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옹顧雍

자 원탄(元歎) · 168년 ~ 243년 · 양주 오군 오현 · 손견 휘하

고옹 초상

19년간 묵묵히 내정을 총괄하며 오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명재상

능력치

통솔43무력18지력80정치90매력78

카드

공격력 2체력 3비용 2값어치 9직군 능리
초혼 비용 3
퇴각한 아군 하나를 체력 절반으로 되돌린다
내응 비용 4
비밀 · 적이 비용 3 이하 장수를 소환할 때 · 그 장수가 내 편으로 선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오서 고옹전과 배송지 주의 『강표전』 · 『오록』 · 서중의 평 · 『삼국지』 오서 오주전 · 반준전 · 고담전 · 『세설신어』 아량편

고옹은 자가 원탄이며 오군 오현 사람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록』은 증조할아버지 고봉이 영천태수를 지냈다고 적습니다. 채옹이 삭방에서 돌아와 원한을 피해 오에 머물 때 고옹은 그에게서 거문고와 글을 배웠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고옹은 배움에 한결같고 맑고 고요하며 영민해 가르치기 쉬웠으므로, 채옹이 그를 남다르게 여겨 「그대는 반드시 이룰 것이니 이제 내 이름을 그대에게 준다」고 했고, 그래서 두 사람의 이름이 같다고 합니다. 『오록』은 자 원탄도 채옹에게 감탄을 받았다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 적습니다.

주와 군의 천거로 스무 살 무렵 합비장이 되었고, 뒤에 누 · 곡아 · 상우의 현장을 지내며 가는 곳마다 다스린 자취를 남겼습니다. 손권이 회계태수를 겸하고도 군에 가지 않자 고옹을 군승으로 삼아 태수의 일을 대신하게 했는데, 그는 도적을 쳐 없애 군 안이 조용해지고 아전과 백성이 따랐습니다. 몇 해 뒤 도읍으로 들어가 좌사마가 되었고, 손권이 오왕이 되자 대리 · 봉상을 거쳐 상서령을 겸하고 양수향후에 봉해졌습니다. 후에 봉해지고 관청으로 돌아왔는데 집안사람들이 알지 못하다가 뒤에 듣고서야 놀랐다고 합니다.

황무 4년(225) 고옹이 어머니를 오에서 모셔 오자 손권이 몸소 찾아와 뜰에서 그 어머니에게 절했고, 공경 대신이 다 모였으며 태자도 축하하러 갔습니다. 고옹은 술을 마시지 않고 말이 적었으며 몸가짐이 늘 때에 맞았습니다. 손권은 「고군은 말하지 않으나 말하면 반드시 들어맞는다」고 탄복했습니다. 잔치에서 즐길 때 곁의 사람들은 술에 실수하면 고옹이 반드시 볼까 두려워 마음껏 즐기지 못했고, 손권도 「고공이 자리에 있으면 사람을 즐겁지 않게 한다」고 했으니 그가 이처럼 어려움을 받았습니다. 그해 그는 태상이 되고 예릉후로 올라, 손소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고 상서의 일을 함께 보았습니다. 오주전은 그가 승상이 된 것을 그해 6월로 적습니다.

승상으로서 그는 문무의 장수와 아전을 저마다 재능에 따라 맡기고 마음에 치우침이 없었습니다. 때때로 민간의 사정과 정사에 마땅한 일을 찾아 묻고는 은밀히 아뢰었는데, 받아들여지면 공을 임금에게 돌리고 쓰이지 않으면 끝내 밖에 흘리지 않았으므로 손권이 그를 무겁게 여겼습니다. 조정에서 아뢸 때는 말과 낯빛은 부드러워도 지키는 바는 발랐습니다. 손권이 정사의 잘잘못을 묻자 장소가 법령이 너무 빽빽하고 형벌이 조금 무겁다고 아뢰었는데, 손권이 말없이 고옹을 돌아보며 묻자 고옹은 「신이 들은 바도 장소가 아뢴 것과 같습니다」라고 했고, 이에 손권은 옥사를 의논해 형벌을 가볍게 했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손권은 늘 중서랑을 보내 고옹에게 일을 물었는데, 고옹의 뜻에 맞으면 되풀이해 따지고 술과 음식을 차려 주었고, 맞지 않으면 낯빛을 바로 하고 말없이 아무것도 차리지 않았습니다. 손권은 「고공이 기뻐하면 그 일이 마땅한 것이고, 말하지 않으면 아직 고르지 못한 것이니 내가 다시 생각하겠다」고 했다 합니다. 또 강가의 장수들이 공을 세우려 기습을 청하자, 고옹은 병법은 작은 이익을 경계한다며 그들이 공명을 바라 제 몸을 위하는 것이지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니 막아야 한다고 아뢰었고 손권이 따랐습니다. 가화 2년(233) 손권이 연왕으로 봉한 공손연에게 많은 군사를 딸려 사신을 보내려 하자, 오주전은 승상 고옹 이하 온 조정의 대신이 공손연을 믿을 수 없다며 간했으나 손권이 끝내 듣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공손연은 과연 사신들을 베어 그 머리를 위나라에 보냈습니다.

오랜 뒤 여일과 진박이 중서가 되어 관부와 주군의 문서를 맡아 살피더니, 차츰 위세를 부리며 술의 전매 같은 이익을 거두고 작은 허물까지 들추어 대신을 헐뜯고 죄 없는 이를 빠뜨렸는데, 고옹 등도 고발되어 꾸지람을 받았습니다. 『삼국지』 반준전은 교사 여일이 승상 고옹을 탄핵해 묶어 두게 했다가, 황문시랑 사굉의 말에 겁을 먹고 그 일을 거두었다고 적습니다. 뒤에 여일의 죄가 드러나 정위에 갇히자 고옹이 가서 옥사를 다루었는데, 그는 낯빛을 부드럽게 하고 여일의 진술을 물었으며 나갈 때에는 「그대는 달리 하고 싶은 말이 없는가」 하고 물었고, 여일은 머리를 조아릴 뿐 말이 없었습니다. 이때 상서랑 회서가 여일을 마주 대고 욕하자 고옹은 「관에는 바른 법이 있는데 어찌 이렇게까지 하는가」 하고 꾸짖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서중의 평은 그가 원한을 두지 않은 것은 참으로 어른답지만, 여일에게 할 말을 물은 것과 회서를 꾸짖은 것은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손권이 조카딸을 시집보내는 자리에 고옹과 아들, 손자 고담을 불렀는데, 술에 취한 고담이 세 번이나 일어나 춤을 그칠 줄 모르자 고옹은 이튿날 그를 불러 「임금은 허물을 품는 것을 덕으로 삼고 신하는 공손하고 삼가는 것을 절개로 삼는다」며 꾸짖고, 「우리 집을 망칠 자는 반드시 너일 것」이라 하고는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고 합니다. 또 『세설신어』는 맏아들 고소가 예장태수로 있다 죽었을 때, 관속을 모아 바둑을 두던 고옹이 편지는 왔는데 아들의 편지가 없자 낯빛은 변하지 않았으나 마음으로 까닭을 알고 손톱으로 손바닥을 찔러 피가 요에 흘렀으며, 손님들이 흩어진 뒤에야 탄식했다고 적습니다.

고옹은 승상으로 열아홉 해를 있다가 적오 6년(243) 일흔여섯으로 죽었습니다. 처음 병이 가벼울 때 손권이 의원 조천을 보내 보게 하고 막내아들 고제를 기도위로 삼았는데, 고옹은 이를 듣고 「조천은 살고 죽는 것을 잘 가리니 나는 반드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주상께서 내 눈으로 고제가 벼슬 받는 것을 보게 하시려는 것」이라며 슬퍼했습니다. 손권은 흰 옷을 입고 조문했고 시호는 숙후입니다. 맏아들 고소는 일찍 죽었고 둘째 고유는 깊은 병이 있어 막내 고제가 뒤를 이었으나 아들이 없어 끊겼으므로, 영안 원년(258) 손휴가 조서를 내려 고유에게 예릉후를 잇게 했습니다. 손자 고담은 할아버지가 죽고 몇 달 뒤 태상이 되어 그 뒤를 이어 상서의 일을 보았으나, 노왕 손패와 틈이 벌어지고 전기 부자의 모함을 받아 교주로 귀양 가 죽었고, 아우 고승도 함께 귀양 갔습니다.

진수는 「고옹은 본디의 학업에 기대고 지혜와 국량으로 그것을 행했기에 영화로운 자리를 끝까지 누렸다」고 평했습니다.

顧雍依杖素業,而將之智局,故能究極榮位
고옹은 본디의 학업에 기대고 지혜와 국량으로 그것을 행했기에 영화로운 자리를 끝까지 누릴 수 있었다『삼국지』 오서 고옹전 평
顧君不言,言必有中
고군은 말하지 않으나, 말하면 반드시 들어맞는다『삼국지』 오서 고옹전에 실린 손권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29~98회

연의에서 고옹은 제29회에 처음 나옵니다. 손권에게 돌아온 장굉이 그를 천거하는데, 연의는 그를 중랑 채옹의 제자로 말이 적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엄하고 바른 사람이라 소개하고, 손권은 그를 군승으로 삼아 태수의 일을 대신하게 합니다. 제38회에서는 장굉과 함께 손권이 오회에 연 빈관에서 사방의 손님을 맞습니다.

제43회에서 제갈량이 강동에 건너오자 장소 등과 함께 그를 맞는 문관 무리에 서고, 손권이 싸우려는 뜻을 보이자 「유비가 조조에게 져서 우리 강동의 군사를 빌려 막으려 하는데 주공께서 어찌 그에게 쓰이려 하십니까, 장소의 말을 들으십시오」라며 항복 쪽에 섭니다. 제44회에서는 장소 · 장굉 · 보즐과 함께 주유를 찾아가 항복을 권하고, 「의논이 모두 같다」고 답합니다.

제56회에서는 형주를 치려는 손권에게 유비를 형주목으로 표를 올려 조조를 두렵게 하고 반간계로 조조와 유비가 서로 치게 하자고 하고, 제61회에서는 유비가 서천으로 간 틈에 천구를 끊고 형양을 치자고 했다가 오국태의 꾸짖음을 듣습니다. 제68회에서는 장소와 함께 유수에서 조조와 화친하자고 아뢰고, 제73회에서는 조조의 사자 만총의 말에도 이치가 있다고 합니다. 제82회에서는 위제의 책봉을 받지 말라고 간하고, 제83회에서 감택이 육손을 천거하자 「육손은 나이가 어리고 명망이 가벼워 여러 공이 따르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합니다. 제86회에서는 장소와 함께 연호를 고치자고 아뢰고, 제96회에서는 위의 세 갈래 침공을 맞아 육손이 아니면 그 일을 맡을 수 없다고 천거합니다. 제98회에서 손권이 황제에 오르자 승상이 되어 상장군 육손과 함께 태자를 보좌해 무창을 지킵니다. 연의에서 고옹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00손권이 회계태수를 겸하자 군승이 되어 태수의 일을 대신하고 도적을 없앴습니다.
  2. 221손권이 오왕이 되자 대리 · 봉상을 거쳐 상서령을 겸하고 양수향후가 되었습니다.
  3. 225손소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었고, 그 자리를 열아홉 해 지켰습니다.말없는 승상
  4. 233공손연에게 사신을 보내려는 손권을 대신들과 함께 말렸으나 손권이 듣지 않았습니다.
  5. 238죄가 드러난 여일의 옥사를 맡아 낯빛을 부드럽게 하고 그를 심문했습니다.
  6. 243승상으로 있다가 일흔여섯으로 죽었고 시호는 숙후입니다.
  7. 258손휴가 조서를 내려 끊긴 집안을 둘째 아들 고유가 잇게 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고소 · 고유 · 고제 · 손자 고담 · 고승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말없이 하겠소.

말을 열며

말수가 적다고 생각까지 적은 것은 아니오.

되받으며

필요한 말만 하겠소.

말문이 막혀

….

말문이 막혀

침묵도 답이 되오.

설전을 이기고

십구 년 승상 자리가 답이오.

설전에 지고

오늘은 듣는 날인가 보오.

이긴 뒤

말없이 이겼소이다.

진 뒤

…말없이 물러나겠소.

쓰러지며

열아홉 해를 말없이 지켰다.

같은 기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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