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문약(文約) · 미상 ~ 215년 · 양주 금성군 · 한 세력의 주인
서북방 지역에서 30년간 세력을 떨치며 조조를 떨게 만든 서량의 대군벌
출전 · 『후한서』 동탁전과 이현 주의 『헌제춘추』 · 영제기 · 헌제기 · 『삼국지』 위서 동탁전과 배송지 주의 『구주춘추』 · 무제기와 배송지 주의 『전략』 · 촉서 마초전과 배송지 주의 『전략』 · 위서 종요전과 배송지 주의 사마표 『전략』 · 장기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전략』 · 하후연전 · 가후전 · 방육전 주의 『전략』
한수는 자가 문약이며 금성 사람입니다. 『전략』에 따르면 그는 같은 군의 변장과 함께 서쪽 고을에 이름이 났고, 계리로 서울에 갔을 때 그 이름을 들은 대장군 하진을 만나 환관들을 베라고 권했으나 하진이 따르지 않자 돌아갔습니다. 『후한서』 동탁전의 이현 주에 인용된 『헌제춘추』는 그의 본디 이름이 한약이었는데, 반란군에게 붙잡힌 뒤 농서에서 그의 이름을 도적으로 내걸고 상을 걸자 이름을 한수로 바꾸었다고 적습니다.
중평 원년(184) 겨울 북지의 선령강과 포한 · 하관의 무리가 들고일어나 황중의 의종호 북궁백옥 · 이문후를 장군으로 세웠고, 북궁백옥 등은 금성 사람 변장과 한수를 붙잡아 와 군사의 일을 오로지 맡겼습니다. 『전략』도 그가 붙잡혀 어쩔 수 없이 군사를 일으켰다고 적습니다. 이듬해 봄에는 수만 기병으로 삼보에 쳐들어가 환관을 벤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걸었습니다. 중평 3년(186) 겨울 한수는 변장과 북궁백옥 · 이문후를 죽이고 군사 10여만으로 농서를 에웠는데, 『전략』은 변장이 병으로 죽었다고 적어 갈립니다. 이듬해(187) 농서태수 이상여가 그와 손잡아 양주자사 경비를 죽였고, 경비의 사마였던 부풍의 마등과 한양의 왕국도 그와 합쳤습니다. 진창을 에웠다가 황보숭과 동탁에게 깨진 뒤로는 왕국을 폐하고 서로 권세를 다투며 흩어졌습니다.
초평 3년(192) 한수는 마등과 함께 장안에 와서 항복해 진서장군이 되어 금성으로 돌아갔습니다. 흥평 원년(194) 마등이 이각을 치자 둘을 화해시키러 왔다가 마등과 합쳐 장평관 아래에서 크게 졌고, 쫓아온 번조와 말을 나란히 하고 웃으며 이야기한 일로 번조가 이각의 의심을 사 죽었습니다. 마초전 배송지 주의 『전략』에 따르면 한수는 마등과 이성 형제를 맺어 처음에는 몹시 가까웠으나 부곡끼리 서로 침범하다 원수가 되었고, 마등에게 쫓겼다가 되돌아와 그의 처자를 죽였습니다. 조정이 종요와 위단을 보내 둘을 화해시켰고, 둘은 저마다 아들을 조정에 들여보냈습니다. 사마표의 『전략』에 따르면 원상의 장수 곽원이 하동에 쳐들어오자 마등은 마초에게 한수의 군사까지 거느리고 종요와 함께 그를 깨뜨리게 했습니다.
『위략』에 따르면 건안 14년(209) 한수가 사위 염행을 보내자 조조는 「그대가 처음 군사를 일으킬 때 몰린 사정이 있었음을 내가 잘 안다」고 전했고, 한수는 뒤에 아들을 업으로 보냈습니다. 건안 16년(211) 마초 등이 반란을 꾀해 그를 도독으로 세우며 「저는 아버지를 버리고 장군을 아버지로 삼을 터이니 장군도 아들을 버리고 저를 아들로 삼으십시오」 하자, 한수는 「여러 장수가 꾀하지 않았는데 뜻이 같으니 하늘의 운수인 듯하다」며 화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동관에서 맞선 조조는 가후의 꾀를 따라 화친을 거짓으로 허락했고, 한수의 아버지와 같은 해 효렴이었던 인연으로 그와 말을 맞대고 군사 일은 꺼내지 않은 채 서울의 옛일만 이야기하며 손뼉을 치고 웃었습니다. 뒤에 여러 곳을 지우고 고쳐 마치 한수가 손본 듯한 편지를 보내자 마초 등은 그를 더욱 의심했고, 조조에게 크게 깨진 한수와 마초는 양주로 달아났습니다. 『위략』에 따르면 조조는 서울에 있던 한수의 자손을 죽였습니다.
『위략』은 화음에서 지고 황중으로 돌아갈 때 무리가 흩어지고 성공영만 그를 따랐다고 적고, 『전략』은 사위 염행이 밤에 그를 쳤을 때 한수가 「대장부가 곤궁해지니 화가 혼인에서 일어나는구나」 하고 탄식했다고 적습니다. 건안 19년(214) 한수는 강족과 호족 기병 만여 명으로 하후연과 싸웠으나 장리에서 크게 져 서평으로 달아났습니다. 건안 20년(215) 서평 · 금성의 장수 국연 · 장석 등이 그의 머리를 베어 조조에게 보냈습니다. 『삼국지』 동탁전은 그가 제 장수에게 죽었다고 적고, 『전략』은 군사를 끼고 난을 일으킨 지 서른두 해 만에 일흔 남짓으로 죽었다고 적습니다. 『위략』에 따르면 조조에게 항복한 성공영은 「한문약에게만 절개를 다하고 나에게는 못 하는가」라는 조조의 말에 「옛 주인이 살아 있었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목이 메었습니다.
遂爲揚等所劫,不得已,遂阻兵爲亂,積三十二年,至是乃死,年七十餘矣卿始起兵時,自有所逼,我所具明也『삼국연의』 제10회 · 제58~59회
연의에서 한수는 제10회에 병주자사로 처음 나옵니다. 서량태수 마등과 함께 군사 10여만을 이끌고 이각 · 곽사를 치러 장안으로 오며, 조정의 마우 · 유범 · 충소와 안팎으로 손을 잡아 헌제의 밀조로 진서장군이 됩니다. 마초가 이몽 · 왕방을 무찌르지만 군량이 떨어지고 내응이 드러나 물러나는데, 진창 가까이에서 쫓아온 번조에게 「나와 공은 한 고향 사람인데 오늘 어찌 이리 무정하오」 하자 번조가 그를 놓아 주고, 이 일로 번조는 이각에게 죽습니다.
제58회에서는 서량태수로 다시 나옵니다. 조조에게서 마초를 잡아 보내면 서량후로 삼겠다는 글을 받지만 「네 아버지와 형제를 맺었으니 어찌 너를 해치겠느냐」며 사자를 베고, 후선 · 정은 · 이감 · 장횡 · 양흥 · 성의 · 마완 · 양추의 여덟 부를 거느리고 마초와 함께 장안을 떨어뜨립니다. 위남에서는 조조의 함정에 에워싸였다가 방덕에게 구출됩니다.
제59회에서 한수는 땅을 떼어 주고 화친하자는 이감의 말을 따르고, 조조와 진 앞에서 말을 맞대어 나이를 묻는 말에 마흔이라 답하며 서울의 옛일만 이야기합니다. 이어 여러 곳을 지우고 고친 조조의 편지가 오고, 조홍이 「간밤에 승상께서 하신 말씀을 그르치지 마시오」 하고 돌아가자 마초는 그를 더욱 의심합니다. 한수는 양추의 권을 따라 조조에게 항복하기로 하고 마초를 칠 꾀를 의논하는데, 장막에 뛰어든 마초가 칼을 내리치자 손으로 막다가 왼손을 잃습니다. 조조는 왼손이 없는 그를 서량후로 삼습니다. 연의에서 한수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업에 들여보냈다가 211년 죽임을 당함) · 작은딸 · 사위 염행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금성의 한문약이오.
서량에서 삼십 년을 버틴 사람이오.
오래 산 자의 말은 무겁소.
…또 이간질인가.
믿을 자가 없구려.
버티는 것도 재주요. 삼십 년이오.
…의심이 나를 무너뜨렸구려.
서량은 아직 내 땅이다.
…삼십 년도 저무는가.
서량의 삼십 년이…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