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미상 · 미상 ~ 미상 (199년 이후) · 미상 · 손견 휘하
주유에게 시집가 적벽의 시에 함께 남은 강동의 미인
출전 · 『삼국지』 오서 주유전과 배송지 주의 『강표전』 · 손책전 · 오주전 · 위서 무제기 · 진사왕 조식전 배송지 주의 『위기』
소교라는 이름은 사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삼국지』 오서 주유전은 손책과 주유가 교공의 두 딸을 얻어 손책은 「큰 교씨」 를, 주유는 「작은 교씨」 를 맞았다고 적는데, 소교는 이 「작은 교씨」 를 옮긴 부름이지 이름이 아닙니다. 사서는 성을 다리 교 자로, 『삼국연의』 는 높을 교 자로 적습니다. 아버지 교공의 이름과 고향, 자매가 태어나고 죽은 해도 전하지 않습니다.
건안 4년(199) 손책은 원술의 무리를 거두어 환성에 머물던 여강태수 유훈을 꾀어 밖으로 내보낸 뒤 여강을 습격해 빼앗았습니다. 이때 중호군으로 강하태수를 겸하던 주유도 손책을 따라 환을 쳐서 떨어뜨렸고, 주유전은 그때 얻은 교공의 두 딸이 모두 나라에서 으뜸가는 미인이었다고 적습니다. 손책은 언니를, 주유는 아우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강표전』 에 따르면 손책은 주유에게 「교공의 두 딸이 떠돌아다녔지만 우리 둘을 사위로 얻었으니 또한 기뻐할 만하다」 고 농을 던졌습니다. 그해 주유는 스물다섯이었습니다.
그 뒤 주유는 건안 13년(208) 적벽에서 조조를 깨뜨리고 남군태수가 되었으나, 촉을 치러 가려고 강릉으로 돌아가 채비하던 길에 파구에서 병들어 서른여섯으로 죽었습니다. 주유전은 그에게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어 딸은 태자 손등의 아내가 되고 맏아들 주순은 공주에게 장가들었다고 적지만, 그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적지 않습니다. 소교가 남편을 잃은 뒤 어떻게 살았는지도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사서에 남은 것은 이것뿐입니다.
時得橋公兩女,皆國色也。策自納大橋,瑜納小橋。橋公二女雖流離,得吾二人作婿,亦足為歡。『삼국연의』 제29회 · 제44회 · 제48회 · 제54회 · 제57회
연의는 주유가 환성에서 소교를 맞는 장면을 따로 그리지 않습니다. 제29회에서 죽음을 앞둔 손책은 아내 교부인에게, 머지않아 그대의 아우가 들어오거든 주랑에게 전하게 하여 내 아우를 힘껏 돕게 하라고 이릅니다. 여기의 아우가 소교이지만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소교의 이름이 처음 나오는 것은 제44회입니다. 제갈량은 항복하겠다는 척하는 주유에게, 조조가 장하에 동작대를 짓고 강동 교공의 두 딸, 언니 대교와 아우 소교를 얻어 그 대에 두려 한다며 두 사람만 보내면 조조가 물러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조조의 아들 조식이 지었다는 「동작대부」 를 외는데, 그 안에 두 교씨를 동남에서 끌어안겠다는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주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북쪽을 가리키며 「늙은 도적이 나를 너무 업신여긴다」 고 꾸짖고, 「대교는 손백부 장군의 부인이고 소교는 내 아내」 라고 밝히며 조조와 싸우기로 합니다.
제48회에서 조조는 적벽의 배 위 잔치에서 강남을 얻으면 두 교씨를 맞아 동작대에 두고 늘그막을 즐기겠다고 말하고, 연의는 여기에 「동풍이 주랑을 돕지 않았다면 봄 깊은 동작대에 두 교씨가 갇혔으리」 라는 당나라 두목의 시를 붙입니다. 제54회는 유비가 남서에서 찾아간 교국로를 두 교씨의 아버지라고 소개합니다. 마지막으로 제57회에서 주유가 죽자 제갈량은 시상에 조문을 가서 읽은 제문에 「그대의 풍모를 기리니 소교와 아름다운 짝을 이루었다」 는 구절을 넣습니다. 연의에서 소교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교공 · 언니 대교 · 남편 주유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환현의 소교요.
노래에 이름이 남은 사람이오.
그이의 곁에 있던 것으로 되었소.
…적벽의 불빛을 멀리서 보았소.
서른여섯에 그이가 갔소.
이름만 남는 것도 힘이오.
말은 내가 서툴구려.
강동은 이름으로도 싸우오.
내 자리가 아니었소.
그이의 곁으로 가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