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장劉璋

자 계옥(季玉) · 미상 ~ 미상 (219년 이후) · 형주 강하군 경릉현 · 한 세력의 주인

유장 초상

유비를 끌어들였다가 어리석게 익주를 통째로 빼앗긴 유약한 군주

능력치

통솔18무력5지력9정치38매력70

카드

공격력 1체력 2비용 1값어치 4직군 주공
곳간 속성
국면이 열릴 때마다 책략 한 장의 값 −1

정사

출전 · 『삼국지』 촉서 유이목전(유언전 · 유장전)과 배송지 주의 『영웅기』 · 『전략』 · 『오서』 · 장번 · 선주전 · 법정전 · 간옹전 · 마초전 · 황권전 · 이회전 · 『후한서』 유언전 · 『화양국지』 공손술유이목지

유장은 자가 계옥이며 익주목 유언의 아들입니다. 유언은 강하 경릉 사람으로 한 노 공왕의 후손이었습니다. 유언이 익주에 있을 때 유장은 형 유범 · 유탄과 함께 헌제를 따라 장안에 있었고 봉거도위였습니다. 헌제가 유장을 보내 유언을 타이르게 하자 유언은 그를 머물게 하고 돌려보내지 않았는데, 『전략』은 유언이 병을 핑계로 그를 불렀다고 적습니다. 두 형 유범과 유탄은 뒤에 마등과 함께 장안을 치려다 일이 새어 죽었습니다.

흥평 원년(194) 유언이 등창으로 죽자, 주의 큰 관리 조위 등은 유장이 온화하고 어진 것을 탐내 함께 그를 익주자사로 올렸고, 조서가 내려 그를 감군사자 · 영익주목으로 삼았습니다. 조서는 조위를 정동중랑장으로 삼아 형주의 유표를 치게 했고, 『영웅기』는 유장이 조위를 보내 형주를 쳤으며 이 무렵 유장의 장수 심미 · 누발 · 감녕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이기지 못해 형주로 달아났다고 적습니다. 장로가 차츰 교만해져 따르지 않자 유장은 장로의 어머니와 아우를 죽여 원수가 되었고, 방희 등을 여러 번 보내 쳤으나 번번이 졌습니다. 장로의 부곡이 파서에 많아 방희를 파서태수로 삼아 막게 했으나, 뒤에 방희와도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영웅기』에 따르면 남양과 삼보에서 흘러든 수만 가구를 거둔 동주병이 옛 백성을 괴롭혔는데, 유장은 성품이 너그럽고 부드러워 위엄과 지략이 없어 막지 못했고 익주 사람들의 원망이 컸습니다. 신망을 얻던 조위는 그 원망을 타 주의 큰 성씨들과 몰래 손잡고 군사를 일으켰고 촉군 · 광한 · 건위가 모두 호응했는데, 『후한서』는 이를 건안 5년(200)의 일로 적습니다. 성도로 달려 들어가 지키던 유장은 죽기로 싸운 동주 사람들의 힘으로 반란을 깨뜨렸고, 조위는 강주에서 제 장수들에게 베였습니다. 진수는 방희와 벌어지고 조위가 반란한 것이 모두 유장이 밝은 결단이 적고 바깥의 말에 휘둘렸기 때문이라고 적습니다.

『후한서』에 따르면 건안 13년(208) 조조가 형주를 치자 유장은 사자를 보내 공경을 표했고, 조조는 그에게 진위장군을, 형 유모에게 평구장군을 더했습니다. 유장은 별가종사 장숙을 보내 수병 삼백과 여러 물건을 바쳤으나, 이어 보낸 별가 장송은 형주를 평정하고 유비를 쫓아낸 조조에게 예우를 받지 못해 원망을 품었습니다. 조조가 적벽에서 불리하고 역병까지 돌자 돌아온 장송은 조조를 헐뜯으며 유장과 한 핏줄인 유비와 사귀라고 권했고, 유장은 법정을 보내 유비와 통했습니다.

건안 16년(211) 조조가 종요 등을 보내 한중의 장로를 치려 한다는 말을 들은 유장은 속으로 두려워했습니다. 장송은 유비가 종실이자 조조의 깊은 원수이고 군사를 잘 부리니 장로를 치게 하면 반드시 이긴다고 하고, 주의 장수 방희 · 이이 등이 공을 믿고 교만하니 유비를 얻지 못하면 적이 밖에서 치고 백성이 안에서 칠 것이라 했습니다. 주부 황권이 이해를 따지고 종사 왕루가 스스로 주의 문에 거꾸로 매달려 간했으나 유장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고 황권을 광한현장으로 내보냈습니다. 유장이 지나는 곳마다 유비를 받들게 하니 유비는 제집에 오듯 경계에 들어왔습니다. 유장은 보병과 기병 삼만여 명에 수레와 휘장을 햇빛에 번쩍이게 갖추어 성도에서 삼백육십 리 떨어진 부로 나가 유비와 만났고, 두 진영은 백여 일을 즐겁게 마셨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행대사마와 행진서대장군으로 천거했고, 『오서』에 따르면 유장은 쌀 이십만 곡과 기병 천 필, 수레 천 대와 비단을 주어 장로를 치게 했습니다.

이듬해 유비가 손권을 구하러 동쪽으로 가겠다며 군사 만 명과 물자를 청하자 유장은 군사 사천만 주고 나머지는 반만 주었습니다. 유비에게 떠나지 말라는 장송의 글이 형 장숙의 고발로 드러나자 유장은 장송을 베고 관문의 장수들에게 유비와 글을 통하지 말라고 일렀고, 둘은 원수가 되었습니다. 유비가 백수군독 양회를 베고 부를 차지하자 유장은 유괴 · 냉포 · 장임 · 등현 등을 보내 막게 했으나 모두 져서 면죽으로 물러났고, 면죽의 군사를 맡긴 이엄마저 무리를 이끌고 항복했습니다. 광한의 정도가 백성을 옮기고 들판의 곡식을 태운 뒤 버티자고 했으나 유장은 「적을 막아 백성을 편안히 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백성을 움직여 적을 피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며 그를 물리쳤습니다. 아들 유순이 지킨 낙성은 한 해 가까이 버텼습니다.

건안 19년(214) 여름 낙성이 무너지고 성도가 수십 일 에워싸였습니다. 마초전에 따르면 장로에게서 떠나온 마초가 군사를 이끌고 곧장 성 아래에 이르자 성안이 떨었습니다. 성안에는 아직 정병 삼만과 한 해를 버틸 곡식과 비단이 있어 관리와 백성이 모두 죽기로 싸우려 했으나, 유장은 「우리 부자가 이 주에 이십여 년 있으면서 백성에게 베푼 은덕이 없다. 백성이 삼 년이나 싸워 살과 기름이 들판의 풀을 적신 것은 나 때문이니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하며 성문을 열고 나왔고, 신하들 가운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간옹전에 따르면 평소 간옹을 아끼던 유장은 설득하러 온 그와 한 수레를 타고 성을 나왔습니다. 유비는 유장을 남군 공안으로 옮기고 그의 재물과 예전에 차던 진위장군의 인수를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건안 24년(219) 손권이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얻자 유장을 익주목으로 삼아 자귀에 머물게 했습니다. 유장이 죽은 해는 전하지 않는데, 『후한서』는 병으로 죽었다고 적고 『화양국지』는 유비가 동쪽을 칠 때 오에서 죽었다고 적습니다. 그 뒤 옹개가 익주군에서 반란을 일으켜 오에 붙자 손권은 유장의 아들 유천을 익주자사로 삼았고, 제갈량이 남쪽을 평정하자 유천은 오로 돌아가 어사중승이 되었습니다. 맏아들 유순은 방희의 사위로 촉에 남아 봉거중랑장이 되었으니, 유장의 두 아들의 뒤는 오와 촉에 나뉘었습니다.

진수는 유장이 재주가 영웅이 아니면서 어지러운 세상에 땅을 차지해 분에 넘치는 자리가 도적을 불렀으니 빼앗긴 것은 불행이 아니라고 평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장번은 유장이 어리석고 나약했으나 좋은 말을 지켰으니 도리를 잃은 임금은 아니었다고 했고, 『후한서』의 범엽은 서둘러 날카로운 그릇을 내주고 조용히 쫓겨났으니 양의 바탕에 범의 가죽이라 승냥이를 보고 두려워한 것이라고 탄식했습니다.

璋才非人雄,而據土亂世,負乘致寇,自然之理,其見奪取,非不幸也
유장은 재주가 영웅이 아니면서 어지러운 세상에 땅을 차지해 분에 넘치는 자리가 도적을 불렀으니, 빼앗긴 것은 불행이 아니다『삼국지』 촉서 유이목전 평
父子在州二十馀年,無恩德以加百姓。百姓攻戰三年,肌膏草野者,以璋故也,何心能安
우리 부자가 이 주에 이십여 년 있었으나 백성에게 베푼 은덕이 없다. 백성이 삼 년을 싸워 살과 기름이 들판을 적신 것이 나 때문이니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삼국지』 촉서 유장전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59~62회 · 제64~65회

연의에서 유장은 제59회 끝에 처음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언의 아들로 조위 등의 추대를 받아 익주목이 된 그는 장로의 어머니와 아우를 죽여 원수가 되었고, 평생 나약해 장로가 쳐들어온다는 말에 크게 근심합니다. 제60회에서 별가 장송은 조조에게 한중의 장로를 치게 하겠다며 허도로 가지만, 푸대접을 받자 형주에서 유비에게 서천의 지도를 바치고 돌아와 유장에게 같은 종실인 유비와 손잡으라 권합니다. 황권이 땀을 흘리며 뛰어들어 막고, 유장이 부로 떠나려 하자 머리를 조아려 피를 흘리며 옷자락을 입에 물고 늘어지다 앞니 두 개가 빠집니다. 이회도 범을 문 안으로 맞는 것이라며 말리고, 종사 왕루는 성문에 거꾸로 매달려 간하다 줄을 끊고 떨어져 죽지만 유장은 끝내 떠납니다. 부에서 유비를 만난 유장은 황권과 왕루를 비웃으며 입고 있던 녹색 도포와 황금 오백 냥을 장송에게 보내고, 유괴 · 장임 등이 유비를 조심하라고 해도 형님에게 두 마음이 있겠느냐며 웃습니다.

제61회의 잔치에서 위연과 장임이 칼춤을 추자 유장은 형제가 만나는데 무슨 칼이냐며 모두 칼을 풀게 하고, 장로가 가맹관을 치려 하자 유비에게 막아 달라고 청합니다. 제62회에서 유비가 군사와 곡식을 청하자 늙고 약한 군사 사천과 쌀 일만 곡만 보내고, 장송의 편지가 형 장숙의 손에 들어가자 장송의 온 집안을 저자에서 베게 합니다. 이어 황권의 말대로 유괴 · 냉포 · 장임 · 등현에게 오만 군사를 주어 낙성을 지키게 합니다. 제64회에서 낙성이 떨어지자 정도가 들판을 태우고 백성을 옮기자고 하지만 백성을 움직여 적을 피할 수는 없다며 물리치고, 항복을 권하는 법정의 글을 찢으며 주인을 팔아 영화를 구한 도적이라 욕하고는 동화의 말을 따라 장로에게 구원을 청합니다.

제65회에서 장로가 보낸 마초가 도리어 유비에게 항복해 성 아래에서 항복을 외치자 유장은 성 위에서 까무러칩니다. 깨어난 그는 동화가 성안에 아직 군사 삼만과 한 해를 버틸 곡식이 있다고 말리는데도, 부자가 촉에 이십여 년 있으면서 백성에게 베푼 은덕이 없고 삼 년을 싸워 피와 살이 들판에 버려진 것은 모두 내 죄라며 항복을 결심합니다. 초주가 천문을 들어 거들고 허정이 성을 넘어 항복했다는 말에 울며 돌아간 유장은, 이튿날 유비가 보낸 간옹과 한 수레를 타고 인수와 문서를 받들고 나옵니다. 유비는 그의 손을 잡고 인의를 행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형세가 어쩔 수 없었다며 울고, 제갈량이 한 땅에 두 주인이 있을 수 없다고 하자 유장을 진위장군의 인수를 찬 채 처자와 함께 남군 공안으로 보냅니다. 연의에서 유장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4유언이 죽자 주의 관리 조위 등이 그의 온화함을 보고 받들어 익주목이 되었습니다.
  2. 200조위가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왔으나 동주 사람들이 죽기로 싸워 깨뜨렸습니다.
  3. 208조조에게 사자를 보내 진위장군이 되었으나, 이어 보낸 장송은 푸대접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4. 211장송의 권유로 법정을 보내 유비를 맞고, 황권 · 왕루의 간언을 물리친 채 부에서 유비를 만났습니다.촉을 지키라던 말
  5. 212장송의 속셈이 드러나자 그를 베고 관문의 장수들에게 유비와 통하지 말라 했습니다.
  6. 212정도가 들판을 태우고 버티자고 했으나 백성을 움직여 적을 피할 수는 없다며 물리쳤습니다.
  7. 213장임 · 유괴 등을 보내 막게 했으나 모두 져서 물러났고, 아들 유순이 낙성을 지켰습니다.익주를 지킨 손
  8. 214성도가 수십 일 에워싸이자 성문을 열고 간옹과 한 수레를 타고 나와 항복했습니다.익주의 주인
  9. 214유비가 그를 남군 공안으로 옮기고 재물과 진위장군의 인수를 돌려주었습니다.
  10. 219손권이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얻자 익주목이 되어 자귀에 머물렀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유언 · 형 유범 · 유탄 · 유모 · 아들 유순 · 유천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익주의 주인이오.

말을 열며

싸움은 싫소만 예의는 지켜 주시오.

되받으며

유약하다는 말은 이제 지겹소.

말문이 막혀

…백성 다칠 일은 말아야 할 텐데.

말문이 막혀

양보에도 한계가 있소.

설전을 이기고

나도 이길 줄 아오. 놀랐소?

설전에 지고

익주도 내주었는데 이쯤이야….

이긴 뒤

익주는 아직 내 것이오.

진 뒤

…익주의 문이 또 열렸구려.

쓰러지며

익주를 들어 내주었을 뿐이오.

같은 기치 아래

장임엄안황권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