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좌치(佐治) · 미상 ~ 미상 (234년 이후) · 예주 영천군 양책현 · 조조 휘하
조비의 옷자락을 붙들고 오장원에서 사마의를 막아선 곧은 신하
출전 · 『삼국지』 위서 신비전과 배송지 주의 『영웅기』 · 『위략』 · 『세어』 · 원소전과 배송지 주의 『선현행장』 · 무제기 · 순유전 · 조엄전 · 유방전 · 명제기 배송지 주의 『위씨춘추』 · 촉서 제갈량전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진서』 선제기
신비는 자가 좌치이며 영천군 양책현 사람입니다. 형 신평을 따라 원소를 섬겼고, 조조가 사공이 되어 그를 불렀으나 응하지 못했습니다. 『삼국지』 조엄전은 같은 군의 신비 · 진군 · 두습 · 조엄이 함께 이름이 나 「신 · 진 · 두 · 조」로 불렸다고 적습니다.
원소가 죽은 뒤 두 아들 원담과 원상이 기주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건안 8년(203) 원상이 평원으로 물러난 형 원담을 급히 치자 원담은 신비를 조조에게 보내 화친과 구원을 청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영웅기』에 따르면 조조를 불러 원상을 치게 하자는 꾀는 곽도가 냈고, 원담이 누구를 보낼지 묻자 곽도가 「신좌치가 좋다」고 답했습니다. 유표를 치러 서평에 와 있던 조조는 처음에 크게 기뻐했으나, 며칠 뒤 형주를 먼저 평정하고 원씨 형제가 서로 지치게 두려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술자리에서 조조의 낯빛이 바뀐 것을 알아챈 신비가 곽가에게 이를 말했고, 곽가가 아뢰자 조조는 원담을 믿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신비는 믿음과 속임을 묻지 말고 형세만 따지라 하고, 형제가 다투어 나라가 둘로 갈렸고 가뭄과 굶주림이 겹쳤다며 「하늘이 원상을 공께 주는데 취하지 않고 형주를 치려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또 사방의 적 가운데 하북보다 큰 것이 없으니 하북이 평정되면 천하가 떨 것이라 하자, 조조는 「좋다」 하고 원담과 화평을 허락해 여양으로 군을 옮겼습니다.
이듬해(204) 조조는 업을 쳐서 이기고 표를 올려 신비를 의랑으로 삼았습니다. 『삼국지』 원소전의 배송지 주에 인용된 『선현행장』에 따르면, 원담이 떠날 때 신비와 곽도의 집안은 빠져나왔으나 신평의 집안만은 업의 옥에 갇혔습니다. 성문이 열리던 날 심배는 신씨와 곽씨가 기주를 무너뜨렸다고 성내며 사람을 보내 신평의 집안을 죽였고, 신비가 말을 달려 옥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날 사로잡혀 끌려온 심배의 머리를 신비 등이 말채찍으로 치며 「종놈아, 너는 오늘 정말 죽는다」고 꾸짖었고, 조조가 심배를 살리려 했으나 신비 등이 울부짖기를 그치지 않아 결국 그를 죽였습니다.
그 뒤 조조가 도호 조홍을 보내 하변을 평정하게 할 때 신비는 조휴와 함께 그 군사에 참여했는데, 조조는 옛날 고조가 재물과 여색을 좋아해 장량과 진평이 허물을 바로잡았다며 이제 좌치와 문열의 걱정이 가볍지 않다고 일렀습니다. 돌아와서는 승상장사가 되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세어』가 옮긴 하후담의 글에 따르면, 조비는 태자가 되자 신비의 목을 끌어안고 「신군은 내가 기쁜 줄 아시오」라며 기뻐했습니다.
문제가 즉위하자(220) 시중이 되고 관내후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문제가 기주의 사가(대대로 군역을 지는 집) 10만 호를 하남으로 옮기려 하자, 잇단 메뚜기 떼로 백성이 굶주리던 때라 여러 관리가 안 된다고 여겼으나 황제의 뜻이 굳었습니다. 신비가 신하들과 함께 뵙기를 청하자 문제는 낯빛을 굳히고 맞아 모두 말을 못 했는데, 신비가 그 일이 그르다고 하자 문제는 「경과 함께 의논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신비는 신을 곁에 두어 의논하는 벼슬에 앉히고 어찌 의논하지 않느냐며 자신의 말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사직을 위한 것이라 했습니다. 문제가 대답 없이 안으로 들어가자 신비는 따라가 그 옷자락을 붙잡았고, 문제는 옷을 뿌리치고 들어갔다가 한참 뒤 나와 「좌치, 경은 어찌 나를 이리 급하게 붙드오」라고 했습니다. 신비가 지금 옮기면 민심을 잃고 먹일 것도 없다고 하자 문제는 그 절반만 옮겼습니다.
상군대장군 조진이 강릉의 주연을 칠 때 군사를 맡았다가 돌아와 광평정후에 봉해졌습니다. 문제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오를 치려 하자 신비는 천하가 막 안정되어 땅은 넓고 백성은 적으니 범려처럼 백성을 기르고 조충국처럼 둔전하며 십 년을 기다린 뒤에 쓰라고 간했습니다. 문제가 「경의 뜻대로라면 적을 자손에게 남기란 말이오」 하자, 신비는 주나라 문왕이 주왕을 무왕에게 남긴 것은 때를 알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문제는 끝내 오를 쳤으나 강에 이르렀다가 돌아왔습니다.
명제가 즉위하자(226) 영향후로 올라 식읍 300호를 받았습니다. 그때 중서감 유방과 중서령 손자가 정사를 쥐어 대신들이 다 그들과 사귀었으나 신비는 왕래하지 않았습니다. 아들 신창이 조금 뜻을 굽히라고 권하자 신비는 그들과 사이가 나빠도 자신을 삼공이 못 되게 하는 데 그칠 뿐이라며 「대장부가 삼공이 되려고 높은 절개를 허물겠느냐」고 했습니다. 필궤가 표를 올려 신비를 상서복야로 쓰자고 했으나, 유방과 손자가 「신비는 참으로 밝고 곧으나 성품이 굳세고 제멋대로」라고 아뢰어 쓰이지 못했고 그는 위위로 나갔습니다. 명제가 궁궐을 크게 짓느라 백성이 노역에 시달리자 신비는 제갈량과 손권이 군비를 갖추는데 곡식도 거두지 못한다며 글을 올렸고, 명제가 북망산을 깎아 그 위에 누대를 세우려 하자 하늘과 땅의 이치를 거스르고 백성이 노역을 견디지 못한다고 간해 그치게 했습니다.
청룡 2년(234) 제갈량이 위수 남쪽으로 나왔습니다. 그보다 앞서 대장군 사마의가 여러 번 싸우기를 청했으나 명제는 끝내 들어주지 않았는데, 이해에 더는 막지 못할까 걱정하여 신비를 대장군 군사로 삼아 부절을 주어 보냈습니다. 온 군이 엄숙해져 신비의 지휘를 따르며 아무도 어기지 못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사마의가 여러 번 나아가 치려 했으나 신비가 막아 듣지 않았다고 적고, 『위씨춘추』는 제갈량이 여인의 머리쓰개를 보내 사마의를 성나게 하자 사마의가 나가 싸우려 했는데 신비가 부절을 짚고 조서를 받들어 그치게 했다고 합니다. 제갈량전의 주에 인용된 『한진춘추』에서 강유가 신좌치가 부절을 들고 왔으니 적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라 하자, 제갈량은 사마의가 본디 싸울 뜻이 없고 굳이 싸우기를 청한 것은 무리에게 굳셈을 보이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갈량이 죽자 신비는 다시 위위로 돌아왔고, 죽어서 숙후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죽은 해는 사서에 없습니다. 아들 신창이 뒤를 이어 함희 연간에 하내태수가 되었습니다.
『세어』에 따르면 딸 신헌영은 태상 양탐에게 시집갔고 총명하며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사마의가 조상을 치려고 성문을 닫았을 때 대장군 참군이던 아우 신창에게 맡은 직분을 버리지 말고 나가라고 권했고, 종회의 참군이 된 아들 양수에게는 어짊과 너그러움으로 몸을 지키라고 일러 양수가 끝내 몸을 보전했습니다. 진수는 신비와 양부를 두고 「굳세고 밝고 공정하며 곧아 바르게 간하고 제 몸을 돌보지 않았으니 급암의 높은 기풍에 버금간다」고 평했습니다.
辛毗、楊阜,剛亮公直,正諫匪躬,亞乎汲黯之高風焉佐治,卿持我何太急邪『삼국연의』 제32~33회 · 제79회 · 제86회 · 제95회 · 제97회 · 제103회
연의에서 신비는 제32회에 처음 나옵니다. 원상에게 밀린 원담에게 곽도가 조조에게 항복해 원상을 치게 하자고 권하며, 사자로 신평의 아우이자 지금 평원령인 신비를 천거합니다. 신비는 원담의 글을 품고 밤새 달려 서평의 조조 진영에 이릅니다. 정욱 · 여건 · 만총은 믿을 수 없다 하고 순유는 받아들이자고 하는 가운데, 조조가 술자리에서 원담의 항복이 참인지 거짓인지 묻자 신비는 참과 거짓을 묻지 말고 형세만 따지라며 하북을 먼저 평정하라고 권합니다. 조조는 「신좌치를 늦게 만난 것이 한스럽다」며 그날로 군을 돌립니다.
업을 에워쌀 때 신비가 성 밖에서 원상의 인수와 옷을 창끝에 걸어 성안 사람을 달래자, 노한 심배는 신비의 가솔 여든 남짓을 성 위에서 베어 머리를 던집니다. 신비와 가까웠던 심배의 조카 심영이 이를 원통히 여겨 성문을 열겠다는 글을 화살에 매어 쏘고, 신비가 이를 조조에게 바칩니다. 성이 떨어진 뒤 사로잡힌 심배를 만난 신비는 이를 갈며 채찍으로 그 머리를 가리키고, 조조 앞에서 땅에 엎드려 울며 그를 죽여 원한을 씻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제33회에서 조조는 남피에서 항복을 청하러 온 신평에게 「네 아우 신비는 내가 이미 중히 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제79회에서 신비는 화흠 · 왕랑 등과 함께 헌제에게 조비에게 자리를 넘기라고 청하는 무리에 끼고, 제86회에서는 오를 치려는 조비에게 땅은 넓고 백성은 적으니 십 년 동안 군사를 기르고 둔전한 뒤에 쓰라고 아뢰었다가 「어리석은 선비의 말」이라는 꾸중을 듣습니다. 제95회에서는 손례와 함께 군사 5만을 이끌고 조진을 도우러 가고, 제97회에서는 손례와 함께 촉군이 다시 기산에 나왔다는 급보를 올립니다.
제103회에서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머리쓰개와 여인의 옷을 보내 사마의를 욕보이자 사마의는 싸우기를 청하는 표를 올립니다. 위위 신비는 조예에게 사마의가 본디 싸울 뜻이 없고 장수들의 분노를 누르려고 이 표를 올린 것이라 풀이하고, 부절을 들고 위수 북쪽 진영에 가서 다시 싸우자는 자는 어명을 어긴 죄로 다스리겠다고 알립니다. 사마의는 몰래 「공이 참으로 내 마음을 아는구려」라고 말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제갈량은 웃으며 강유에게 천 리 밖에서 싸움을 청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사마의가 조예의 뜻을 빌려 장수들을 누르고 촉군의 마음을 풀어지게 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연의에서 신비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형 신평 · 아들 신창 · 딸 신헌영(양탐의 아내)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길을 막아서겠소.
소매를 잡아서라도 할 말은 하오.
지위로 누르려 마시오. 나는 굽지 않소.
…그래도 뜻은 굽히지 않소.
바른말이 죄는 아니잖소.
대쪽은 부러져도 휘지 않소.
말은 졌어도 뜻은 그대로요.
막아선 보람이 있소.
…소매를 놓쳤구려.
옷소매를 잡은 손, 부끄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