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요劉繇

자 정례(正禮) · 미상 ~ 미상 (197년 이후) · 청주 동래군 모평현 · 한 세력의 주인

유요 초상

전한 황실의 후예로 양주자사에 올랐으나 손책에게 강동을 내준 명문가

능력치

통솔65무력66지력47정치72매력64

카드

공격력 4체력 3비용 2값어치 7직군 능리

정사

출전 · 『삼국지』 오서 유요전 · 손책전 · 태사자전 · 위서 장홍전 · 화흠전과 배송지 주의 『강표전』 · 원굉 『한기』 · 『헌제춘추』 · 『위략』 · 『한진춘추』 · 『후한서』 유총전 · 헌제기

유요는 자가 정례이며 동래군 모평현 사람입니다. 한나라 제 효왕의 막내아들이 모평후에 봉해지면서 자손이 그곳에 살게 되었고, 『후한서』 유총전은 이 집안을 고조의 아들 제 도혜왕의 후손이라 적습니다. 백부 유총은 한나라의 태위였습니다. 『후한서』에 따르면 유총은 회계태수를 그만두고 떠날 때 산골 노인들이 돈을 모아 배웅하자 큰 돈 한 닢만 받았다고 할 만큼 깨끗했습니다. 아버지는 산양태수를 지냈고, 형 유대는 시중을 거쳐 연주자사가 되었으며, 『후한서』는 두 형제가 나란히 이름이 높았다고 적습니다.

열아홉 살 때 숙부 유위가 도적에게 붙잡혀 볼모가 되자 유요가 빼앗아 데리고 돌아와 이름이 났습니다. 효렴으로 천거되어 낭중이 되고 하읍장에 제수되었는데, 『삼국지』 장홍전은 이때 낭관들을 현장으로 내보내며 동래의 유요를 하읍장, 동해의 왕랑을 치구장으로 삼았다고 적습니다. 그러나 군수가 귀한 외척을 부탁하자 벼슬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주에서 불러 제남을 맡기자, 중상시의 아들인 제남상이 탐욕스럽고 법을 따르지 않으므로 그를 탄핵해 파면시켰습니다. 평원의 도구홍이 그를 무재로 천거하게 하려 하자 자사가 지난해 공산을 천거했는데 어찌 또 정례를 천거하느냐고 했고, 도구홍은 「먼저 공산을 쓰고 뒤에 정례를 쓰신다면 이른바 두 마리 용을 먼 길에 몰고 천리마를 천 리에 달리게 하는 것」이라 답했습니다. 공산은 형 유대의 자입니다. 사공의 연리로 불리고 시어사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난을 피해 회포로 갔습니다.

조서로 양주자사가 되었으나 원술이 회남에 있어 두려워 주로 가지 못했습니다. 남쪽으로 강을 건너려 하자 오경과 손분이 곡아로 맞아들였습니다. 원술이 참람한 뜻을 품고 여러 군현을 쳐서 빼앗자 유요는 번능 · 장영을 강가에 두어 막았고, 오경과 손분이 원술이 임명한 사람이라 하여 몰아냈습니다. 손책전은 이때 번능 · 우미를 횡강진에, 장영을 당리구에 두었다고 적습니다. 원술은 스스로 양주자사를 두고 오경 · 손분과 힘을 합쳐 장영 · 번능 등을 쳤으나 한 해가 넘도록 깨뜨리지 못했습니다. 한나라는 유요를 양주목 · 진무장군으로 높였고 무리는 수만에 이르렀습니다. 『후한서』는 그가 흥평 연간에 양주목 · 진위장군이 되었고, 중원의 난리로 남쪽으로 내려온 선비들을 거두어 함께 고락을 나누어 이름을 크게 얻었다고 적습니다. 『후한서』 허소전은 사람을 품평하기로 이름난 허소가 도겸을 떠나 곡아의 유요에게 몸을 의탁했다고 적습니다.

손책이 강을 동쪽으로 건너와 장영 · 번능 등을 깨뜨렸습니다. 『강표전』은 이것을 흥평 2년(195)의 일로 적어 손책이 우저의 유요 진영을 쳐서 곡식과 무기를 거두었고, 그때 팽성상 설례와 하비상 착융이 유요를 맹주로 받들고 있었다고 하지만, 『후한서』 헌제기는 유요가 곡아에서 손책과 싸워 진 일을 흥평 원년(194)에 적습니다. 태사자전에 따르면 같은 군 사람 태사자가 곡아에 와 있을 때 누군가 그를 대장군으로 삼으라고 권하자, 유요는 「내가 자의를 쓰면 허자장이 나를 비웃지 않겠는가」 하며 척후만 맡겼습니다. 허자장은 허소입니다. 유요는 단도로 달아났습니다. 원굉의 『한기』에 따르면 유요가 회계로 가려 하자 허소는 회계는 넉넉해 손책이 탐내는 곳이고 바닷가 구석이라 물러설 데가 없으니, 북으로 예주와 잇닿고 서로 형주와 붙은 예장으로 가서 조정에 공물을 바치고 조조와 소식을 통하면 조조와 유표가 반드시 도울 것이라 했고, 유요는 그 말을 따랐습니다.

유요는 강을 거슬러 남쪽으로 올라가 예장을 지키며 팽택에 머물렀습니다. 착융이 먼저 와서 태수 주호를 죽이고 군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헌제춘추』에 따르면 유요는 착융에게 유표가 세운 태수 제갈현을 치는 주호를 돕게 했는데, 허소가 착융은 명분을 돌보지 않는 자이니 몰래 대비하게 하라고 일렀으나 착융은 과연 주호를 속여 죽였습니다. 유요는 착융을 치다 졌지만 속현의 군사를 다시 모아 그를 깨뜨렸고, 산으로 달아난 착융은 백성에게 죽었습니다. 제갈량전에 인용된 『헌제춘추』는 건안 2년(197) 정월 서성의 백성이 제갈현을 죽여 그 머리를 유요에게 보냈다고 적습니다. 유요는 얼마 뒤 병으로 죽었으니 그때 마흔둘이었습니다. 『위략』에 따르면 그의 무리는 예장태수 화흠을 주인으로 받들려 했으나 화흠은 끝내 사양했습니다.

건안 4년(199) 손책은 강하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예장에 들러 유요의 널을 거두고 그 집안을 잘 대했습니다. 왕랑은 손책에게 편지를 보내, 유요가 처음 주에 왔을 때 손씨 집안의 도움으로 강을 건너 자리를 잡았으나 원씨와의 틈으로 동맹이 원수가 되었으니 그 본심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원한을 덕으로 갚아 뼈를 거두고 고아를 기른 손책을 칭송했습니다. 맏아들 유기는 열네 살에 아버지의 상을 예를 다해 치르며 옛 아전들이 보내는 것을 하나도 받지 않았습니다. 손권은 그를 아끼고 공경해 대농 · 낭중령을 거쳐 광록훈에 이르게 했고, 유기는 술 취한 우번을 손권이 죽이려 할 때 간해 살렸습니다. 유기는 마흔아홉에 죽었고 손권은 그 딸을 아들 손패의 아내로 맞았습니다. 두 아우 유삭과 유상은 모두 기도위가 되었습니다.

진수는 「유요는 이름과 행실을 갈고닦고 사람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를 좋아했으나, 어지러운 때에 만 리의 땅을 차지하는 것은 그의 장기가 아니었다」고 평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한진춘추』의 후출사표에서 제갈량은 유요와 왕랑이 저마다 주와 군을 차지하고 말끝마다 성인을 끌어대며 의심만 가득해 싸우지 않다가 손책이 커져 강동을 아우르게 했다고 꼬집었습니다.

劉繇藻厲名行,好尚臧否。至於擾攘之時,據萬里之士,非其長也
유요는 이름과 행실을 갈고닦고 사람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를 좋아했으나, 어지러운 때에 만 리의 땅을 차지하는 것은 그의 장기가 아니었다『삼국지』 오서 유요전 평
若明使君用公山於前,擢正禮於後,所謂御二龍於長塗,騁騏驥於千里
먼저 공산을 쓰고 뒤에 정례를 쓰신다면, 이른바 두 마리 용을 먼 길에 몰고 천리마를 천 리에 달리게 하는 것이다『삼국지』 오서 유요전에 실린 도구홍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1회 · 제15회 · 제97회

연의에서 유요는 제11회에 태사자의 말 속에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북해의 포위를 푼 태사자가 같은 군 사람인 양주자사 유요가 편지로 부른다며 떠납니다.

제15회에서 연의는 유요를 동래 모평 사람으로 한 황실의 친척이자 태위 유총의 조카, 연주자사 유대의 아우로 소개하고, 본래 양주자사로 수춘에 있다가 원술에게 쫓겨 강동의 곡아로 왔다고 적습니다. 손책이 쳐들어오자 부장 장영이 우저를 지키겠다고 나서고, 선봉을 맡겠다는 태사자에게는 아직 나이가 어리다며 곁에서 명을 들으라고 합니다. 장영이 우저를 잃고 돌아오자 베려 하지만 착융과 설례가 말려 영릉성을 지키게 합니다. 유요는 신정령 남쪽에 진을 치고, 손책이 고개 위 광무제 사당에 올랐다는 말에 꾀이니 쫓지 말라고 하지만 태사자는 홀로 나가 손책과 겨룹니다. 이튿날 두 진이 맞선 가운데 주유가 진무의 도움으로 곡아를 빼앗았다는 말을 듣고, 유요는 말릉의 설례 · 착융과 합치려 물러나다 그날 밤 손책의 기습에 크게 무너집니다. 다시 착융과 함께 우저를 치러 나섰으나 부장 우미는 손책의 옆구리에 끼여 죽고 번능은 손책의 고함에 말에서 떨어져 죽으며, 유요는 착융과 함께 예장으로 달아나 유표에게 의탁하러 갑니다. 이야기에서 유요는 여기서 사라집니다.

제97회의 후출사표에서 제갈량은 유요와 왕랑이 저마다 주와 군을 차지하고 말끝마다 성인을 끌어대며 해마다 싸우지 않다가 손권이 커져 강동을 아우르게 했다고 말합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4곡아에 자리 잡고 번능 · 장영을 강가에 두어 원술 쪽과 한 해 넘게 맞섰습니다.
  2. 195같은 군 사람 태사자를 대장으로 쓰자는 권유를 허소의 비웃음을 꺼려 물리쳤습니다.
  3. 195강을 건너온 손책에게 장영 · 번능이 깨지자 단도로 달아났습니다.곡아를 잃다
  4. 195허소의 권유로 회계 대신 예장으로 가서 팽택에 머물렀습니다.
  5. 197『헌제춘추』에 따르면 정월 서성의 백성이 제갈현을 죽여 그 머리를 유요에게 보냈습니다.
  6. 199손책이 강하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예장에서 유요의 널을 거두고 그 집안을 잘 대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백부 유총 · 형 유대 · 아들 유기 · 유삭 · 유상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양주자사 유정례요.

말을 열며

한실의 종친으로서 예를 갖춰 묻겠소.

되받으며

명문의 말은 가볍지 않소.

말문이 막혀

…강동이 또 기우는가.

말문이 막혀

명분은 아직 내게 있소.

설전을 이기고

혈통과 학식은 못 속이오.

설전에 지고

손랑의 기세가 말에도 있구려.

이긴 뒤

강동에서도 버텼소.

진 뒤

…이름만으로는 안 되는구려.

쓰러지며

…황실의 후예도 이러하구나.

같은 기치 아래

태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