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연公孫淵

자 문의(文懿) · 미상 ~ 238년 · 유주 요동군 양평현 · 한 세력의 주인

공손연 초상

위와 오 사이에서 줄타기하다 사마의에게 멸망한 요동의 마지막 지배자

능력치

통솔66무력70지력60정치42매력50

카드

공격력 4체력 3비용 2값어치 7직군 맹장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공손도전에 붙은 공손연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위략』 · 『위서』 · 『한진춘추』 · 명제기 · 관구검전 · 동이전 · 오서 오주전과 배송지 주의 『강표전』 · 장소전 · 『진서』 선제기

공손연은 요동 양평을 본관으로 하는 공손씨의 셋째 대입니다. 할아버지 공손도는 중평 6년(189) 요동태수가 되어 동쪽으로 고구려를, 서쪽으로 오환을 치고 스스로 요동후 · 평주목이라 일컬었으며, 아버지 공손강은 건안 12년(207) 요동으로 달아나 온 원상의 머리를 베어 조조에게 보내 양평후에 봉해졌습니다. 공손강이 죽었을 때 아들 공손황과 공손연이 모두 어려 무리가 숙부 공손공을 요동태수로 세웠습니다. 공손연의 자와 태어난 해는 『삼국지』에 없고, 『진서』는 그를 공손문의라 부릅니다.

공손공은 병으로 고자가 되어 몸이 약하고 나라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태화 2년(228) 공손연이 숙부를 위협해 자리를 빼앗자 명제는 그를 양렬장군 · 요동태수로 삼았고, 태화 4년(230)에는 거기장군을 더했습니다. 『진서』는 그가 숙부를 가두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에 따르면 볼모로 낙양에 가 있던 형 공손황은 아우가 숙부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말을 듣고 끝내 믿을 수 없는 자라며 여러 번 글을 올려 그를 치기를 청했으나, 명제는 이미 권력을 쥔 그를 달래는 쪽을 골랐습니다.

공손연은 남쪽의 손권에게 사신을 보내 오가며 재물을 주고받았습니다. 오주전에 따르면 가화 원년(232) 그는 교위 숙서와 낭중령 손종을 보내 오에 번국을 일컫고 담비와 말을 바쳤고, 손권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듬해(233) 손권은 고옹을 비롯한 신하들이 모두 말리고 장소가 「공손연은 위를 배반하고 토벌이 두려워 멀리 구원을 구하는 것이지 본뜻이 아니다」라고 간했는데도, 태상 장미와 집금오 허안 등에게 군사 만 명과 금보 · 구석을 들려 바다 건너 보내 그를 연왕으로 봉했습니다. 그러나 공손연은 손권이 멀어 믿기 어렵다고 여기고 재물도 탐나, 사신을 꾀어 들여 장미 · 허안 등의 목을 베어 위에 보냈습니다. 그해 12월 명제는 그를 대사마로 삼고 낙랑공에 봉했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손권은 「쥐새끼 같은 자에게 밀려 기운이 산처럼 치민다」며 몸소 치려 했으나 설종 등이 굳이 말려 그만두었습니다.

봉작을 전하러 위의 사자가 오자 공손연은 갑옷 입은 군사를 진처럼 벌여 놓고 나가 맞았고, 나라 안의 빈객들 앞에서 여러 번 험한 말을 했습니다. 경초 원년(237) 명제가 유주자사 관구검 등에게 새서를 들려 그를 부르자, 공손연은 군사를 일으켜 요수에서 맞아 싸웠고 관구검은 불리해 돌아갔습니다. 명제기는 열흘 동안 이어진 비로 요수가 크게 불어 관구검에게 군을 돌리게 했다고 적습니다. 그 뒤 공손연은 스스로 연왕이 되어 백관을 두고 소한 원년이라 일컬었으며, 선비의 선우에게 인수를 내려 변경의 백성을 꾀고 북방을 어지럽혔습니다. 『한진춘추』에 따르면 위가 치러 온다는 말을 듣고 그는 다시 오에 신하라 일컬으며 구원을 청했고, 손권은 사자에게 「사마의는 가는 곳마다 앞을 막을 이가 없으니 아우가 깊이 걱정된다」는 말을 전하게 했습니다.

경초 2년(238) 봄 명제는 태위 사마의에게 군사 4만을 주어 공손연을 치게 했고, 사마의는 6월 요동에 이르렀습니다. 공손연은 장군 비연과 양조 등에게 보병과 기병 수만을 주어 요수에 둔치게 하고 20여 리에 걸쳐 에움 도랑을 팠으나, 사마의는 그 진을 두고 곧장 양평으로 향했습니다. 양평이 빌까 두려워 밤에 물러난 비연 등은 수산에서 다시 죽기로 맞섰지만 크게 졌고, 사마의는 성 아래에 이르러 에움을 둘렀습니다. 마침 장맛비가 서른 날 넘게 이어져 요수가 불어나고 군량 배가 성 아래까지 닿았습니다. 『진서』에 따르면 위의 조정에서는 군을 불러들이자는 말이 나왔으나 명제는 사마의가 날을 헤아려 그를 사로잡을 것이라 했습니다. 비가 그치자 위군은 토산과 망루를 세우고 돌과 쇠뇌를 성 안에 쏘았고, 궁해진 공손연의 성에서는 양식이 다해 사람이 서로 잡아먹고 죽는 이가 많았으며 장군 양조 등이 항복했습니다.

『진서』에 따르면 공손연은 상국 왕건과 어사대부 유보를 보내 에움을 풀면 스스로 몸을 묶고 나오겠다고 청했으나 사마의는 둘을 베었고, 다시 시중 위연을 보내 날을 정해 볼모를 보내겠다고 하자 「싸울 수 있으면 싸우고, 싸울 수 없으면 지키고, 지킬 수 없으면 달아나는 것이다. 나머지 둘은 항복과 죽음뿐인데 스스로 묶고 나오지 않으니 죽기로 정한 것이라 볼모는 보낼 것 없다」고 돌려보냈습니다. 8월 병인일 밤 길이 수십 길의 큰 유성이 수산 동북쪽에서 양평성 동남쪽으로 떨어졌고, 임오일 공손연의 무리가 무너지자 그는 아들 공손수와 수백 기병을 이끌고 에움을 뚫고 동남쪽으로 달아났습니다. 위군이 급히 뒤쫓아 유성이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부자를 베었고, 성이 깨지자 상국 이하 천을 헤아리는 이가 베였으며 공손연의 머리는 낙양으로 보내졌습니다. 이로써 요동 · 대방 · 낙랑 · 현도가 모두 평정되었습니다. 『진서』는 성에 들어간 사마의가 열다섯 살 이상의 남자 7천여 명을 죽여 경관(주검을 쌓아 올린 무더기)을 만들고, 갇혀 있던 공손공을 풀어 주었으며, 반란을 말리다 죽은 장군 윤직 · 가범 등의 무덤을 봉해 주었다고 적습니다. 동이전은 고구려 왕 위궁이 수천 명을 보내 위군을 도왔다고 합니다.

공손연전은 그 무렵 공손연의 집에 괴이한 일이 잇달았다고 적습니다. 개가 두건을 쓰고 붉은 옷을 입은 채 지붕에 올랐고, 밥 짓는 시루 안에서 어린아이가 쪄 죽어 있었으며, 양평 북쪽 저자에서 머리와 눈 · 입은 있으나 손발이 없는 고깃덩이가 꿈틀거렸습니다. 점치는 이는 「꼴은 있으되 이루지 못하고 몸은 있되 소리가 없으니 그 나라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공손도가 중평 6년(189) 요동을 차지한 지 3대 50년 만에 공손씨는 망했습니다. 『위략』에 따르면 낙양의 형 공손황은 앞서 아우를 치라고 아뢰었기에 죄를 면하기를 바랐으나, 아우의 머리가 이르자 아들과 마주 보고 울었고, 명제가 살리려 했으나 유사가 안 된다 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진수는 「공손도는 잔인하고 절도가 없었고, 공손연은 그 업을 이어 흉악함을 더했으니 제 족속을 엎었을 뿐」이라 평했습니다.

度殘暴而不節,淵仍業以載兇,秪足覆其族也
공손도는 잔인하고 절도가 없었고, 공손연은 그 업을 이어 흉악함을 더했으니, 제 족속을 엎었을 뿐이다『삼국지』 위서 공손도전 평
軍事大要有五,能戰當戰,不能戰當守,不能守當走,餘二事惟有降與死耳
군사의 큰 요체는 다섯이다. 싸울 수 있으면 싸우고, 싸울 수 없으면 지키고, 지킬 수 없으면 달아나며, 나머지 둘은 항복과 죽음뿐이다『진서』 선제기 · 공손연의 사자에게 한 사마의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05~106회

연의에서 공손연은 제105회 끝에 처음 이름이 나옵니다. 유주자사 관구검이 요동의 공손연이 스스로 연왕이라 일컫고 소한 원년으로 연호를 고쳐 궁전과 관직을 세우고 군사를 일으켜 북방을 흔든다는 표를 올리자, 조예가 크게 놀랍니다.

제106회는 그가 공손도의 손자이자 공손강의 아들이며, 자라서 문무를 갖추고 성품이 굳세고 싸움을 좋아해 숙부 공손공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소개합니다. 손권이 보낸 장미와 허안의 목을 베어 조예에게 보내 대사마 · 낙랑공이 되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고 연왕을 일컫습니다. 부장 가범이 위의 은혜와 사마의의 용병을 들어 말리고, 참군 윤직이 개가 두건을 쓰고 지붕에 오른 일과 시루 속의 아이, 저자의 고깃덩이 같은 괴이한 일을 들어 간하자 둘을 묶어 저자에서 베고, 대장군 비연을 원수로, 양조를 선봉으로 삼아 요동의 군사 15만으로 나섭니다. 비연과 양조가 요수에서 에움을 치고 버티지만 사마의가 곧장 양평으로 향하자 뒤쫓다가 하후패와 하후위의 복병을 만나고, 비연은 하후패에게 베입니다. 공손연은 양평성에 들어가 문을 닫고 지킵니다.

가을비가 한 달 동안 그치지 않아도 사마의는 진영을 옮기자는 장수를 베며 버티고, 비가 갠 밤 큰 별이 양평 동남쪽으로 떨어지자 닷새 뒤 그 자리에서 공손연을 베리라 말합니다. 성 안의 양식이 다해 소와 말을 잡아먹게 되자 공손연은 상국 왕건과 어사대부 유보를 보내 스무 리만 물러나 주면 스스로 항복하겠다고 하지만 둘은 베이고, 다시 시중 위연을 보내 세자 공손수를 볼모로 보내겠다고 하자 사마의는 「싸울 수 있으면 싸우고, 싸울 수 없으면 지키고, 지킬 수 없으면 달아나고, 달아날 수 없으면 항복하고, 항복할 수 없으면 죽을 뿐」이라며 물리칩니다. 그날 밤 공손연 부자는 천 명을 이끌고 남문을 열어 동남쪽으로 달아나다가 사마의 부자와 호준 · 하후패 · 하후위 · 장호 · 악침에게 에워싸여 말에서 내려 항복하고, 큰 별이 떨어진 날이 이날에 들어맞았다는 사마의의 말과 함께 마주 보고 베입니다. 사마의는 그 일족과 함께 꾀한 관원 70여 명을 죽이고 가범과 윤직의 무덤을 봉해 줍니다. 연의에서 공손연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28병으로 약해진 숙부 공손공을 위협해 자리를 빼앗고 양렬장군 · 요동태수가 되었습니다.
  2. 230명제에게서 거기장군을 받았습니다.
  3. 232숙서와 손종을 오에 보내 번국을 일컫고 담비와 말을 바쳤습니다.
  4. 233자신을 연왕에 봉하러 온 오의 사신 장미 · 허안을 베어 위에 보내고 대사마 · 낙랑공이 되었습니다.
  5. 237요수에서 관구검을 물리치고 스스로 연왕이 되어 소한 원년이라 일컬었습니다.
  6. 238사마의에게 양평에서 에워싸여 달아나다 아들 공손수와 함께 베였습니다.요동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할아버지 공손도 · 아버지 공손강 · 숙부 공손공 · 형 공손황 · 아들 공손수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요동의 주인이다.

말을 열며

위와 오 사이에서 줄을 타 본 몸이오.

되받으며

요동의 셈법은 중원과 다르오.

말문이 막혀

…줄이 흔들리는군.

말문이 막혀

한쪽에 걸기엔 아직 이르다.

설전을 이기고

줄타기의 끝을 보여 드렸소.

설전에 지고

사마의… 그자만 아니었으면.

이긴 뒤

요동은 내 것이다!

진 뒤

…줄타기가 끝나는가.

쓰러지며

줄타기가… 여기서 끊어지는가.

같은 기치 아래

공손도공손강공손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