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경풍(敬風) · 198년 ~ 269년 · 양주 오군 오현 · 손견 휘하
폭군 손호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으며 오나라의 명맥을 지탱하려 한 좌승상
출전 · 『삼국지』 오서 육개전과 배송지 주의 『오록』 · 『강표전』 · 오서 오주전 · 삼사주전과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강표전』 · 육기의 『변망론』 · 오서 육손전
육개는 자가 경풍이며 오군 오현 사람으로, 승상 육손의 일족 조카입니다. 황무 초에 영흥과 제기의 현장이 되어 가는 곳마다 다스린 자취가 있었고, 건무도위가 되어 군사를 거느렸습니다. 군사를 거느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태현』을 좋아해 그 뜻을 풀었으며 점을 치면 잘 맞았습니다.
적오 연간에 담이태수가 되어 주애를 쳐서 공을 세우고 건무교위가 되었습니다. 오주전은 적오 5년(242) 장군 섭우와 교위 육개가 군사 3만으로 주애와 담이를 쳤다고 적습니다. 오봉 2년(255) 영릉의 산적 진비를 베어 이기고 파구독 · 편장군이 되어 도향후에 봉해졌고, 무창 우부독으로 옮겼습니다. 여러 장수와 함께 수춘에 갔다가 돌아와 탕위장군 · 수원장군을 거쳤고, 손휴가 즉위하자 정북장군으로 부절을 받고 예주목을 겸했습니다. 손호가 서자 진서대장군으로 파구를 도독하고 형주목을 겸했으며 가흥후에 봉해졌습니다.
보정 원년(266) 진에 갔다 돌아온 사신 정충이 익양을 기습하자고 하자, 육개는 군사는 어쩔 수 없을 때 쓰는 것이라며 강한 적이 막 촉을 아우르고도 화친을 청하는 때에 요행으로 이기기를 바라는 것은 이롭지 않다고 말렸습니다. 그해 8월 좌승상이 되었습니다. 손호는 신하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싫어해 아무도 감히 보지 못했는데, 육개는 임금과 신하가 서로 얼굴을 모르면 뜻밖의 일에 갈 곳을 모른다고 말해 자기만은 바로 보아도 되게 허락받았습니다.
손호는 감로 원년(265) 도읍을 무창으로 옮겼는데, 양주의 백성이 물을 거슬러 물자를 대느라 괴로워했고 정사가 그릇되어 백성이 가난해졌습니다. 육개는 「백성은 나라의 뿌리」라며 일을 줄이고 군사를 길러 때를 기다리라고 상소했고, 무창은 험하고 메말라 임금의 도읍이 될 곳이 아니라며 「차라리 건업의 물을 마실지언정 무창의 물고기는 먹지 않겠고, 차라리 건업에 돌아가 죽을지언정 무창에 머물지 않겠다」는 아이들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선제 때는 궁녀가 백 명도 안 되었는데 지금은 천을 헤아린다며 내보내 아내 없는 이들에게 짝지어 주라 했고, 신분을 가리지 말고 어진 이를 쓰라고 아뢰었습니다. 삼사주전은 손호가 그해 12월 건업으로 돌아왔다고 적습니다.
그때 전상열장 하정이 아첨으로 총애를 받아 일을 맡자, 육개는 그를 마주하고 「앞뒤로 임금을 섬기며 충성하지 않고 나라를 어지럽힌 자 가운데 제 명에 죽은 이가 있었는가」 하고 꾸짖으며 고치지 않으면 뜻밖의 화를 보리라 했습니다. 하정은 크게 원망하며 그를 해치려 했으나 육개는 끝내 개의치 않았고, 그의 표와 상소는 꾸밈없이 일을 짚었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손호가 새 궁을 지을 때도 거듭 말렸고, 손호의 행실이 더 사나워지자 이대로라면 망하는 것이 스무 해를 넘지 않으리라는 표를 올렸습니다.
건형 원년(269) 병이 깊자 손호가 중서령 동조를 보내 할 말을 물었습니다. 육개는 하정에게 나랏일을 맡기지 말고 바깥 벼슬로 내보내라 하고, 요신 · 누현 · 하소 · 장제 · 설영 · 등수와 일족 아우 육희 · 육항 등을 「사직의 기둥이요 나라의 좋은 보필」이라 천거한 뒤 죽으니 나이 일흔둘이었습니다. 진수는 형주와 양주에서 온 사람들에게서 육개가 손호를 간한 스무 가지 일을 얻었으나, 오나라 사람들에게 두루 물어도 그런 표를 들었다는 이가 드물고 글이 너무 곧아 손호가 참았을 리 없다며 참과 거짓을 가리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뒷날의 경계가 될 만하다며 전의 끝에 베껴 실었는데, 그 스무 조목은 왕번을 죽인 일, 만욱을 재상으로 높인 일, 궁녀를 만 명이나 둔 일, 환관에게 군사를 맡긴 일 등을 짚으며 하나하나 「선제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맺습니다.
손호는 육개가 자주 얼굴빛을 범하는 것을 미워했고 하정의 참소도 더해졌으나, 그가 무거운 신하라 법으로 묶기 어렵고 육항이 대장으로 국경에 있어 꾀로 참았습니다. 육항이 죽은 뒤 손호는 끝내 육개의 집안을 건안으로 옮겼습니다. 육개전은 또 어떤 이의 말로, 보정 원년(266) 12월 육개가 대사마 정봉 · 어사대부 정고와 함께 손호가 사당에 갈 때 그를 폐하려 했으나 좌장군 유평이 따르지 않아 그만두었다고 적습니다. 아들 육의는 황문시랑을 거쳐 편장군이 되었고, 화핵은 그의 거느리는 재주가 노숙에 못지않다며 하구를 맡기라고 천거했습니다. 아우 육윤은 교주자사로 남쪽을 은혜와 믿음으로 다스려 이름이 났습니다. 진수는 육개가 충성스럽고 굳세며 바탕이 곧아 반준과 함께 대장부의 기개가 있었다고 평했고,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육기의 『변망론』은 좌승상 육개가 곧은 말로 바른길을 다했다고 적습니다.
陸凱忠壯質直,皆節概梗梗,有大丈夫格業寧飲建業水,不食武昌魚,寧還建業死,不止武昌居『삼국연의』 제120회
연의에서 육개는 마지막 회인 제120회에만 나옵니다. 손호가 즉위한 뒤 흉포함이 날로 더해 간하던 복양흥 · 장포가 죽고 조정이 입을 닫자, 보정 원년에 육개와 만욱이 좌우 승상이 됩니다. 손호가 무창에 머물러 양주 백성이 물을 거슬러 물자를 대느라 괴로워하고 사치가 끝이 없자, 육개는 상소를 올려 「재앙이 없는데도 백성의 목숨이 다하고, 하는 일이 없는데도 나라의 재물이 비었다」고 아뢰고, 조씨와 유씨가 도를 잃어 다 진의 것이 되었다고 일깨웁니다. 무창은 험하고 메말라 임금의 도읍이 아니라며 「차라리 건업의 물을 마실지언정 무창의 물고기는 먹지 않겠다」는 아이들의 노래를 들고, 대제 때는 궁녀가 백이 안 되었는데 경제 이래 천을 헤아린다며 일을 줄이고 궁녀를 내보내고 백관을 가려 뽑으라고 합니다. 상소를 받은 손호는 기뻐하지 않고 도리어 소명궁을 크게 짓습니다. 연의는 그 뒤 육개의 죽음이나 스무 가지 간언을 옮기지 않으며, 연의에서 육개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우 육윤 · 아들 육의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바른말 하는 자가 왔소.
듣기 싫은 말을 하러 왔소.
바른말은 원래 거슬리는 법이오.
…또 미움을 사는구려.
그래도 말은 해야겠소.
간언하는 신하가 있는 나라는 서오.
…이 나라가 걱정이오.
곧은 말이 이기는 날도 있소.
…간언은 또 닿지 않았소.
…폭군에게 할 말은 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