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현사(顯思) · 미상 ~ 205년 · 예주 여남군 여양현 · 원소 휘하
동생 원상과의 골육상쟁 끝에 조조의 칼날에 파멸한 원소의 장남
출전 · 『삼국지』 위서 원소전과 배송지 주의 『구주춘추』 · 『전략』 · 위서 무제기 · 조순전 · 신비전과 배송지 주의 『영웅기』 · 왕수전 · 촉서 선주전 · 『후한서』 원소전 · 공융전
원담은 자가 현사이며 원소의 맏아들입니다. 『후한서』는 원담이 맏이로 어질었고 막내 원상은 잘생겼는데, 원소의 후처 유씨가 원상을 아껴 자주 칭찬했고 원소도 그 모습을 남다르게 여겨 뒤를 잇게 하려 했다고 적습니다. 그래서 원소는 원담을 형의 뒤를 잇게 하여 청주로 내보냈고, 저수는 「반드시 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말렸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구주춘추』는 원담이 처음에는 도독이었고 자사가 된 것은 뒤에 조조가 삼으면서라고 적습니다.
『구주춘추』에 따르면 원담은 공손찬의 청주자사 전해를 몰아내고 공융을 쳐서 바닷가까지 군사를 떨쳤고, 주인 없던 백성이 그를 반겼습니다. 『후한서』 공융전은 건안 원년(196) 원담이 공융을 봄부터 여름까지 에워싸 성을 떨어뜨리고 그 처자를 사로잡았다고 적습니다. 그러나 『구주춘추』는 그가 소인배를 믿어 사치에 빠졌고, 군사를 모을 때 뇌물을 낸 자는 빼 주고 없는 자는 끌어가 가난한 백성이 산과 들로 숨었으며, 만 호의 고을에 호적에 오른 집이 수백도 안 되었다고 적습니다.
건안 4년(199) 궁해진 원술을 청주에서 사람을 보내 맞으려 했으나 원술은 병으로 죽었습니다. 이듬해 조조에게 패한 유비가 청주로 오자, 예전에 유비가 무재로 천거했던 원담은 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나가 맞아 평원까지 데려갔습니다. 그해 관도에서 원소가 크게 지자 원담은 아버지와 함께 황하를 건너 달아났습니다.
건안 7년(202) 원소가 죽자 무리는 맏이인 원담을 세우려 했으나, 원담이 꺼리던 심배 · 봉기가 원소의 뜻을 내세워 원상을 받들었고 『후한서』는 이를 유명을 거짓으로 꾸민 것이라 적습니다. 자리를 잇지 못한 원담은 스스로 거기장군이라 일컫고 여양에 머물렀고, 원상이 군사를 조금만 주고 딸려 보낸 봉기를 죽였습니다. 조조가 쳐 오자 원상이 도우러 와 형제가 여양에서 함께 맞섰으나, 이듬해 봄 크게 지고 업으로 물러났습니다.
조조가 물러가자 원담은 황하를 건너는 적을 치자며 군사와 갑옷을 더 청했으나 원상이 들어주지 않았고, 곽도와 신평이 「장군을 형의 뒤로 내보낸 것도 심배의 짓」이라고 부추기자 원상을 쳤다가 졌습니다. 별가 왕수가 「형제는 왼손과 오른손」이라며 말렸으나 듣지 않았고, 다시 원상에게 져 평원에서 에워싸였습니다. 배송지 주의 『영웅기』에 따르면 원담은 곽도의 꾀를 따라 신비를 조조에게 보내 항복하고 구원을 청했습니다. 조조가 여양에 이르자 원상은 업으로 돌아갔습니다. 원담이 원상을 떠나온 장수 여광 · 여상에게 몰래 장군의 인을 건네자, 그 속셈을 꿰뚫은 조조는 아들 조정과 원담의 딸의 혼인을 약조해 그를 달래고 돌아갔습니다.
건안 9년(204) 원상이 다시 평원을 치자 심배가 원담에게 곽도를 베라는 글을 보냈고, 배송지 주의 『전략』은 원담이 성 위에 올라 울었으나 곽도에게 휘둘려 싸움을 그치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조조가 업을 에워싼 사이 원담은 감릉 · 안평 · 발해 · 하간을 거두고 중산의 원상을 쳐 그 무리를 빼앗았습니다. 조조는 약조를 어겼다고 꾸짖어 혼인을 끊고 딸을 돌려보냈고, 그해 12월 조조가 이르자 원담은 밤에 남피로 달아났습니다.
건안 10년(205) 정월 남피에서 원담이 나와 싸우자 조조의 군사가 많이 죽었는데, 『삼국지』 조순전은 공격을 늦추려던 조조를 조순이 말려 원담이 졌고 조순이 거느린 호표기가 원담의 목을 베었다고 적습니다. 『후한서』는 원담이 말을 달리다 떨어지자 돌아보며 「나를 놓아주면 부귀하게 해 주겠다」고 했으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이 떨어졌다고 적습니다. 곽도 등도 베였고 원담의 처자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별가 왕수는 통곡하며 원씨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다고 주검을 거두게 해 달라고 청했고, 조조는 그 의리를 가상히 여겨 들어주었습니다. 진수는 원소와 유표를 두고 맏이를 버리고 아랫자식을 세워 뒤를 이은 자식들이 넘어지고 나라가 뒤집혔으니 불행 때문이 아니라고 평했습니다.
兄弟者,左右手也。譬人將鬥而斷其右手,曰『我必勝若』,如是者可乎廢嫡立庶,舍禮崇愛,至于後嗣顛蹙,社稷傾覆,非不幸也『삼국연의』 제24회 · 제30~33회
연의에서 원담은 제24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에게 쫓겨 홀로 말을 달려 온 유비를 청주자사 원담이 성문을 열어 맞아들이는데, 연의는 원담이 평소 유비를 공경했다고 적고, 원담은 아버지에게 알리고 군사를 붙여 유비를 평원까지 바래다줍니다. 제30회에서는 관도에서 무너진 원소의 뒤를 따라 달아납니다. 제31회는 원소의 세 아들을 소개하며 맏아들 원담의 자를 현충이라 하고, 원소는 뒤를 의논하는 자리에서 「원담은 성품이 거칠고 죽이기를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원담은 청주의 군사 5만을 이끌고 창정 싸움에 왔다가 신평 · 곽도와 함께 청주로 돌아갑니다.
제32회에서 원소가 죽고 원상이 뒤를 잇자 원담은 곽도의 말을 따라 성 밖에 군사를 머물게 합니다. 원상이 그를 거기장군으로 삼고 봉기를 딸려 보내자 원담은 봉기를 베려다 곽도의 만류로 참고, 여양에서 조조와 싸우다 대장 왕소를 서황에게 잃습니다. 원상이 5천 군사만 보냈다가 그마저 몰살되고 더는 구원을 보내지 않자, 원담은 봉기를 베고 조조에게 항복하려다 원상이 몸소 오자 그만둡니다. 조조가 곽가의 꾀로 물러가자 원담은 원상과 심배를 술자리로 불러 죽이려 하고, 왕수가 「형제는 왼손과 오른손」이라며 말리자 꾸짖어 물리칩니다. 원상과 직접 싸워 크게 지고 평원으로 달아났다가 에워싸이자, 곽도의 권유로 신비를 조조에게 보내 항복하고 구원을 청합니다. 조조가 원상을 치러 오자 원담은 자기를 막아선 여광 · 여상을 달래 조조에게 데려가고, 조조는 딸을 원담에게 주기로 하며 두 사람을 중매로 세웁니다. 원담이 곽도의 말대로 두 여씨에게 몰래 장군의 인을 보내자 두 사람은 이를 조조에게 바치고, 조조는 이때부터 원담을 죽일 마음을 품습니다.
제33회에서 조조가 기주를 차지한 사이 원담은 감릉 · 안평 · 발해 · 하간을 휩쓸고 원상을 쳐 그 무리를 거둡니다. 조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아 혼인이 끊기자 유표에게 구원을 청했으나 얻지 못하고 남피로 물러납니다. 조조가 「내가 너를 후히 대했는데 어찌 딴마음을 품느냐」고 꾸짖자, 원담은 「네가 내 땅을 범하고 성을 빼앗고 혼인마저 물리고서 도리어 나더러 딴마음이라 하느냐」고 맞받고, 장수 팽안을 서황에게 잃습니다. 신평을 보내 항복을 청했으나 조조가 받지 않자, 돌아온 신평에게 「네 아우가 조조를 섬기니 너도 두 마음을 품었느냐」고 꾸짖어 신평이 분을 못 이겨 쓰러져 죽습니다. 이튿날 백성을 앞세우고 성을 나가 싸우다 조조가 몸소 북을 치자 크게 지고, 진을 뚫고 들어온 조홍의 칼에 진중에서 죽습니다. 조조가 그 목을 북문 밖에 걸고 우는 자를 베겠다고 하자, 청주 별가 왕수가 와서 울며 장사 지내기를 청하고 조조는 이를 허락합니다. 연의에서 원담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원소 · 아우 원희 · 원상 · 딸(조조의 아들 조정과 혼약했다가 204년에 깨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원씨의 장남이다.
장남의 자리를 되찾으러 왔소.
아우에게 밀린 설움, 그대가 아시오?
…아우 얼굴이 어른거리는군.
물러서면 정말 끝이다.
장자의 이름값을 했소.
형제만 아니었어도 이겼을 것을….
청주의 군사가 해냈다.
…같은 피끼리 이 꼴이구나.
…형제끼리 싸운 값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