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자太史慈

자 자의(子義) · 166년 ~ 206년 · 청주 동래군 황현 · 유요 휘하

태사자 초상

믿음과 의리가 두텁고 활을 잘 쏘아 남방을 맡은 동래의 장수

능력치

통솔86무력93지력67정치58매력79

카드

공격력 6체력 5비용 4값어치 13직군 맹장
신궁 호령
적 하나에 2 피해 · 그 적은 이번 국면 반격하지 못한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오서 태사자전과 배송지 주의 『오력』 · 『강표전』 · 『오서』 · 오주전(손권전)

태사자는 자가 자의이며 동래군 황현 사람입니다. 젊어서 배우기를 좋아했고 군의 주조사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 군과 주가 다투어 먼저 아뢴 쪽이 이기는 형편이었는데, 주의 글이 이미 떠나자 군수는 보낼 사람을 찾았고 스물한 살의 태사자가 뽑혀 밤낮으로 길을 달려 낙양에 이르렀습니다. 공거문 앞에서 막 글을 올리려던 주의 아전을 만나자 그는 「글의 제목과 서명에 잘못이 없는지 가져와 보자」 하고 받아 들고는 미리 품에 넣어 둔 칼로 찢어 버렸습니다. 아전이 소리치자 태사자는 그대가 건네지 않았으면 나도 찢을 수 없었으니 함께 달아나자고 달래 그날로 함께 성을 나섰다가, 몰래 돌아와 군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 뒤 주에서 다시 아전을 보냈으나 담당 관청은 앞서 글이 막힌 일 때문에 다시 다루어 주지 않아 주가 불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이름이 났으나 주의 미움을 사 화를 입을까 두려워 요동으로 피했습니다.

북해상 공융은 그 일을 듣고 기이하게 여겨 여러 번 사람을 보내 그의 어머니를 살피고 먹을 것을 보냈습니다. 공융이 황건을 막으러 도창에 나가 있다가 도적 관해에게 에워싸였을 때, 요동에서 돌아온 태사자에게 어머니는 공 북해와 만난 적도 없는데 네가 떠난 뒤 옛 벗보다 더 살뜰히 보살펴 주셨으니 가서 도우라고 일렀습니다. 태사자는 걸어서 도창으로 가, 아직 포위가 성글 때 밤에 틈을 엿보아 성에 들어갔습니다. 포위가 날로 좁아지는데 평원상 유비에게 급함을 알리려 해도 나갈 사람이 없자 태사자가 스스로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는 날이 밝자 활을 메고 말에 올라 기병 둘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가, 성 밑 해자 안에 과녁을 세워 활을 쏘고는 다시 들어오기를 이틀 되풀이했습니다. 사흘째 아침 적이 더는 일어나 보지도 않자 말에 채찍을 더해 포위를 뚫고 달렸고, 뒤늦게 쫓는 적 몇을 쏘아 쓰러뜨리니 감히 따라오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가 평원에 이르러 구원을 청하자 유비는 얼굴빛을 바로 하고 「공 북해가 세상에 유비가 있는 줄을 아시는가」 하며 날랜 군사 3천을 딸려 보냈고, 도적은 군사가 온다는 말에 포위를 풀고 흩어졌습니다. 공융은 그를 더욱 귀히 여겨 「그대는 나의 젊은 벗」이라 했고, 돌아와 아뢰자 어머니는 네가 공 북해에게 갚을 수 있어 기쁘다고 했습니다.

양주자사 유요는 태사자와 같은 군 사람이었습니다. 요동에서 돌아온 뒤 아직 만나지 못했던 터라 태사자가 잠시 강을 건너 곡아로 그를 찾아갔는데, 떠나기 전에 손책이 쳐들어왔습니다. 누군가 태사자를 대장군으로 삼으라고 권하자 유요는 「내가 자의를 쓰면 허자장이 나를 비웃지 않겠는가」 하며 그에게 적의 형세를 살피는 일만 맡겼습니다. 허자장은 사람을 품평하기로 이름난 허소입니다. 기병 하나만 데리고 나섰던 태사자는 신정에서 손책과 마주쳤습니다. 손책을 따르는 기병은 열셋으로 모두 한당 · 송겸 · 황개 같은 이들이었으나 태사자는 곧장 나아가 싸워 손책과 맞섰습니다. 손책은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그가 목덜미에 메고 있던 짧은 극을 빼앗았고, 태사자도 손책의 투구를 빼앗았습니다. 마침 양쪽 기병이 몰려와 둘은 흩어졌습니다.

태사자는 유요를 따라 예장으로 가야 했으나 무호로 빠져나가 산속으로 숨어들어 스스로 단양태수라 일컬었습니다. 이때 손책은 선성 동쪽을 이미 평정했으나 경현 서쪽의 여섯 현은 아직 따르지 않았는데, 태사자는 경현으로 나아가 진영과 관부를 세웠고 산월이 크게 따랐습니다. 손책이 몸소 쳐서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손책은 곧 결박을 풀고 그의 손을 잡으며 「신정의 일을 기억하는가. 그때 경이 나를 잡았다면 어찌했겠는가」 하고 물었고, 태사자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자 크게 웃으며 「오늘의 일은 경과 함께하리라」 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력』은 그가 신정에서 사로잡혔고 흩어진 군사를 모으러 갔다가 약속한 이튿날 한낮에 돌아왔다고 적지만, 배송지는 본전과 크게 달라 잘못이라고 보았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손책은 그가 군의 글을 빼앗고 공융을 구하러 가 유비를 찾아간 일이 모두 굳센 의리였으나 의탁한 사람이 마땅치 않았을 뿐이라며, 자신이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손책은 곧 그를 문하독으로 삼았고, 오로 돌아와서는 군사를 주며 절충중랑장에 임명했습니다.

뒤에 유요가 예장에서 죽고 그 무리 만여 명이 갈 곳이 없자 손책은 태사자를 보내 달래게 했습니다. 곁의 사람들이 모두 태사자는 반드시 북쪽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으리라 했으나, 손책은 「자의가 나를 버리면 또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하며 창문까지 나가 보내면서 손목을 잡고 언제 돌아오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태사자는 예순 날을 넘기지 않겠다고 답했고 과연 기한 안에 돌아왔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의심하는 이들에게 손책은 태사자가 기운이 세고 담이 크지만 이리저리 붙는 사람이 아니며, 약속을 귀하게 여겨 한번 마음으로 허락하면 죽어도 저버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돌아온 태사자가 예장태수 화흠은 덕이 높으나 꾀가 없어 제 땅만 지킬 뿐이라고 아뢰자 손책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고, 얼마 뒤 예장을 평정했습니다.

유표의 조카 유반이 날래고 용맹해 여러 번 애현 · 서안 등을 노략하자, 손책은 해혼 · 건창 둘레의 여섯 현을 떼어 태사자를 건창도위로 삼고 해혼에 치소를 두어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유반을 막게 했습니다. 그 뒤 유반은 다시 쳐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태사자는 키가 일곱 자 일곱 치에 수염이 아름다웠고, 원숭이처럼 긴 팔로 활을 잘 쏘아 시위를 당기면 헛나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손책을 따라 마보의 도적을 칠 때 한 도적이 진영 안 누각 위를 다니며 욕을 하면서 손으로 누각의 마룻대를 잡고 있었는데, 태사자가 쏜 화살이 그 손을 꿰뚫어 마룻대에 박히니 포위 밖의 만 명이 모두 감탄했습니다. 조조가 그의 이름을 듣고 보낸 상자를 열어 보니 아무 말 없이 당귀만 들어 있었습니다.

손권이 뒤를 이어 다스리게 되자 태사자가 유반을 누를 수 있다 하여 남방의 일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손권전은 건안 8년(203) 손권이 황조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태사자가 해혼을 맡았다고 적습니다. 태사자는 건안 11년(206) 마흔한 살로 죽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에 따르면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장부가 세상에 나서 일곱 자 칼을 차고 천자의 섬돌에 올라야 하거늘,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어찌 죽는단 말인가」 하고 탄식했고, 손권은 몹시 슬퍼하고 아까워했습니다. 아들 태사향은 월기교위에 이르렀습니다. 진수는 「태사자는 믿음과 의리가 두텁고 굳세어 옛사람의 풍모가 있었다」고 평했습니다.

太史慈信義篤烈,有古人之分
태사자는 믿음과 의리가 두텁고 굳세어 옛사람의 풍모가 있었다『삼국지』 오서 태사자전 평
丈夫生世,当带七尺之剑,以升天子之阶。今所志未从,奈何而死乎
장부가 세상에 나서 일곱 자 칼을 차고 천자의 섬돌에 올라야 하거늘,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어찌 죽는단 말인가『삼국지』 오서 태사자전 배송지 주의 『오서』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1회 · 제15회 · 제44~45회 · 제49~50회 · 제53회

연의에서 태사자는 제11회에 처음 나옵니다. 황건의 관해가 북해를 에워싸자 창을 들고 말을 달려 적진을 뚫고 성 아래에 이르러 문을 열라 외치고, 공융에게 동래 황현 사람으로 복성은 태사, 이름은 자, 자는 자의라고 밝히며 어머니의 명으로 홀로 왔다고 합니다. 연의는 공융이 성에서 스무 리 떨어진 곳에 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늘 곡식과 비단을 보냈다고 적습니다. 공융의 글을 받아 든 태사자는 활과 창을 갖추고 홀로 성을 나서, 관해가 몸소 이끌고 쫓아와 사방을 에워싼 기병을 활로 쏘아 떨어뜨리고 평원의 유비에게 갑니다. 유비가 관우 · 장비와 군사 3천을 이끌고 오자 관우가 관해를 베고, 태사자는 장비와 함께 적진에 뛰어듭니다. 일이 끝나자 같은 군 사람인 양주자사 유요가 편지로 부른다며 공융의 금과 비단을 마다하고 떠납니다.

제15회에서 유요는 아직 나이가 어리다며 선봉을 맡겠다는 그를 곁에만 둡니다. 손책이 신정령의 광무제 사당에 올랐다는 말을 듣자 태사자는 유요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나가 손책과 오십 합을 싸우고, 평지로 끌어내 다시 오십 합을 싸운 끝에 둘이 함께 말에서 굴러떨어져 손책은 그의 짧은 극을, 그는 손책의 투구를 빼앗습니다. 이튿날 두 진은 빼앗은 극과 투구를 내걸고 서로 놀립니다. 유요가 무너진 뒤 경현에서 군사를 모으던 그는 주유의 꾀에 걸려 갈대숲의 올가미에 사로잡히는데, 손책은 몸소 결박을 풀고 제 비단 전포를 입혀 줍니다. 흩어진 무리를 거두어 오겠다는 그를 손책은 이튿날 한낮까지 돌아오라며 보내고, 장수들이 의심하는 가운데 그는 한낮에 천여 명을 이끌고 돌아옵니다. 엄백호를 칠 때는 오군의 창문 앞에서 성 위 장수의 왼손을 쏘아 들보에 박아 버리고, 회계에서는 왕랑과 칼을 섞습니다.

적벽 싸움을 앞두고 제44회에서 여몽과 함께 넷째 대를 맡고, 제45회에는 주유가 장간을 맞는 잔치에서 주유의 칼을 차고 술자리를 감독합니다. 제49회에 군사 3천으로 합비에서 오는 조조의 구원병을 끊으라는 명을 받고, 제50회에는 육손과 함께 달아나는 조조를 칩니다. 제53회에서는 합비를 치는 손권 앞에 나서 장료와 칠팔십 합을 겨루고, 같은 고향 사람 과정을 성안에 들여보내 불을 신호로 장료를 죽이려 하지만, 꾀를 알아챈 장료가 성문을 열어 두고 화살을 퍼붓는 바람에 여러 대를 맞습니다. 병이 깊어진 그는 대장부가 난세에 나서 석 자 칼을 차고 세상에 없는 공을 세워야 하거늘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어찌 죽느냐고 외치고 마흔한 살로 숨을 거둡니다. 손권은 그를 남서의 북고산 아래 후하게 장사 지내고 아들 태사향을 부중에서 기릅니다. 연의에서 태사자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86군의 주조사로 낙양에 가서 주의 글을 찢고 군의 글을 먼저 올렸습니다.
  2. 195같은 군 사람인 양주자사 유요를 곡아로 찾아갔으나 대장으로 쓰이지 못했습니다.
  3. 195척후로 나갔다가 신정에서 손책과 맞붙어 짧은 극과 투구를 서로 빼앗았습니다.신정의 대결
  4. 199예장에서 돌아와 화흠의 다스림을 아뢰었고 얼마 뒤 손책이 예장을 평정했습니다.
  5. 200손권이 뒤를 잇자 유반을 누를 수 있다 하여 남방의 일을 맡았습니다.
  6. 203손권이 황조를 치고 돌아오며 예장을 정비할 때 해혼을 맡았습니다.
  7. 206건안 11년 마흔한 살로 죽었습니다.태사씨 부자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어머니 · 아들 태사향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신의를 아는 자다!

말을 열며

약속은 지키러 왔소. 자, 시작합시다.

되받으며

신의로 답하겠소. 거짓은 없소.

말문이 막혀

…창을 놓칠 뻔했소.

말문이 막혀

신정에서도 이보다는 나았소.

설전을 이기고

장부로 태어났으면 이름은 남겨야 하오.

설전에 지고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는구려.

이긴 뒤

신의로 얻은 승리요.

진 뒤

…삼척검이 아직 모자랐구나.

쓰러지며

삼척검으로 공을 못 세웠구나.

같은 기치 아래

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