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식盧植

자 자간(子幹) · 미상 ~ 192년 · 유주 탁군 탁현 · 하진 휘하

노식 초상

유비를 가르치고 동탁 앞에서 홀로 아니라 말한 스승

능력치

통솔86무력63지력82정치85매력85

카드

공격력 4체력 5비용 3값어치 11직군 주공
결진 비용 2
아군 전체에게 방벽 1 (이번 국면)

정사

출전 · 『후한서』 노식전 · 하진전 · 동탁전 · 정현전 · 황보숭전 · 『삼국지』 위서 동탁전 · 노육전과 배송지 주의 『속한서』 · 촉서 선주전 · 위서 공손찬전

노식은 자가 자간이며 탁군 탁현 사람입니다. 『후한서』 노식전은 그의 키가 여덟 자 두 치였고 목소리가 종처럼 울렸다고 적습니다. 젊어서 정현과 함께 마융을 섬겼는데, 외척의 큰 집안인 마융이 늘 여인들의 노래와 춤을 앞에 벌여 두었어도 노식은 여러 해 강의를 받는 동안 한 번도 눈을 돌리지 않아 마융이 그를 공경했습니다. 옛 글과 지금 글에 두루 통했고 깊이 파고들기를 좋아해 글귀 풀이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성품이 굳세고 큰 절개가 있어 세상을 건질 뜻을 품었으며, 글 짓는 재주를 좋아하지 않았고 술은 한 섬을 마셨다고 합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속한서』는 그가 정현과 한 스승 아래서 벗했다고 적고, 『후한서』 정현전은 정현이 노식을 통해 마융을 섬기게 되었다고 적습니다.

건녕 원년(168) 영제를 세운 대장군 두무에게 봉작을 더하자는 의논이 일자, 벼슬 없는 몸이던 노식은 두무에게 글을 올려 큰 상을 사양해 몸과 이름을 온전히 하라고 권했으나 두무는 듣지 않았습니다. 주와 군이 여러 번 불러도 나가지 않다가 건녕 연간에 박사로 불려 비로소 벼슬길에 나섰습니다. 희평 4년(175) 구강의 만이가 일어나자 문무를 겸했다 하여 구강태수가 되었고 만이가 복종했습니다. 병으로 물러난 뒤에는 『상서장구』와 『삼례해고』를 지었습니다. 『삼국지』 선주전은 열다섯 살의 유비가 같은 집안의 유덕연, 요서의 공손찬과 함께 「전 구강태수」인 같은 고을의 노식을 섬겼다고 적습니다.

남쪽의 이민족이 다시 일어나자 구강에서 쌓은 믿음 때문에 여강태수가 되었고, 한 해 남짓 뒤 의랑으로 불려 마일제 · 채옹 · 양표 · 한설 등과 동관에서 나라의 책과 오경을 교정하고 한나라의 기록을 이어 썼습니다. 이어 시중을 거쳐 상서가 되었고, 광화 원년(178) 일식이 일자 봉한 글을 올려 어진 이를 쓰고 당고에 묶인 이들을 풀어 주라는 것을 비롯한 여덟 가지를 아뢰었으나 영제는 살피지 않았습니다.

중평 원년(184) 황건이 일어나자 사부의 천거로 북중랑장이 되어 부절을 받고, 호오환중랑장 종원을 부장으로 삼아 북군 오교의 군사와 여러 군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섰습니다. 잇달아 싸워 장각을 깨뜨리고 1만여 명을 베거나 사로잡았으며, 장각 등이 광종으로 물러나 지키자 에워쌀 담을 쌓고 구름사다리를 만들어 곧 성을 떨어뜨릴 참이었습니다. 이때 영제가 소황문 좌풍을 보내 형세를 살피게 했는데, 좌풍에게 뇌물을 보내라는 권유를 노식은 듣지 않았습니다. 돌아간 좌풍은 「광종의 적은 깨뜨리기 쉬운데 노 중랑이 보루를 굳게 하고 군사를 쉬게 하며 하늘이 벌하기만 기다린다」고 아뢰었고, 노한 영제는 노식을 함거에 실어 불러들이고 사형에서 한 등급을 덜었습니다. 그 자리는 동중랑장 동탁이 이어받았습니다. 뒤에 황보숭이 황건을 평정하고 나서 노식의 용병을 크게 칭찬하며 제 공이 그의 계책에 힘입었다고 하자, 노식은 그해에 다시 상서가 되었습니다.

중평 6년(189) 영제가 죽자 대장군 하진이 환관을 없애려고 병주목 동탁을 불러들이려 했습니다. 노식은 동탁이 사나워 다루기 어렵고 반드시 뒷날의 걱정거리가 되리라 보고 굳게 말렸으나 하진은 듣지 않았습니다. 하진이 환관에게 죽고 궁중이 어지러워지자, 『후한서』 하진전은 상서 노식이 창을 들고 누각 복도의 창 아래에서 태후를 끌고 가던 단규를 꾸짖어 태후를 놓게 했고, 환관들이 어린 황제를 데리고 소평진으로 달아나자 공경 가운데 홀로 밤을 도와 황하 가로 달려갔다고 적습니다.

동탁이 도읍에 들어와 백관을 모아 황제를 갈아 세우자고 하자 아무도 말을 못 했는데, 노식만이 이윤과 곽광의 옛일은 지금과 견줄 수 없다며 홀로 반대했습니다. 동탁은 노하여 자리를 파하고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노식은 본디 채옹과 사이가 좋아, 채옹이 삭방으로 귀양 갔을 때 홀로 글을 올려 그를 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동탁에게 아낌을 받던 채옹이 노식의 일을 청하러 갔고, 의랑 팽백도 「노 상서는 온 나라의 큰 선비로 사람들이 우러르는 이인데, 지금 먼저 해치면 천하가 두려워 떨 것」이라 간하자, 동탁은 뜻을 거두고 그의 벼슬만 빼앗았습니다.

노식은 늙고 병들었다며 돌아가기를 청했으나 화를 면하지 못할까 두려워 샛길로 환원을 빠져나갔고, 동탁이 과연 사람을 보내 쫓게 했으나 회현에 이르러서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그 뒤 상곡에 숨어 사람들과 사귀지 않았고, 기주목 원소가 그를 군사로 청했습니다. 초평 3년(192)에 죽었는데, 죽음을 앞두고 아들 노검에게 관을 쓰지 말고 흙구덩이에 홑겹 비단만 몸에 둘러 묻으라고 일렀습니다. 『속한서』는 그가 상곡의 군도산에 숨어 살았고 아들이 넷이었다고 적습니다.

건안 12년(207) 조조는 유성을 치러 가는 길에 탁군을 지나며 「옛 북중랑장 노식은 이름이 온 나라에 드러났고 학문은 선비들의 으뜸이니, 선비의 본보기요 나라의 기둥」이라 하고 사람을 보내 그 무덤을 손보고 자손을 돌보게 했습니다. 네 아들 가운데 막내 노육은 위나라에서 이부상서를 거쳐 사공에 올랐습니다. 『후한서』를 쓴 범엽은 「바람과 서리에 풀과 나무의 성질이 갈리듯 위태롭고 어지러운 때에 곧고 어진 이의 절개가 드러나니, 노공의 마음을 알 만하다」고 평했습니다.

風霜以別草木之性,危亂而見貞良之節,則盧公之心可知矣
바람과 서리에 풀과 나무의 성질이 갈리듯 위태롭고 어지러운 때에 곧고 어진 이의 절개가 드러나니, 노공의 마음을 알 만하다『후한서』 노식전 논
名著海內,學為儒宗,士之楷模,國之楨干也
이름이 온 나라에 드러났고 학문은 선비의 으뜸이니, 선비의 본보기요 나라의 기둥이다『후한서』 노식전에 실린 조조의 영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3회

연의에서 노식은 제1회에 처음 나옵니다. 황건이 일어나자 하진의 아룀으로 황보숭 · 주준과 함께 세 갈래로 나선 중랑장이고, 연의는 유비가 열다섯에 정현과 노식을 스승으로 섬기고 공손찬 등과 벗했다고 소개합니다. 청주의 포위를 푼 유비는 「예전에 노식을 스승으로 섬겼으니 가서 돕고 싶다」며 관우 · 장비와 광종의 진영을 찾아가고, 노식은 크게 기뻐하며 그를 장막 앞에 둡니다. 연의의 노식은 군사 5만으로 장각의 15만과 광종에서 맞서 있고, 영천의 장량 · 장보를 살피라며 유비에게 관군 1천을 더 붙여 보냅니다.

영천에서 돌아오던 유비는 함거에 실려 가는 스승을 길에서 만나 놀라 말에서 뛰어내립니다. 노식은 황문 좌풍이 뇌물을 달라기에 「군량도 모자란데 어디에 남는 돈이 있어 천자의 사자를 받들겠소」 하고 답했더니, 앙심을 품은 좌풍이 자기가 보루만 높이고 싸우지 않는다고 아뢰어 동탁이 대신 오게 되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장비가 호송하는 군사를 베고 스승을 구하려 하자 유비는 「조정에 공론이 있을 것」이라며 말립니다. 제2회에서는 황보숭이 노식에게 공이 있고 죄가 없다고 아뢰어 그가 옛 벼슬을 되찾습니다.

제3회에서 노식은 하진이 동탁을 불러들이려 하자 「동탁은 얼굴은 착하나 마음이 사납다」며 말리고, 하진이 듣지 않자 정태와 함께 벼슬을 버립니다. 아직 떠나지 않은 채 궁중에 변이 나자 갑옷을 입고 창을 든 채 누각 아래 서서 태후를 끌고 가던 단규를 꾸짖어 태후를 구합니다. 동탁이 황제를 갈아 세우자고 하자 이윤과 곽광의 옛일을 들어 「이윤의 뜻이 있으면 괜찮지만 그 뜻이 없으면 찬탈」이라 맞서고, 칼을 뽑아 든 동탁을 의랑 팽백이 「노 상서는 온 나라가 우러르는 이」라며 말려 목숨을 건집니다. 연의에서 노식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68대장군 두무에게 글을 올려 큰 상을 사양하라고 권했습니다.
  2. 175구강의 만이가 일어나자 구강태수가 되어 복종시켰습니다.
  3. 175병으로 물러난 뒤 같은 고을의 유비와 요서의 공손찬을 가르쳤습니다.탁군의 스승과 제자
  4. 178일식을 두고 봉한 글을 올려 여덟 가지를 아뢰었습니다.
  5. 184북중랑장으로 광종에서 장각을 에워쌌으나 좌풍의 참소로 함거에 실려 갔습니다.죄수 수레를 만난 길
  6. 184황보숭이 그의 용병을 칭찬해 다시 상서가 되었습니다.
  7. 189동탁의 폐립에 홀로 맞섰다가 벼슬을 빼앗기고 상곡으로 숨었습니다.
  8. 192관 없이 홑겹 비단으로 묻으라 이르고 죽었습니다.
  9. 207조조가 탁군을 지나며 그의 무덤을 손보고 자손을 돌보게 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넷(노검 · 막내 노육)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탁군의 노식이오.

말을 열며

글을 가르치던 사람이오. 말은 익숙하오.

되받으며

옳지 않은 것을 옳다 한 적은 없소.

말문이 막혀

…광종에서 장각을 몰아붙이던 참이었소.

말문이 막혀

뇌물을 주지 않았다는 죄로 잡혀갔소.

설전을 이기고

바른말은 늦어도 서는 법이오.

설전에 지고

말이 모자랐을 뿐 뜻은 그대로요.

이긴 뒤

글을 아는 자가 싸움도 아오.

진 뒤

물러설 때를 아는 것도 배움이오.

쓰러지며

제자들이 남았으니 되었소.

같은 기치 아래

유우하진왕윤장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