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미상 · 미상 ~ 미상 (264년 이후) · 미상 · 등애 휘하
등애에게 베일 뻔했다가 끝내 등애를 벤 위의 호군
출전 · 『삼국지』 위서 등애전과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세어』 · 종회전 · 촉서 강유전 · 『진서』 위관전
전속은 위의 장수입니다. 자와 고향, 태어나고 죽은 해는 사서에 남지 않았고, 『진서』 위관전이 그를 호군이라 부를 뿐입니다. 그의 이름은 『삼국지』 등애전 · 종회전과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진서』 위관전에 나오며, 모두 경원 4년(263)부터 이듬해까지 위가 촉을 멸한 싸움 속의 일입니다.
263년 겨울 등애는 음평길로 사람이 살지 않는 땅 칠백여 리를 넘어 강유성에 먼저 이르렀고, 촉의 수장 마막이 항복했습니다. 『한진춘추』에 따르면 등애가 강유성으로 내려갈 때 전속이 나아가지 않자 등애는 그를 베려다가 놓아주었습니다. 면죽에서 제갈첨이 무너지고 강유가 검각을 떠나 동쪽으로 물러나자, 부에 이른 종회는 호열 · 전속 · 방회 등을 보내 강유를 뒤쫓게 했습니다. 강유는 광한의 처현에서 병기를 내려놓게 하고 호열에게 부절을 보낸 뒤 종회에게 항복했습니다. 그해 12월 등애는 촉을 평정한 공으로 태위가 되었습니다.
이듬해(264) 등애는 함거에 실려 불려 갔고, 성도에 온 종회는 난을 일으켰다가 죽었습니다. 등애 본영의 장병들이 함거를 뒤쫓아 등애를 빼내 돌아오자, 감군 위관은 전속 등을 보내 등애를 치게 했고, 그들은 면죽 서쪽에서 등애를 만나 베었습니다. 아들 등충도 함께 죽었고, 배송지 주의 『세어』는 등애의 사마 사찬도 함께 죽었다고 적습니다. 『진서』 위관전은 위관이 종회와 함께 등애를 모함한 일로 변이 날까 두려워하고 종회를 벤 공을 홀로 차지하려 하여 호군 전속을 면죽으로 보냈고, 전속이 삼조정에서 밤에 습격해 등애와 등충을 베었다고 적습니다. 위관은 그를 보내며 「강유성의 치욕을 갚을 수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일을 들은 두예는 여러 사람 앞에서, 위관이 덕스러운 말이 없고 아랫사람을 바르게 부리지 못한다며 화를 면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위관은 수레를 기다리지 않고 달려가 사과했으나, 『진서』는 끝내 그 말대로 되었다고 적습니다. 전속의 이름은 그 뒤 사서에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사서에 남은 것은 이것뿐입니다.
初艾之下江由也,以續不進,欲斬,既而捨之。及瓘遣續,謂曰:「可以報江由之辱矣。」乃遣護軍田續至綿竹,夜襲艾於三造亭,斬艾及其子忠『삼국연의』 제116~117회 · 제119회
연의에서 전속은 제116회에 처음 이름이 나옵니다. 촉을 치러 나선 종회가 장수들을 모을 때 감군 위관 · 호군 호열과 함께 대장 전속 · 방회 · 전장 등 여든여 명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제117회에서 그는 등애의 부장으로 나옵니다. 강유성을 얻은 등애가 음평 샛길로 온 군사들을 강유성에 모아 곧장 부성을 치러 가려 하자, 전속은 「우리 군은 험한 길을 건너와 몹시 지쳤으니 며칠 쉬게 한 뒤 나아가야 합니다」 하고 청합니다. 등애는 「군사는 귀신같이 빨라야 하거늘 네가 감히 군심을 어지럽히느냐」 하고 크게 노해 끌어내어 베라 하고, 여러 장수가 간곡히 빌어서야 그는 죽음을 면합니다. 등애는 몸소 군을 몰아 부성에 이르고, 성안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줄 알고 모두 항복합니다.
제119회에서 종회와 강유가 죽은 뒤 등애의 부하들이 밤새 등애를 빼내러 가자, 위관은 등애를 잡은 것이 자신이니 그를 살려 두면 묻힐 땅도 없으리라고 걱정합니다. 이때 호군 전속이 「지난날 등애가 강유성을 얻을 때 나를 죽이려 했고 여러 관원이 빌어 겨우 면했으니, 오늘 이 원한을 갚겠다」고 나서고, 위관은 크게 기뻐하며 군사 오백을 주어 보냅니다. 면죽에 이른 전속은 함거에서 풀려나 성도로 돌아가던 등애 부자를 만나고, 제 본영 군사가 온 줄로만 알고 대비하지 않던 등애를 묻기도 전에 한칼에 벱니다. 등충도 어지러운 싸움 속에서 죽습니다. 연의에서 전속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위의 호군 전속이오.
강유성의 일을 잊은 적이 없소. 말로 덮으려 들지 마시오.
머뭇거린 것이 아니라 지친 군사를 아낀 것이오.
…그날 목에 닿았던 칼끝이 아직도 서늘하오.
원한으로 든 칼이라 한들 명은 명이었소.
치욕은 갚았소. 이제 더 할 말이 없소.
갚은 것은 원한뿐이고 이름은 잃었구려.
제 군사인 줄 알고 등을 보인 쪽이 진 것이오.
밤길에 나선 칼이 거꾸로 베였구려.
강유성의 빚은… 다 갚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