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산(子山) · 미상 ~ 247년 · 서주 임회군 회음현 · 손견 휘하
오이를 심어 끼니를 잇던 가난한 선비에서 오나라 승상에 오른 사람
출전 · 『삼국지』 오서 보즐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오록』 · 『삼국지』 오서 오주전 · 사섭전 · 보부인전 · 손화전 배송지 주의 『통어』 와 배송지의 말 · 주소의 글
보즐은 자가 자산이며 임회군 회음현 사람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는 그의 집안이 진나라 대부 양식이 보 땅을 식읍으로 받은 데서 비롯했고, 진나라와 한나라 사이에 장군으로 공을 세워 회음후에 봉해진 이가 그의 선조라고 적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그는 홀몸으로 강동에 피난해 몹시 가난했습니다. 같은 해에 난 광릉의 위정과 사이가 좋아 둘이 함께 오이를 심어 먹고살았는데, 낮에는 몸을 부지런히 놀리고 밤에는 경전을 외웠습니다. 『오서』는 그가 학문을 두루 깊이 익혔고, 성품이 너그럽고 고아하며 깊어서 뜻을 굽히고 몸을 낮출 줄 알았다고 적습니다.
회계의 호족 초정강은 그 식객들이 제멋대로였는데, 그 땅에서 먹고살던 보즐과 위정은 해를 입을까 두려워 명함을 갖추고 오이를 바치러 갔습니다. 초정강은 안에 누워 두 사람을 한참 기다리게 했고 위정은 그냥 가 버리려 했으나, 보즐은 「본래 그의 힘이 두려워 온 것인데 이제 버리고 가면 고고한 체하는 것일 뿐 원한만 맺는다」며 말렸습니다. 한참 뒤 창을 연 초정강은 휘장 안에 기대앉은 채 두 사람을 창밖 땅바닥 자리에 앉혔고, 저는 큰 상에 음식을 겹겹이 차려 먹으면서 두 사람에게는 작은 소반에 밥과 나물만 주었습니다. 위정은 부끄러워 먹지 못했으나 보즐은 배불리 먹고 인사하고 나왔습니다. 위정이 「어찌 이것을 참는가」 하고 성내자 보즐은 「우리가 가난하고 천하니 주인이 가난하고 천하게 대한 것은 마땅한 일인데 무엇이 부끄러운가」라고 했습니다.
손권이 토로장군이 되자 보즐을 불러 주기로 삼았습니다. 『오서』에 따르면 한 해 남짓 뒤 병으로 물러나 낭야의 제갈근, 팽성의 엄준과 함께 오 땅에서 노닐며 나란히 이름을 떨쳤다고 합니다. 해염장을 지내고 다시 거기장군 동조연으로 불렸습니다. 건안 15년(210) 파양태수로 나갔다가 그해에 교주자사 · 입무중랑장이 되어 활 쏘는 군사 1천 명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갔고, 이듬해 사지절 · 정남중랑장을 더 받았습니다. 유표가 둔 창오태수 오거가 겉으로 따르면서 속으로 딴마음을 품자, 보즐은 뜻을 낮추어 달래며 만나자고 청한 뒤 그를 베어 본보기로 삼으니 위세가 크게 떨쳤습니다. 사섭 형제가 서로 이끌고 명을 받들었고, 남쪽 땅이 오를 섬기게 된 것이 이때부터입니다. 익주의 대성 옹개 등이 촉이 둔 태수 정앙을 죽이고 사섭과 통하며 오에 붙기를 바라자, 보즐은 편의에 따라 사자를 보내 은혜를 펴 받아들였고, 이로써 평융장군을 더하고 광신후에 봉해졌습니다.
연강 원년(220) 손권이 여대를 보내 그와 교대하게 하자, 그는 교주의 의사 1만 명을 이끌고 장사로 나왔습니다. 마침 유비가 동쪽으로 내려오고 무릉의 만이가 들썩이자 손권은 그를 익양으로 올려 보냈고, 유비가 진 뒤에도 영릉 · 계양의 여러 군이 곳곳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그는 두루 돌며 쳐서 모두 평정했습니다. 황무 2년(223) 우장군 · 좌호군이 되고 임상후로 봉작이 바뀌었으며, 5년(226) 부절을 받고 구구로 옮겨 주둔했습니다. 손권이 황제에 오르자(229) 표기장군이 되고 기주목을 겸했으며, 그해에 육손을 대신해 서릉을 도독했는데 기주가 촉의 몫으로 나뉘자 목의 직을 풀었습니다. 무창에 있던 태자 손등이 어진 이를 알고 싶다며 글을 보내자, 보즐은 형주에 있는 제갈근 · 육손 · 주연 · 반준 등 열한 사람의 행실을 가려 적어 보내고, 옛 임금들이 어진 이를 써서 천하를 다스린 예를 들어 태자를 권면했습니다.
뒤에 중서 여일이 문서를 맡아 살피며 많은 사람을 들추어내자 보즐은 글을 올려, 전교들이 털을 불어 흠을 찾고 사람을 빠뜨려 위세를 세우니 죄 없는 이가 큰 형벌을 받고 백성이 두려워 떤다며, 앞으로 옥사는 도읍에서는 고옹에게, 무창에서는 육손 · 반준에게 물어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또 승상 고옹 · 상대장군 육손 · 태상 반준은 나라의 심장과 팔다리 같은 신하이니 다른 관리가 그들을 감시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고, 잦은 가뭄과 잇단 지진을 들어 신하가 정사를 휘두르는 탓이라고 경계했습니다. 손권도 깨달아 마침내 여일을 죽였습니다. 보즐은 앞뒤로 억눌린 이를 천거하고 어려움에 빠진 이를 구하는 글을 수십 번 올렸고, 손권은 다 받아들이지는 못했으나 때때로 그 말을 써서 많은 이가 도움을 받았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은기의 『통어』는 태자 손화와 노왕 손패가 다툴 때 표기장군 보즐이 여대 · 전종 등과 함께 노왕을 따랐다고 적고, 배송지는 덕과 도량으로 이름난 보즐이 노왕에게 붙은 것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적오 9년(246) 육손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었는데, 그래도 문하생을 가르치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옷차림과 거처가 선비와 같았습니다. 다만 집 안의 처첩은 옷과 꾸밈이 사치스러워 이 일로 꽤 비웃음을 샀습니다. 서릉에 스무 해를 있는 동안 이웃의 적도 그의 위엄과 믿음을 존중했고, 성품이 너그럽고 넓어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으며 기쁨과 노여움을 말과 낯빛에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안팎이 엄숙했습니다.
이듬해 죽었는데, 오주전은 적오 10년(247) 5월로 적습니다. 아들 보협이 뒤를 이어 그의 군사를 거느렸고, 보협이 죽자 그 아들 보기가 후를 이었으며, 보협의 아우 보천이 서릉독을 이었습니다. 봉황 원년(272) 손호가 보천을 불러들이자, 대를 이어 서릉에 있던 보천은 자리를 잃고 참소의 화를 입을까 두려워 성을 들어 진나라에 항복했습니다. 진나라가 양호 등을 보내 구원하게 했으나 손호가 보낸 육항이 성을 떨어뜨려 보천 등을 베니, 보씨 집안은 사라지고 보선만이 제사를 이었습니다. 손권의 부인 보씨는 보즐과 같은 집안이었다고 보부인전은 적습니다.
진수는 「제갈근과 보즐은 함께 덕과 도량, 법도로 당대에 그릇을 인정받았다」고 평했습니다. 영천의 주소는 보즐을 두고 「공손하면서도 편안하고 위엄이 있으나 사납지 않다」는 『논어』의 말을 그가 몸소 행했다고 했고, 보즐 · 제갈근 · 엄준이 벼슬 없을 때부터 벗이어서 뒤에 자리의 앞뒤가 뒤바뀌어도 사귐이 끝내 이지러지지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諸葛瑾、歩騭並以德度規檢見器當世吾等貧賤,是以主人以貧賤遇之,固其宜也,當何所恥『삼국연의』 제43~44회 · 제68회 · 제73회 · 제83회
연의에서 보즐은 제43회에 처음 나옵니다. 강동에 건너온 제갈량을 장소 · 우번 등이 차례로 말로 따질 때, 그는 「공명은 장의와 소진의 혀를 본받아 동오를 달래려는가」 하고 묻습니다. 제갈량은 「보자산은 소진과 장의를 말 잘하는 선비로만 여기니, 소진과 장의도 호걸임을 모른다」며, 소진은 여섯 나라의 재상 도장을 찼고 장의는 두 번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는데 조조의 거짓 말에 겁을 먹고 항복을 청하는 이들이 어찌 그들을 비웃느냐고 맞받고, 보즐은 말없이 입을 다뭅니다. 제44회에서는 장소 · 고옹 · 장굉과 함께 주유를 찾아가 조조에게 항복하자고 권합니다.
제68회에서 유수에서 조조와 한 달 넘게 맞서다 장소 · 고옹이 화친을 아뢰자, 손권은 보즐을 조조의 진영에 보내 해마다 공물을 바치겠다며 화친을 청하게 하고, 보즐은 조조의 대답을 받아 돌아옵니다. 제73회에서는 관우가 혼인을 거절하자, 조조가 오에게 군사를 내라는 것은 화를 떠넘기려는 것이니 도리어 조조에게 사자를 보내 조인이 먼저 형주를 치게 하고 관우가 움직이면 그 틈에 형주를 취하자고 꾀를 냅니다. 제83회에서는 유비가 쳐들어오자 장비를 죽인 범강 · 장달과 장비의 머리를 돌려보내 화친을 청하자고 아뢰고, 감택이 육손을 대도독으로 천거하자 「육손의 재주는 고을을 다스릴 만할 뿐, 큰일을 맡기기에는 마땅하지 않다」며 반대합니다. 연의에서 보즐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보협 · 보천 · 손자 보기 · 보선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보즐이 왔소.
오이를 심어 끼니를 잇던 사람이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오.
…남쪽 끝까지 배를 타고 내려갔소.
사람은 눌러서 얻는 것이 아니더이다.
너그러움이 오래가는 법이오.
내 말이 무디었구려.
품으면 따라오는 법이오.
서두른 것이 허물이오.
남쪽은 조용해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