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융孔融

자 문거(文舉) · 153년 ~ 208년 · 예주 노국 · 한 세력의 주인

조조의 독재에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건안칠자의 명사이자 공자의 후손

능력치

통솔30무력5지력72정치76매력65

카드

공격력 1체력 2비용 1값어치 5직군 능리
보급 비용 1
다음 국면 지휘력 +2

정사

공융(孔融)은 후한 말의 저명한 학자이자 정치인으로, 공자의 후손이며 건안칠자(建安七子) 중 한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10세 때 당대 명사인 이응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재치 있는 말로 좌중을 놀라게 하였으며, 여기서 '소시료료(小時了了)'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습니다. 성품이 의롭고 배움을 좋아하여 청의파 선비로 명성을 떨쳤고, 황건적의 난 때는 노식의 부장으로 활약했습니다. 이후 동탁의 횡포를 비판하다가 북해의 상으로 전출되었습니다. 북해에서는 황건적을 격파하는 한편, 학교를 세우고 학문을 장려하는 등 훌륭한 통치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황건적 잔당인 관해의 습격을 받았을 때는 유비와 태사자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원담과의 싸움에서 패해 영지를 잃고 헌제가 있는 허도로 가 장작대장, 소부 등의 관직을 역임했습니다. 조정에서 권력을 장악해가던 조조의 야심과 정치를 거침없이 비판하여 조조의 깊은 원망을 샀습니다. 특히 예형을 추천하는 과정 등에서 조조와의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결국 208년 조조의 형주 정벌을 비판했다가 처형되었으며, 그의 어린 자녀들을 포함한 가문 전체가 몰살당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 공융은 북해 태수로서 유비와 깊은 인연을 맺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관해의 황건적 무리에게 포위당했을 때 태사자의 활약과 유비의 구원병 덕분에 위기를 탈출하는 극적인 과정이 그려집니다. 연의에서 공융의 수하 장수로 등장하여 여포와 맞서 싸우다 한 팔을 잃는 무안국(武安國)과 관해에게 죽임을 당하는 종보(宗寶)는 실제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고 나관중의 소설에서 창조된 가공의 인물들입니다. 또한 조조에게 예형을 천거하여 조조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화 등이 연의의 극적 재미를 더하는 요소로 차용되었습니다.

가족

아버지 공주, 7대조 공패, 고조부 공상, 아들(사망 당시 9세), 딸(사망 당시 7세)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제 열전에서 한 자락씩 따 왔습니다.

싸움터에 들며

공자의 후손이오.

말을 열며

네 살에 배를 양보한 이야기, 아시오?

되받으며

권세 앞이라고 말을 굽히지는 않소.

말문이 막혀

…또 미움을 샀는가.

말문이 막혀

그래도 붓은 꺾지 않소.

설전을 이기고

글과 예는 못 이기는 법이오.

설전에 지고

바른말의 값이 목숨이라도 좋소.

이긴 뒤

바른 말이 이겼소.

진 뒤

…둥지가 깨지면 알도 성치 못하오.

쓰러지며

둥지가 깨지면 알도 성치 못하다.

근거 · 공자의 후손이자 건안칠자. 어려서 배를 양보했고 조조에게 직언을 거듭하다 처형됨. · 공자의 후손이자 건안칠자. · 208년 일족과 함께 처형. 복소지하 기유완란의 고사. · 복소지하 기유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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