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사칙(士則) · 미상 ~ 미상 (306년 이후) · 양주 오군 오현 · 손견 휘하
쇠사슬로 강을 끊고 오가 망할 때까지 건평을 지킨 장수
출전 · 『진서』 오언전 · 도황전 · 왕준전 · 무제기 · 사신의 평과 찬 · 『삼국지』 오서 육항전 · 손호전과 배송지 주의 『진기』 · 『화양국지』 남중지
오언은 자가 사칙이며 오군 오현 사람입니다. 『진서』 오언전은 그가 한미한 집안에서 났으나 문무의 재간이 있었고, 키가 여덟 자에 맨손으로 사나운 짐승을 때려잡을 만큼 힘이 무리에서 뛰어났다고 적습니다. 처음에는 통강리라는 아전으로 오를 섬겼습니다. 그 무렵 장군 설후가 부절을 짚고 남쪽을 치러 나서는데 군용이 몹시 성대하자, 오언은 그것을 바라보며 크게 탄식했습니다. 관상을 잘 보는 유찰이 「그대의 상으로 보아 뒷날 이 자리에 이를 것이니 부러워할 것 없다」고 일렀습니다. 『삼국지』 손호전은 위남장군 설후가 감군 우사 · 창오태수 도황과 함께 형주를 거쳐 교지를 치러 나선 것을 건형 원년(269)의 일로 적습니다.
처음에는 소장으로서 오의 대사마 육항 밑에 딸렸습니다. 육항은 그의 용기와 지략을 기이하게 여겨 끌어올려 쓰려 했으나 사람들이 따르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장수들을 모아 놓고 몰래 사람을 시켜 미친 척 칼을 뽑아 들고 뛰어들게 했는데, 자리에 있던 장수들은 모두 겁을 먹고 달아났지만 오언만은 움직이지 않고 안석을 들어 막았습니다. 사람들이 그 용기에 탄복하자 육항은 비로소 그를 발탁했습니다. 봉황 원년(272) 서릉독 보천이 성을 들어 진에 항복하려 하자, 『삼국지』 육항전은 육항이 장군 좌혁 · 오언 · 채공 등을 곧장 서릉으로 달려가게 했다고 적습니다.
오언은 차츰 옮겨 건평태수가 되었습니다. 진의 왕준이 오를 치려고 촉에서 배를 짓자 오언은 이를 알아채고 군사를 더해 대비하자고 청했으나 손호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진서』 왕준전은 배를 짓느라 깎아 낸 나뭇조각이 강을 덮고 흘러 내려오자, 건평태수 오언이 그것을 건져 손호에게 바치며 「진에 반드시 오를 칠 계획이 있으니 건평의 군사를 늘려야 합니다. 건평이 떨어지지 않으면 끝내 감히 강을 건너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아뢰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간보의 『진기』도 같은 일을 싣습니다. 손호가 듣지 않자 오언은 스스로 쇠사슬을 만들어 강길을 가로질러 끊었습니다.
태강 원년(280) 진의 군사가 국경에 이르자 강가의 여러 성은 소문만 듣고 항복하거나 공격을 받아 떨어졌으나, 오언만은 굳게 지켰습니다. 대군이 쳐도 이기지 못하자 진군은 물러나 진을 치고 그를 예로 대했습니다. 『진서』 왕준전에 따르면 왕준은 기름을 부은 큰 횃불을 배 앞에 세워 강을 가로막은 쇠사슬을 만나면 불살라 녹여 끊고 내려갔습니다. 오가 망하자 오언은 비로소 진에 항복했고, 진 무제는 그를 금성태수로 삼았습니다.
무제는 언젠가 설영에게 손호가 나라를 잃은 까닭을 물었고, 설영은 손호가 소인을 가까이하고 형벌을 함부로 더해 대신과 대장이 저마다 불안했던 것이 망한 까닭이라고 답했습니다. 뒤에 무제가 오언에게 같은 것을 묻자 오언은 「오의 군주는 영준했고 재상은 현명했습니다」 하고 답했습니다. 무제가 웃으며 「임금이 밝고 신하가 어진데 어찌 나라를 잃었는가」 하자, 오언은 「하늘의 녹이 영영 끝나고 운수가 돌아갈 데가 있어 폐하께 사로잡혔으니, 이는 하늘의 때이지 어찌 사람의 일이겠습니까」 하고 답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장화가 「그대는 오의 장수로 여러 해 있었는데 이름을 들은 적이 없으니 괴이하다」고 하자, 오언은 목소리를 높여 「폐하께서 나를 아시는데 경은 못 들었단 말이오」 하고 맞받았고, 무제는 그를 크게 칭찬했습니다.
그 뒤 돈황으로 옮겨 위엄과 은혜가 크게 드러났고, 이어 안문태수가 되었습니다. 『진서』 무제기는 태강 10년(289) 부풍왕 사마창을 순양왕으로 옮겨 봉했다고 적는데, 그 무렵 교만하고 방자한 사마창이 앞뒤의 내사들을 모두 죄로 무고했습니다. 오언이 순양내사가 되자 몸을 깨끗이 하여 아래를 이끌고 위엄과 형벌을 엄숙하게 하니 모두 그를 두려워했고, 사마창은 그를 무고할 수 없게 되자 도리어 천거해 자리를 떠나게 하려 했습니다. 이어 원외산기상시가 되었습니다. 황제가 「육희와 육항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나은가」 하고 묻자, 오언은 「도덕과 명망은 육항이 육희에 못 미치고, 공을 세우고 일을 이루는 것은 육희가 육항에 못 미칩니다」 하고 답했습니다.
교주자사 도황이 죽자 오언은 남중도독 · 교주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육항의 아들인 육기 형제에게 후한 선물을 보냈는데, 육기가 받으려 하자 아우 육운이 「오언은 본디 미천한 사람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발탁하셨는데 조서에 답한 것이 좋지 않았으니 어찌 그를 아끼겠습니까」 하고 말려 육기는 받지 않았고, 이 일로 형제는 늘 그를 헐뜯었습니다. 장사의 효렴 윤우가 「예로부터 천한 데서 일어난 이 가운데는 제왕도 있었으니 어찌 공경뿐이겠소. 그대들이 사칙이 조서에 조금 좋지 않게 답했다 하여 헐뜯기를 그치지 않으면 남쪽 사람들이 다 그대들을 떠나 홀로 앉게 될까 두렵소」 하자, 그제야 형제의 마음이 풀려 헐뜯는 말이 차츰 잦아들었습니다.
도황이 죽었을 때 구진의 수자리 군사가 난을 일으켜 태수를 내쫓았고 구진의 도적 우두머리 조지가 군성을 에워쌌는데, 오언이 이를 모두 쳐서 평정했습니다. 교주를 지킨 스무 해 남짓 동안 위엄과 은혜가 널리 드러나 남쪽 고을이 편안했습니다. 스스로 표를 올려 교대를 청하자 대장추로 불려 갔고, 그 벼슬에 있다가 죽었습니다. 『진서』 도황전은 오언이 죽은 뒤 원외산기상시 고비가 그 자리를 이었다고 적습니다. 『화양국지』는 광희 원년(306) 남이교위 이의가 이민족에게 에워싸인 채 죽은 뒤 조정이 교주에 구원을 명하자, 교주자사 오언이 아들인 위원장군 오자를 보내 도왔다고 적습니다.
『진서』의 사신은 「도황과 오언은 뛰어난 말처럼 나란히 내달렸으니, 모경은 도황의 깊은 꾀에 굴복했고 육항은 오언의 무성한 지략을 기이하게 여겼다」고 평했습니다. 찬에서는 「도황의 꾀는 뛰어나고 오언의 재주는 웅걸하다」 하고, 그가 군대를 보고 설후에게 탄식했던 일을 함께 들었습니다.
陶璜、吾彥,逸足齊驅,毛炅屈其深謀,陸抗奇其茂略天祿永終,歷數有屬,所以為陛下擒。此蓋天時,豈人事也『삼국연의』 제120회
연의에서 오언은 마지막 회인 제120회에 단 한 줄 나옵니다. 그 회에서 손호는 진의 군사가 쳐들어올 것을 걱정하다 중상시 잠혼의 꾀를 따라, 강가의 길목마다 쇠사슬을 가로질러 걸고 길이 한 길이 넘는 쇠송곳 수만 개를 물속에 숨겨 두게 합니다. 용양장군 왕준은 풀로 사람을 만들어 갑옷을 입혀 세운 큰 뗏목 수십 개를 먼저 흘려보내 송곳을 뽑아 가게 하고, 기름을 부은 큰 횃불로 쇠사슬을 불살라 끊은 뒤 강을 따라 내려가 가는 곳마다 이깁니다. 손호가 항복하고 오의 땅과 백성이 모두 진에 돌아간 뒤, 연의는 「오직 건평태수 오언만이 성을 지키며 항복하지 않다가 오가 망했다는 말을 듣고서야 항복했다」고 적습니다. 연의는 그의 성을 나라 이름과 같은 글자로 적는데, 배송지 주에 인용된 간보의 『진기』도 그렇게 적습니다. 연의에서 오언이 나오는 것은 이 한 줄뿐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오자(위원장군)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건평태수 오언이오.
건평이 떨어지지 않으면 강은 못 건너오. 내 말을 들으시오.
하늘의 때는 하늘이 정하오. 사람의 일은 내가 다 했소.
…흘러온 나뭇조각이 먼저 일러 주었소.
칼을 든 미치광이 앞에서도 나는 앉아 있었소.
내 이름을 못 들었다면, 이제는 들었을 것이오.
말은 졌으나 성은 끝까지 지켰소.
건평은 떨어지지 않소.
사슬이 끊어졌구려….
남쪽은 편안하오. 이제 쉬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