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문달(文達) · 168년 ~ 209년 · 형주 강하군 평춘현 · 조조 휘하
원소의 회유를 물리치고 관우가 끊은 길을 뚫어 조인을 맞은 장수
출전 · 『삼국지』 위서 이통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왕은의 『진서』 · 위서 조엄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위서 무제기 · 오서 오주전
이통은 자가 문달이며 강하군 평춘현 사람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그의 어릴 적 이름이 만억이었다고 적습니다. 의협으로 강하와 여남 사이에 이름이 났고, 같은 군 사람 진공과 함께 낭릉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많은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2천여 집의 무리를 거느린 주직이 겉으로는 두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속으로는 어긋났습니다. 이통은 주직을 없애려 했으나 진공이 망설이자, 진공에게 결단력이 없음을 알고 홀로 계책을 정해 주직과 만날 날을 잡고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 그를 죽였습니다. 무리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이통은 진공을 이끌고 그 우두머리들을 베어 주직의 진영을 모두 아울렀습니다. 뒤에 진공의 처남 진합이 진공을 죽이고 그 무리를 차지하자, 이통은 진합의 군을 깨뜨리고 그 머리를 베어 진공의 무덤에 제사했습니다. 또 황건의 큰 우두머리 오패를 사로잡아 그 무리를 항복시켰습니다. 큰 흉년이 들자 집안 재산을 기울여 사람들을 구하고 병사들과 지게미와 겨를 나누어 먹으니 모두 다투어 그를 위해 힘썼고, 이 때문에 도적이 감히 넘보지 못했습니다.
건안 초에 이통은 무리를 이끌고 허의 조조에게 가서 진위중랑장이 되어 여남 서쪽 경계에 머물렀습니다. 건안 3년(198) 조조가 장수를 칠 때 유표가 군사를 보내 장수를 돕자 조조의 군이 불리해졌는데, 이통이 밤에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조조가 다시 싸울 수 있었고, 이통은 앞장서 올라 장수의 군을 크게 깨뜨렸습니다. 그 공으로 비장군이 되고 건공후에 봉해졌으며, 조조는 여남의 두 현을 떼어 그를 양안도위로 삼았습니다.
이통의 아내의 백부가 법을 어기자 낭릉장 조엄이 그를 잡아 다스려 사형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때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이 주목과 태수에게 있었으므로 이통의 아내와 자식들이 울며 목숨을 빌었으나, 이통은 「바야흐로 조공과 힘을 합치는 때이니 의리상 사사로움으로 공을 버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법을 지켜 굽히지 않은 조엄을 기려 그와 가까이 사귀었습니다.
건안 5년(200)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와 맞서자, 원소는 사자를 보내 이통을 정남장군으로 삼으려 했고 유표도 몰래 그를 불렀으나 이통은 모두 물리쳤습니다. 친척과 부하들이 눈물을 흘리며 「지금 외롭고 위태롭게 홀로 지키다 큰 도움을 잃었으니 망할 날을 서서 기다리는 셈이다. 서둘러 원소를 따르느니만 못하다」고 하자, 이통은 칼을 짚고 「조공은 밝고 슬기로워 반드시 천하를 평정할 것이다. 원소는 강성하지만 사람을 쓰는 데 법도가 없으니 끝내 그에게 사로잡힐 것이다. 나는 죽어도 두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꾸짖었습니다. 그는 곧 원소의 사자를 베고 인수를 조조에게 보냈습니다. 또 군의 도적 구공 · 강궁 · 심성 등을 쳐서 그 무리를 부수고 머리를 보내 마침내 회수와 여수 일대를 평정했고, 도정후로 봉지가 바뀌고 여남태수가 되었습니다. 도적 장적 등 5천여 집이 도산에 모여 있자 이를 쳐서 깨뜨렸습니다.
조엄전은 이 무렵의 일을 더 적습니다. 원소가 예주의 여러 군을 꾀어 많은 군이 그 명을 받을 때 양안군만은 흔들리지 않았는데, 도위 이통은 집마다 매기는 솜과 비단을 서둘러 거두려 했습니다. 조엄은 이웃 성들이 등을 돌린 때에 백성에게 거두면 원망을 산다며 조금 늦추자고 했고, 이통은 거두어 보내지 않으면 원소 쪽을 넘본다는 의심을 받을까 걱정했습니다. 조엄이 순욱에게 편지를 보내자 조조는 거둔 솜과 비단을 모두 백성에게 돌려주게 했고, 군 안이 마침내 안정되었습니다. 한편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이통도 원소에게 사자를 보내려다 조엄이 원소가 반드시 질 것이라 일러 그만두었다고 적는데, 배송지는 조조가 원소의 문서를 뒤졌다는 대목을 들어 이 이야기를 믿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적벽 싸움 뒤 유비와 주유가 강릉에서 조인을 에워싸고 따로 관우를 보내 북쪽 길을 끊자, 이통은 무리를 이끌고 관우를 쳤습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 녹각(적이 세운 나무 울타리)을 뽑아내며 에움 안으로 들어가 싸우면서 앞으로 나아가 조인의 군을 맞았으니, 그 용맹이 여러 장수 가운데 으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 병을 얻어 죽으니 나이 마흔둘이었습니다. 오주전은 주유와 조인이 한 해 남짓 맞선 끝에 건안 14년(209) 조인이 성을 버리고 떠났다고 적습니다. 이통이 죽은 뒤 봉읍이 2백 호 더해져 모두 4백 호가 되었습니다.
조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이통에게 강후라는 시호를 내리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조서는 「지난날 원소의 난 때 허와 채 남쪽의 사람들이 딴마음을 품었으나 이통은 의리를 지켜 돌아보지 않고 두 마음 품은 이들을 따르게 했으니 짐이 매우 가상히 여긴다」며, 아들 이기가 이미 작위를 이었으나 그 공에 보답하기에 모자라다 하여 이기를 봉의중랑장으로, 번성에 머물며 공을 세운 형 이서를 평로중랑장으로 삼았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왕은의 『진서』는 이서의 아들 이병이 재주로 이름나 진나라에서 진주자사에 이르렀고, 사마소가 완적을 두고 천하에서 가장 삼가는 사람이라 한 말을 전해 집안의 가르침으로 남겼다고 적습니다. 진수는 이통 · 장패 · 문빙 · 여건이 주와 군을 지키며 모두 위엄과 은혜를 드러냈다고 평했습니다.
李通、臧霸、文聘、呂虔鎮衛州郡,並著威惠曹公明哲,必定天下。紹雖強盛,而任使無方,終為之虜耳。吾以死不貳『삼국연의』 제18회 · 제58회
연의에서 이통은 제18회에 처음 나옵니다. 장수와 유표의 군사를 물리치고 돌아가던 조조의 뒷군이 장수에게 쫓기자, 산 뒤에서 한 무리의 군사가 나와 길을 막아 주는데, 그 장수가 창을 들고 말에서 내려 절하며 「진위중랑장, 강하 평춘 사람 이통」이라 이름을 댑니다. 여남을 지키다 조조가 장수 · 유표와 싸운다는 말을 듣고 도우러 왔다는 그를 조조는 기뻐하며 건공후로 봉하고, 여남 서쪽 경계를 지켜 유표와 장수를 막게 합니다.
그 뒤 오래 보이지 않던 이통은 제58회 동관 싸움에서 다시 나옵니다. 아버지와 아우의 원수를 갚겠다며 조조에게 달려든 마초 앞에서 우금이 여덟아홉 합 만에, 장합이 스무 합 만에 져 물러나자 이통이 나가 맞서지만, 기세가 오른 마초의 창에 몇 합 만에 찔려 말에서 떨어집니다. 이어 서량의 군사가 밀려들어 조조는 붉은 전포를 벗고 수염을 자르며 달아납니다. 연의에서 이통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이서 · 이기(뒤를 이음) · 손자 이병(이서의 아들)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포위쯤은 뚫는다.
길이 막혔으면 뚫으면 되오.
포위 속에서도 살아 나온 몸이오.
…화살비가 따갑군.
뚫는 것 하나는 자신 있소.
한 몸으로도 길은 열리오.
몸은 뚫어도 말은 못 뚫었구려.
포위는 뚫으라고 있는 것이오.
…이번엔 못 뚫었소.
포위는 뚫으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