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張魯

자 공기(公祺) · 미상 ~ 미상 (215년 이후) · 예주 패국 풍현 · 한 세력의 주인

장로 초상

오두미도로 한중을 서른 해 가까이 다스리다 창고를 봉하고 조조에게 돌아간 사군

능력치

통솔51무력26지력73정치78매력89

카드

공격력 2체력 3비용 2값어치 8직군 능리
회유 비용 3
체력 2 이하인 적 하나를 내 편으로 만든다
오두미 속성
국면이 끝날 때마다 다친 아군 전체의 체력 +1 (자신은 빼고)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장로전과 배송지 주의 『전략』 · 『위명신주』 · 『세어』 · 습착치의 말 · 무제기 · 촉서 유언전 · 유장전 · 마초전과 배송지 주의 『전략』 · 위서 양부전 · 방덕전 · 『후한서』 유언전의 장로전 · 『화양국지』 한중지

장로는 자가 공기이며 패국 풍현 사람입니다. 『후한서』는 자를 공기라 하되 글자를 달리 적습니다. 할아버지 장릉은 촉에 머물며 곡명산에서 도를 배우고 도서를 지어 백성을 이끌었는데, 그 도를 받는 이는 쌀 다섯 말을 내야 했기에 세상에서는 그 무리를 「미적」(쌀 도적)이라 불렀습니다. 장릉이 죽자 아들 장형이, 장형이 죽자 장로가 그 도를 이어 행했습니다. 촉서 유언전은 장로의 어머니가 귀도를 하고 얼굴이 젊어 익주목 유언의 집을 늘 드나들었다고 적습니다.

유언은 장로를 독의사마로 삼아 별부사마 장수(완을 지킨 장수와는 다른 사람입니다)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한중태수 소고를 치게 했는데, 장로는 그 뒤 장수를 덮쳐 죽이고 그 무리를 빼앗았습니다. 유언전에 따르면 장로는 한중에 머물며 골짜기의 잔도를 끊고 한의 사자를 죽였고, 유언은 「미적이 길을 끊어 다시 통하지 못한다」고 조정에 글을 올렸습니다. 유언이 죽고 아들 유장이 뒤를 잇자 장로는 그를 따르지 않았고, 유장은 장로의 어머니와 집안사람을 모두 죽였습니다. 『화양국지』는 이 일을 건안 5년(200)에 두고 죽은 이를 어머니와 아우라 적습니다. 그 뒤 유장이 여러 번 방희 등을 보내 장로를 쳤으나 번번이 졌습니다.

장로는 한중을 차지하고 귀도로 백성을 가르치며 스스로 「사군」이라 일컬었습니다. 도를 배우러 처음 온 이를 귀졸이라 하고, 도를 믿게 되면 좨주라 하여 저마다 무리를 거느리게 했으며, 무리가 많은 이는 치두대좨주라 했습니다. 모두에게 정성과 믿음으로 속이지 말라고 가르쳤고, 병이 나면 스스로 허물을 털어놓게 했습니다. 좨주들은 의사를 지었는데 지금의 역참과 같았고, 의미와 의육을 의사에 걸어 두어 길 가는 이가 배를 헤아려 먹을 만큼 가져가게 했으며, 너무 많이 가져가면 귀도가 병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법을 어긴 이는 세 번 용서한 뒤에야 형벌을 내렸고, 장리를 두지 않고 좨주들이 다스리니 백성과 이민족이 이를 편히 여겼습니다. 이렇게 파와 한중에 웅거한 것이 서른 해 가까이였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전략』에 따르면 한중의 장수가 오두미도를 열었고, 장로가 한중에서 그 백성이 장수의 법을 믿는 것을 보고 더 꾸며, 작은 허물이 있는 이는 길을 백 걸음 닦으면 죄를 덜어 주고, 월령에 따라 봄과 여름에는 짐승을 죽이지 못하게 하고 술을 금했습니다. 배송지는 『전략』의 장수는 장형을 잘못 적은 것이라 보았습니다.

한나라 조정은 그를 칠 힘이 없어 진민중랑장으로 삼고 한녕태수를 맡겨 공물만 통하게 했습니다. 땅에서 옥인을 얻은 백성이 있자 아랫사람들이 장로를 한녕왕으로 높이려 했는데, 공조 염포가 「한천의 백성은 호구가 10만이 넘고 땅이 기름지며 사방이 험하니, 위로 천자를 바로잡으면 제 환공과 진 문공이 되고 그다음이라도 두융처럼 부귀를 잃지 않는다. 왕을 일컬어 화를 먼저 부르지 말라」고 하자 장로는 그 말을 따랐습니다. 한수와 마초의 난 때에는 관서의 백성 수만 가가 자오곡을 거쳐 장로에게 왔습니다. 양부전에 따르면 장로는 기성을 치는 마초에게 대장 양앙을 보내 도왔고, 마초는 기성을 잃은 뒤 장로에게 왔습니다. 마초전의 배송지 주에 인용된 『전략』에 따르면 장로는 마초를 도강좨주로 삼고 딸을 주려다 어떤 이의 간언으로 그만두었으며, 장로의 장수 양백 등이 마초의 재능을 꺼려 해치려 하자 마초는 촉으로 달아났습니다. 건안 16년(211) 조조가 종요를 보내 장로를 치려 하자 관중의 장수들이 일어났고, 이를 두려워한 유장은 유비를 불러들였습니다.

건안 20년(215) 조조가 산관을 나와 무도를 거쳐 양평관에 이르자, 장로는 한중을 들어 항복하려 했으나 아우 장위가 듣지 않고 수만의 무리로 관을 굳게 지켰습니다. 무제기는 장위와 장수 양앙 등이 산을 가로질러 성을 10여 리 쌓아 조조가 떨어뜨리지 못하고 군을 물렸는데, 수비가 풀린 틈에 밤에 덮쳐 크게 깨뜨렸다고 적습니다. 장위의 끝은 사서마다 다릅니다. 『후한서』는 조조가 장위를 베었다고 하고, 『세어』는 장위가 대군에 덮인 줄 알고 두려워 항복했다고 합니다. 양평이 떨어지자 장로는 항복하려 했으나 염포가 「지금 쫓겨 가면 공이 가볍다. 두호와 박호에게 의지해 맞서다가 뒤에 몸을 맡기면 공이 크다」 하여 남산을 넘어 파중으로 들어갔습니다. 좌우가 보화와 창고를 다 태우자고 하자 장로는 「본디 나라에 목숨을 맡기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달아나는 것은 날카로운 칼끝을 피하려는 것이지 나쁜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보화와 창고는 나라의 것이다」라며 봉해 두고 떠났습니다. 남정에 들어온 조조는 이를 크게 가상히 여겼고, 장로에게 본디 좋은 뜻이 있었다 하여 사람을 보내 달랬습니다. 『화양국지』는 이때 유비도 장로를 맞으려 했고 염포가 북쪽의 조조에게 몸을 맡기라 권하자, 장로가 「차라리 조공의 종이 될지언정 유비의 윗손님은 되지 않겠다」고 했다고 적습니다.

그해 11월 장로는 집안사람을 다 데리고 나와 남은 무리와 함께 항복했습니다. 조조는 그를 맞아 진남장군으로 삼고 손님의 예로 대했으며, 낭중후에 봉해 식읍 만 호를 주었습니다. 장로의 다섯 아들과 염포 등도 모두 열후로 삼았고, 아들 조우에게 장로의 딸을 맞게 했습니다. 『화양국지』는 봉작을 양평후라 적어 장로전과 다릅니다. 배송지는 「장로에게 착한 마음이 있었다 해도 결국 지고 나서 항복했는데, 만 호를 주고 다섯 아들을 다 후로 삼은 것은 지나쳤다」고 했고, 습착치는 왕을 일컫지 말라 간한 염포를 열후로 삼은 것을 두고 상과 벌의 근본을 안 것이라 높였습니다. 마초전의 배송지 주에 인용된 『전략』에 따르면 마초가 촉으로 갈 때 남겨 둔 첩 동씨와 아들 마추를 조조가 얻자, 동씨는 염포에게 주고 마추는 장로에게 넘겼는데 장로가 손수 그를 죽였습니다.

장로가 죽자 원후라는 시호를 받았고 아들 장부가 뒤를 이었습니다. 그가 죽은 해는 사서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진수는 장연 · 장수 · 장로를 두고 「도적의 무리를 버리고 공신의 반열에 들어, 위태로움과 망함을 벗어나 종묘의 제사를 지켰으니 저들 가운데서는 나은 편」이라 평했습니다.

燕、繡、魯舍群盜,列功臣,去危亡,保宗祀,則於彼為愈焉
장연 · 장수 · 장로는 도적의 무리를 버리고 공신의 반열에 들어 위태로움과 망함을 벗어나 종묘의 제사를 지켰으니, 저들 가운데서는 나은 편이다『삼국지』 위서 장로전 평
今之走,避銳鋒,非有惡意。寶貨倉庫,國家之有
지금 달아나는 것은 날카로운 칼끝을 피하려는 것이지 나쁜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보화와 창고는 나라의 것이다『삼국지』 위서 장로전 · 장로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59회 · 제64~65회 · 제67회

연의에서 장로는 제16회와 제21회에 조조와 유비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제59회에서 비로소 제 모습으로 나옵니다. 연의는 할아버지 장릉이 곡명산에서 도서를 짓고, 도를 배우는 이가 쌀 다섯 말을 내 「미적」이라 불렸으며, 장로가 한중에서 사군이라 일컬으며 귀졸과 좨주를 두고 의사를 세워 서른 해를 다스렸다고 정사를 따라 소개합니다. 마초가 조조에게 지자 조조가 한중을 노릴 것이라며 스스로 한녕왕이 되어 맞서려 하는데, 염포가 먼저 서천의 마흔한 주를 얻은 뒤 왕을 일컬어도 늦지 않다고 하자 크게 기뻐하며 아우 장위와 군사를 일으킬 일을 의논합니다. 이 소식에 놀란 유장이 장송을 조조에게 보내면서 유비가 서천으로 들어오는 일이 시작됩니다.

제64회에서 마초가 마대 · 방덕과 함께 몸을 맡겨 오자 장로는 기뻐하며 딸을 주려 하지만 대장 양백이 말려 그만둡니다. 유장이 황권을 보내 스무 주를 떼어 주겠다며 구원을 청하자, 탐욕스러운 모사 양송의 말을 듣고 받아들이고, 마초가 나서 가맹관을 치러 갑니다. 제65회에서 제갈량은 손건에게 금과 구슬을 들려 양송을 매수하고, 유비가 장로를 한녕왕으로 올려 주겠다고 꾀어 마초를 불러들이게 합니다. 돌아오지 않는 마초를 두고 양송이 모반하려 한다고 헐뜯자, 장로는 한 달 안에 서천을 얻고 유장의 목을 베고 형주의 군을 물리라는 세 가지를 내걸고 장위에게 관을 막게 하니, 갈 곳을 잃은 마초는 유비에게 항복합니다.

제67회에서 조조가 쳐들어오자 장위 · 양앙 · 양임이 양평관을 지키지만 양앙과 양임이 베이고 관을 잃습니다. 남정까지 밀린 장로는 염포의 천거로 방덕을 내보내는데, 조조의 금갑을 받은 양송이 방덕이 뇌물을 받고 일부러 졌다고 헐뜯자 방덕을 꾸짖어 지면 베겠다고 하고, 사로잡힌 방덕은 조조에게 항복합니다. 장로는 창고를 다 태우자는 장위에게 「창고는 나라의 것이니 버릴 수 없다」며 봉해 두고 파중으로 달아납니다. 장위가 허저에게 베인 뒤 장로가 몸소 나섰다가 돌아오자 양송이 성문을 닫아 버리고, 갈 곳이 없어진 장로는 말에서 내려 조조에게 항복합니다. 조조는 창고를 봉한 마음을 기려 그를 진남장군으로 삼고, 주인을 판 양송은 저잣거리에서 벱니다. 연의에서 장로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1유언의 독의사마로 한중태수 소고를 치고, 함께 간 장수를 죽여 그 무리를 빼앗았습니다.
  2. 200유장을 따르지 않자 유장이 그의 어머니와 집안사람을 죽였습니다.
  3. 211조조가 종요를 보내 그를 치려 하자 관중의 장수들이 일어났고, 유장은 유비를 불러들였습니다.
  4. 215아우 장위가 지키던 양평관이 떨어지자 보화와 창고를 봉해 두고 파중으로 물러났습니다.
  5. 21511월 조조에게 항복해 진남장군 · 낭중후가 되고, 다섯 아들도 열후가 되었습니다.한중의 항복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할아버지 장릉 · 아버지 장형 · 아우 장위 · 아들 다섯(뒤를 이은 장부) · 딸(조조의 아들 조우의 아내)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한중의 사군이오.

말을 열며

쌀 다섯 말이면 도에 들 수 있소.

되받으며

도를 논하는 데 귀천이 없소.

말문이 막혀

…도력이 부족했나.

말문이 막혀

베풀면 돌아오는 법이오.

설전을 이기고

한중 삼십 년 태평이 증거요.

설전에 지고

창고는 봉하고 가겠소. 가져가시오.

이긴 뒤

도가 이겼소이다.

진 뒤

…한중을 내주어야겠구려.

쓰러지며

쌀 다섯 말의 도는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