 제72회 · 제78~79회

연의에서 조식은 제34회에 처음 나옵니다. 업에서 구리 참새가 나와 조조가 높은 대를 짓게 하자, 어린 아들 조식이 대를 세 채로 지어 가운데를 동작, 왼쪽을 옥룡, 오른쪽을 금봉이라 하고 두 다리로 잇자고 합니다. 연의는 다섯 아들 가운데 조식이 영리하고 글을 잘 지어 조조가 가장 아꼈다고 소개하고, 조조는 그와 조비를 업에 남겨 대를 짓게 합니다. 제44회에서 제갈량은 조식이 지었다는 동작대부를 외워 주유에게 들려주는데, 연의의 그 부에는 동남의 두 교씨를 끌어안겠다는 구절이 들어 있어 주유를 격동시킵니다.

제68회에서 연의는 변씨가 낳은 넷 가운데 셋째인 조식이 매우 총명해 붓을 들면 글을 이루니 조조가 그를 뒤로 세우려 했다고 적습니다. 조비는 가후의 꾀를 따라 조조가 싸움터로 떠날 때 울며 절하고 가까운 신하를 매수하며, 가후가 원소와 유표 부자를 생각했다고 답하자 조조는 조비를 왕세자로 세웁니다. 제72회에서는 조식이 양수의 재주를 아껴 밤새 이야기를 나눕니다. 조조가 두 아들을 시험하려 업성의 문을 나서게 하고 문지기에게 막게 하자, 조식은 양수의 말대로 왕명을 받들었다며 문지기를 베고 나가지만 그것이 양수의 가르침인 줄 안 조조는 노하고, 양수가 미리 써 준 답 십여 조도 들통나 양수는 죽임을 당합니다. 제78회에서 죽음을 앞둔 조조는 셋째 식이 사람됨이 겉만 화려하고 참됨이 적으며 술을 즐기고 방종해 세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제79회에서 위왕에 오른 조비는 문상을 오지 않은 임치후 조식에게 사자를 보내고, 정의 · 정이와 술에 취한 조식이 사자를 몽둥이로 쫓아내자 허저를 보내 잡아 옵니다. 정의 형제는 먼저 죽고, 어머니 변씨가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울자 조비는 화흠의 말대로 그의 재주를 시험합니다. 조비가 벽에 걸린 두 소가 싸우는 그림을 제목으로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지으라 하자 조식은 일곱 걸음 만에 시를 이룹니다. 조비가 다시 형제를 제목으로 하되 형제라는 글자 없이 곧장 지으라 하자, 조식은 「콩을 삶으려 콩대를 태우니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디 한 뿌리에서 났거늘 어찌 이리 급히 볶아 대는가」라고 읊습니다. 조비는 눈물을 흘리고, 변씨가 나와 형이 어찌 아우를 이리 몰아붙이느냐 꾸짖자 조식을 안향후로 깎습니다. 연의에서 조식이 몸소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제91회에서는 조조가 본디 그를 세우려 했다는 말이 마속의 꾀로 붙은 가짜 방문에 쓰일 뿐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2조조와 변씨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2. 211평원후에 봉해졌습니다.
  3. 214임치후로 옮기고, 손권을 치러 가는 조조를 대신해 업을 지켰습니다.
  4. 217봉읍이 1만 호가 되었으나 뒤를 다투던 형 조비가 위의 태자로 정해졌습니다.
  5. 219관우에게 에워싸인 조인을 구하러 가라는 명을 술에 취해 받지 못했습니다.
  6. 220조비가 위왕에 올라 정의 · 정이 형제를 죽이자 봉국으로 갔습니다.
  7. 221감국알자 관균의 고발로 안향후로 깎였다가 그해 견성후로 옮겼습니다.
  8. 222견성왕이 되었습니다.
  9. 223옹구왕으로 옮기고 도읍에 조회하러 와 죄를 뉘우치는 글과 시를 올렸습니다.
  10. 225동쪽 정벌에서 돌아오던 조비가 옹구에 들러 500호를 더해 주었습니다.
  11. 227명제 때 준의로 옮겼습니다.
  12. 228옹구로 돌아와 스스로를 시험해 달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13. 229동아로 옮겼습니다.
  14. 231친족끼리 안부를 묻게 해 달라는 글을 올려 명제가 받아들였습니다.
  15. 232진왕이 되었으나 쓰이지 못하고 그해 11월 마흔하나로 죽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조조 · 어머니 변씨 · 형 조비 · 조창 · 아우 조웅 · 아내 최씨(최염의 조카딸) · 아들 조지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붓을 놓고 나왔소.

말을 열며

일곱 걸음이면 시 한 수요. 말은 더 빠르오.

되받으며

형님께도 지지 않았소. 그대에게 지겠소?

말문이 막혀

…술이 깨는구려.

말문이 막혀

낙수의 신녀도 이리 멀지는 않았소.

설전을 이기고

천하의 재주 여덟 말이 내 것이라 하였소.

설전에 지고

콩대는 여전히 타고 있구려.

이긴 뒤

붓을 놓길 잘했구려.

진 뒤

…일곱 걸음이 모자랐소.

쓰러지며

일곱 걸음의 시가… 남겠구나.

같은 기치 아래

조조하후연하후돈서황학소허저조인전위문앙우금악진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