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수고(遂高) · 미상 ~ 189년 · 형주 남양군 완현 · 한 세력의 주인
백정에서 대장군까지 올랐으나 우유부단으로 십상시에게 암살당한 외척
출전 · 『후한서』 하진전 · 황후기 · 영제기 · 동탁전 · 환자열전 · 『삼국지』 위서 동탁전 · 원소전 · 무제기와 배송지 주의 『속한서』 · 『영웅기』 · 『위서』 · 촉서 선주전 · 위서 하안전
하진은 자가 수고이며 남양군 완현 사람입니다. 『후한서』 황후기는 하황후의 집안이 본디 백정이었다고 적고, 배송지 주에 인용된 『속한서』도 하진이 백정 집안의 아들이며 아버지의 이름이 진이라고 적습니다. 배다른 누이동생이 뽑혀 후궁에 들어가 귀인이 되고 영제의 총애를 받자, 하진은 낭중에 임명되고 호분중랑장을 거쳐 영천태수로 나갔습니다. 누이가 황후가 되자 불려 들어와 시중 · 장작대장 · 하남윤이 되었습니다.
중평 원년(184) 장각 등 황건이 일어나자 대장군이 되어 좌우 우림과 다섯 영의 군사를 거느리고 도정에 주둔하며 무기를 손보고 도읍을 지켰습니다. 장각의 다른 무리 마원의가 낙양에서 일을 꾸미자 그 간사함을 들춰내 그 공으로 신후에 봉해졌습니다. 『삼국지』 선주전은 그 뒤 하진이 도위 관구의를 단양으로 보내 군사를 모을 때 유비가 따라가 싸워 공을 세웠다고 적습니다. 중평 4년(187)에는 아우인 하남윤 하묘가 형양의 도적을 깨뜨려 거기장군이 되었습니다. 중평 5년(188) 천하가 더욱 어지러워지자 영제는 하진에게 사방의 군사를 크게 일으켜 평락관 아래에서 군사를 사열하게 했고, 스스로 갑옷을 입고 「무상장군」이라 일컬었습니다. 이때 서원에 여덟 교위를 두면서 소황문 건석을 상군교위로 삼아 원소 · 조조 등을 거느리게 했는데, 대장군조차 그의 지휘 아래 들었습니다. 건석이 여러 상시와 짜고 하진을 서쪽의 변장 · 한수 토벌로 내보내게 하자, 하진은 꾀를 알아채고 원소를 동쪽으로 보내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며 길 떠날 날을 늦췄습니다.
영제는 하황후가 낳은 황자 유변이 가볍고 위엄이 없다 하여 오래 태자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중평 6년(189) 병이 깊어진 영제는 왕미인이 낳은 유협을 건석에게 부탁했고, 영제가 죽자 건석은 먼저 하진을 죽이고 유협을 세우려 했습니다. 하진이 궁으로 들어서자 하진과 오래 사귄 건석의 사마 반은이 눈짓을 보냈고, 놀란 하진은 샛길로 군영에 돌아가 병을 핑계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유변이 즉위하고 하태후가 조정에 나서자 하진은 태부 원외와 함께 정사를 보필하며 상서의 일을 맡았습니다. 건석이 중상시 조충 등에게 하진 형제를 잡아 죽이자는 글을 보냈으나, 하진과 같은 군 사람인 중상시 곽승이 그 글을 하진에게 보였고 하진은 황문령을 시켜 건석을 잡아 죽였습니다. 영제의 어머니 동태후가 표기장군 동중을 시켜 하진의 머리를 베어 오게 하겠다고 하자, 하진은 삼공과 함께 아뢰어 동태후를 본국으로 옮기게 하고 동중의 부를 에워싸 그를 자결하게 했습니다. 근심하던 동태후가 갑자기 죽자 백성들은 하씨를 탓했습니다.
하진은 환관이 천하의 미움을 받는 줄 알았고 건석의 일로 노해 있어 몰래 그들을 없앨 꾀를 세웠습니다. 원소도 하진의 가까운 손님 장진을 통해 이를 권했고, 하진은 원소 · 원술 형제를 두텁게 대하며 방기 · 하옹 · 순유 같은 꾀 있는 선비들을 불러 심복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하태후는 「환관이 궁중을 거느리는 것은 예부터 한나라의 옛 법이라 없앨 수 없다」며 듣지 않았습니다. 하진은 방자한 몇 사람만 베려 했으나 원소는 모두 없애야 한다고 맞섰고, 태후의 어머니 무양군과 하묘는 환관들에게서 여러 번 뇌물을 받아 태후 앞에서 그들을 감쌌습니다. 『후한서』는 하진이 겉으로 큰 이름을 거두었으나 안으로 결단하지 못해 일이 오래 정해지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원소 등이 사방의 사나운 장수와 호걸을 불러 도성으로 군사를 몰아 태후를 위협하자고 꾀하자 하진이 따랐습니다. 주부 진림은 「눈을 가리고 참새를 잡는다」는 속담을 들어, 큰 군사가 모이면 강한 자가 우두머리가 되니 칼자루를 남에게 쥐여 주는 꼴이라고 간했으나 하진은 듣지 않았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는 조조가 이 일을 듣고 웃으며 「죄를 다스리려면 우두머리만 베면 되니 옥리 하나로 족한데 어찌 바깥 장수를 부르는가, 모두 죽이려 하면 일이 반드시 새어 나가 실패할 것」이라 했다고 적습니다. 하진은 전장군 동탁을 관중의 상림원에 머물게 하고, 교모를 성고에 두고, 정원을 시켜 맹진을 불사르게 해 그 불빛이 도성을 비추게 했습니다. 하묘가 「함께 남양에서 올라와 가난하고 천했으나 궁중에 기대어 부귀를 얻었으니, 엎지른 물은 거둘 수 없다」며 말리자 하진은 다시 망설였고, 원소가 다그치자 원소를 사예교위로, 왕윤을 하남윤으로 삼았습니다. 두려워진 태후가 중상시와 소황문을 모두 내보내자 그들이 하진을 찾아와 죄를 빌었는데, 원소가 두세 번이나 이 자리에서 결단하라고 권했으나 하진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장양의 며느리가 태후의 누이였는데, 장양이 그 며느리에게 머리를 조아려 빌자 무양군을 거쳐 태후가 상시들을 모두 궁으로 다시 들였습니다. 189년 8월 하진이 장락궁에 들어가 태후에게 상시 이하를 모두 베자고 청하자, 몰래 엿들은 장양 등은 단규 · 필람 등 수십 명과 무기를 들고 숨어 있다가 태후의 조서라 속여 하진을 불러들였습니다. 장양 등은 「궁중이 더럽다 하는데 공경 이하 충성스럽고 깨끗한 이가 누구냐」며 하진을 꾸짖었고, 상방감 거목이 가덕전 앞에서 칼을 뽑아 하진을 베었습니다. 환관들은 하진의 머리를 상서들에게 던지며 「하진이 모반하여 이미 죽임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하진의 부곡장 오광 · 장장이 군사를 몰아 궁으로 들어가려 했고, 원술은 남궁의 구룡문과 동서궁에 불을 질렀습니다. 오광은 하묘가 하진과 한마음이 아니었고 환관과 짰다고 의심해 「대장군을 죽인 자는 거기장군」이라 외쳤는데, 하진이 평소 어질고 은혜로웠기에 군사들이 모두 울며 죽기를 바랐고 오광은 동탁의 아우 동민과 함께 하묘를 쳐 죽였습니다. 원소는 북궁의 문을 닫고 환관을 늙고 젊음을 가리지 않고 죽였습니다. 하진과 하묘의 부곡은 동탁에게 돌아갔고, 동탁은 황제를 폐하고 태후와 무양군을 죽여 하씨는 끝내 망했습니다. 『삼국지』 하안전에 따르면 하진의 손자 하안은 어머니 윤씨가 조조의 부인이 되어 궁중에서 자랐습니다. 범엽은 두무와 하진을 두고 「외삼촌의 자리와 보필의 권세를 쥐고도 끝내 환관에게 일을 그르쳐 몸이 죽었으니, 지혜는 모자라고 권세만 남았던 것인가」라고 평했습니다.
卒而事敗閹豎,身死功穨,為世所悲,豈智不足而權有餘乎雖外收大名而內不能斷,故事久不決『삼국연의』 제1~3회
연의에서 하진은 제1회에 처음 나옵니다. 장각의 무리 마원의가 궁중과 내통한 일이 드러나자 영제가 대장군 하진을 불러 마원의를 잡아 베게 하고, 황건이 일어나자 하진은 영제에게 아뢰어 각지에 막으라는 조서를 내리게 하고 중랑장 노식 · 황보숭 · 주준을 세 갈래로 보내 치게 합니다.
제2회는 하진이 백정 집안에서 일어나 누이가 귀인이 되어 황자 변을 낳고 황후가 되자 권세를 얻었다고 소개합니다. 영제가 병이 깊어 그를 부르자 사마 반은이 건석의 꾀를 알려 하진은 집으로 돌아가고, 환관을 다 없애기 어렵다는 조조를 「어린놈이 조정의 큰일을 어찌 아느냐」고 꾸짖습니다. 원소가 정예 오천을 빌려 달라고 나서자 어림군 오천을 주어 태자 변을 즉위시키고, 건석은 달아나다 곽승에게 죽습니다. 원소가 이참에 환관을 다 베자 하자, 하태후는 「너와 나는 미천한 데서 나왔으니 장양 등이 아니었으면 어찌 부귀를 누리랴」며 하진을 달래고, 하진은 건석의 집안만 없애고 나머지는 해치지 말라고 합니다. 동태후와 하태후가 다투자 하진은 동태후를 하간으로 내보내고 표기장군 동중의 집을 에워싸 자결하게 하며, 6월에는 사람을 시켜 동태후를 하간의 역참에서 독살합니다. 원소가 다시 환관을 치자 권하나 태후가 반대하자, 원소의 말대로 사방의 영웅을 불러들이는 격문을 보냅니다. 주부 진림이 「눈을 가리고 참새를 잡는 격」이라 말리자 하진은 「겁쟁이의 소견」이라며 웃습니다.
제3회에서 조조가 「옥리 하나면 족한데 어찌 바깥 군사를 부르느냐」고 하자 하진은 노하고, 조조는 물러나며 「천하를 어지럽힐 자는 하진」이라고 합니다. 정태와 노식이 동탁을 부르지 말라고 간해도 듣지 않습니다. 장양 등이 장락궁 가덕문 안에 도부수를 숨기고 태후에게 하진을 부르게 하자, 진림이 가지 말라 하고 원소와 조조가 먼저 십상시를 불러내라 했으나 하진은 「천하의 권세를 쥔 나를 십상시가 어찌하랴」 하며 웃습니다. 원소와 조조가 칼을 차고 장락궁 앞까지 호송하지만 대장군만 들라는 말에 막히고, 홀로 들어간 하진은 가덕전 문에서 장양 · 단규 등에게 둘러싸입니다. 장양이 동태후를 독살한 일과 「본디 백정과 술장수의 무리」였던 그를 자신들이 천거한 일을 들어 꾸짖고, 숨어 있던 군사들이 나와 하진을 두 동강 냅니다. 환관들은 그의 머리를 담 너머로 던집니다. 연의에서 하진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진 · 배다른 누이 하태후 · 의붓아우 하묘 · 손자 하안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대장군이 왔다.
백정에서 대장군까지 오른 몸이오.
칼 쓰는 법은 푸줏간에서 다 배웠소.
…환관 놈들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군.
결단… 결단을 해야 하는데.
결단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오!
십상시… 역시 먼저 베었어야 했소.
대장군의 이름값이다.
…십상시의 말을 믿었구나.
…궁에 들지 말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