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백신(伯愼) · 미상 ~ 191년 · 형주 남양군 양현 · 하진 휘하
서량 반란을 토벌했으나 동탁의 교만함을 꺾지 못해 화를 입은 삼공
출전 · 『후한서』 동탁전 · 영제기 · 헌제기 · 주준전 · 장현전 · 조기전 · 공손찬전 · 『삼국지』 오서 손견전 · 위서 동탁전 · 도겸전 · 무제기와 배송지 주의 『부자』 · 『오서』 · 『속한서』
장온은 자가 백신이며 남양군 양현 사람입니다. 제 전은 없어 그의 행적은 『후한서』 동탁전 · 영제기와 여러 사람의 전에 흩어져 있고, 출신은 동탁전의 이현 주에 인용된 『한관의』가 「양현 사람」이라 적은 것입니다. 동탁전은 그가 젊어서 이름이 있었고 여러 번 공경에 올랐다고 적습니다. 『삼국지』 무제기의 배송지 주에 인용된 사마표의 『속한서』는 환관 조등이 천거해 공경에 오르게 한 이름난 사람들 가운데 남양의 장온을 듭니다. 동탁전의 배송지 주에 인용된 『부자』는 영제 때 문에 방을 붙여 벼슬을 팔자 태위 단경 · 사도 최열 · 태위 번릉 · 사공 장온 같은 이들이 많게는 천만, 적게는 5백만 전을 바쳐 삼공을 샀다며, 장온은 뛰어난 재주가 있었는데도 재물로 자리를 얻었다고 적습니다.
중평 원년(184) 4월 대사농에서 사공이 되었습니다. 그해 남양의 황건을 에워싼 주준이 석 달이 지나도록 완성을 떨어뜨리지 못해 조정이 그를 불러들이려 하자, 장온은 진나라가 백기를, 연나라가 악의를 써서 여러 해가 걸려서야 적을 이겼다며 「싸움에 임해 장수를 바꾸는 것은 병가가 꺼리는 바」라고 글을 올렸고, 영제는 그 뜻을 거두었습니다.
중평 2년(185) 변장 · 한수가 삼보를 노략하자 8월 사공으로서 거기장군을 맡아 부절을 받고 나섰습니다. 떠나기 앞서, 일찍이 장온이 여러 번 예를 갖춰 불러도 오지 않던 장현이 거친 베옷 차림으로 찾아와 평락관의 전송 잔치에서 군법으로 죄 있는 자를 베고 군사를 도정으로 돌려 환관을 차례로 없애라고 권했습니다. 장온은 크게 놀라 한참 대답하지 못하다가 「그대의 말이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나는 행할 수 없다」고 했고, 장현이 약을 먹으려 하자 손을 잡아 말렸습니다. 장온은 파로장군 동탁과 탕구장군 주신을 거느리고 여러 군의 보병과 기병 10여만으로 미양에 주둔했습니다. 참군 손견 · 사마 도겸 · 장사 조기가 그의 막하에 있었고, 공손찬은 오환 돌기를 이끌고 따랐습니다.
『삼국지』 손견전에 따르면 장온이 조서로 동탁을 불렀을 때 동탁은 한참 뒤에야 왔고 꾸짖음에도 불손하게 대꾸했습니다. 손견이 다가가 귓속말로 부름에 늦게 온 죄를 군법으로 다스려 베라고 하자, 장온은 「동탁은 농 · 촉 사이에 위명이 높으니 오늘 죽이면 서쪽으로 갈 때 기댈 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손견이 동탁의 세 가지 죄를 들어 거듭 권했으나 장온은 차마 하지 못하고 「그대는 돌아가라, 동탁이 의심하겠다」고 했습니다. 『후한서』는 11월 밤에 유성이 적진을 비추자 적이 돌아가려 했고, 동탁 등이 이튿날 쳐서 크게 깨뜨려 변장 · 한수를 유중으로 쫓았다고 적습니다. 그러나 장온이 보낸 주신은 유중을 에워쌌다가 보급로를 끊겨 물러났고, 선령강을 치던 동탁도 에워싸였다가 홀로 군사를 온전히 하여 돌아왔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는 군사가 돌아와 백관이 모인 잔치에서 도겸이 여럿 앞에서 장온을 욕보였다가 변방으로 쫓겨났으나, 장온이 남의 말을 듣고 다시 불러 처음처럼 대했다고 적습니다.
중평 3년(186) 봄 장안에서 태위에 임명되었는데, 『후한서』는 삼공이 도읍 밖에 있으면서 임명된 것이 장온에게서 비롯했다고 적습니다. 그해 겨울 도읍으로 불려 돌아왔고, 중평 4년(187) 4월 태위에서 물러났습니다.
동탁이 정권을 잡은 뒤 장온은 위위로 있었습니다. 『후한서』는 장온이 남몰래 사도 왕윤과 함께 동탁을 없애려 꾀했으나 일을 일으키기 전에 해를 입었다고 적습니다. 초평 2년(191) 10월 태사가 기운을 살피고 대신 가운데 죽임을 당할 자가 있다고 하자, 동탁은 사람을 시켜 장온이 원술과 내통했다고 무고하고 저잣거리에서 매질해 죽여 하늘의 변괴를 막았다고 했습니다. 『삼국지』 동탁전은 장온이 본디 동탁과 사이가 나빠 동탁이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고 적고, 『후한서』 동탁전은 손견의 말을 따르지 않았는데도 동탁이 원한을 품고 있었기에 화를 입었다고 적습니다.
卓有威名,方倚以西行溫不能從,而卓猶懷忌恨,故及於難『삼국연의』 제8회
연의에서 장온은 제8회에 한 번 나옵니다. 동탁이 성대에 백관을 모아 잔치를 벌이고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때, 여포가 곧장 들어와 동탁의 귀에 몇 마디 속삭입니다. 동탁은 웃으며 「그랬구나」 하고는 여포를 시켜 자리에 있던 사공 장온을 끌어 내리게 하고, 백관은 낯빛을 잃습니다. 얼마 뒤 시종이 붉은 쟁반에 장온의 머리를 받쳐 들어오자 백관은 넋이 나갑니다. 동탁은 「공들은 놀라지 마라, 장온이 원술과 손잡고 나를 해치려 했는데 보낸 편지가 잘못하여 내 아들 봉선에게 떨어졌기에 베었다, 공들과는 상관없다」고 웃습니다. 이 일로 집에 돌아온 사도 왕윤이 잠을 못 이루다 뒤뜰에서 초선을 만나 연환계를 꾸미게 됩니다. 연의는 서량 정벌이나 손견의 권유 같은 장온의 앞일은 그리지 않습니다. 연의에서 장온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삼공이 몸소 나왔소.
삼공을 지낸 몸이오. 예로 대하시오.
무엄한 자를 많이 보았으나 지지는 않았소.
…동탁의 눈빛이 떠오르는군.
그래도 조정의 체통이 있지.
관록이란 이런 것이오.
그때 동탁을 베었어야 했소….
삼공의 이름값이오.
…교만한 자를 못 꺾었소.
교만한 자를 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