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문화(文和) · 147년 ~ 223년 · 양주 무위군 고장현 · 장수 휘하
이각 · 곽사에게 장안을 치게 하고 조조 부자를 섬겨 태위에 오른 책사
출전 · 『삼국지』 위서 가후전과 배송지 주의 『헌제기』 · 『위략』 · 위서 동탁전 · 무제기 · 문제기 · 장수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전위전 · 원소전 · 유표전 · 촉서 마초전 · 『후한서』 동탁전 · 황후기
가후는 자가 문화이며 무위군 고장현 사람입니다. 젊어서는 알아주는 이가 없었고 한양의 염충만이 그에게 장량 · 진평 같은 기이함이 있다고 했습니다. 효렴으로 낭이 되었다가 병으로 벼슬을 버리고 돌아가던 길에 배반한 저족에게 일행과 함께 붙잡혔는데, 서쪽에 위엄을 떨친 태위 단경의 외손이라 속여 홀로 풀려났고 나머지는 다 죽었습니다. 가후전은 그가 때에 맞춘 꾀로 일을 이룬 것이 다 이와 같았다고 적습니다.
중평 6년(189) 동탁이 낙양에 들어오자 태위연이던 가후는 평진도위가 되었다가 토로교위로 옮겼고, 섬에 머물던 동탁의 사위 중랑장 우보의 군중에 있었습니다. 초평 3년(192) 동탁이 죽고 우보마저 죽자 교위 이각 · 곽사 · 장제 등은 무리를 흩고 샛길로 고향에 돌아가려 했습니다. 『후한서』 동탁전은 그들이 사면을 청했으나 왕윤이 한 해에 두 번 사면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적습니다. 이때 가후는 「장안에서 양주 사람을 다 죽이려 의논한다는데, 무리를 버리고 홀로 가면 정장 하나도 그대들을 묶을 수 있다. 무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장안을 쳐 동공의 원수를 갚고, 일이 이루어지면 나라를 받들어 천하를 치고 안 되면 그때 달아나도 늦지 않다」고 했습니다. 정장은 마을의 치안을 맡은 작은 벼슬입니다. 이각은 그 말을 따라 장안을 쳤고, 배송지는 큰 악인이 목이 달려 천지가 열리려던 때에 다시 난리를 맺게 한 것이 가후의 한마디라며 「가후의 죄가 어찌 이리 큰가」라고 적었습니다.
좌풍익이 된 가후는 이각 등이 후에 봉하려 하자 「목숨을 건지려던 꾀일 뿐 무슨 공이 있는가」라며 사양했고, 상서가 되어 인재 뽑는 일을 맡아 바로잡은 것이 많았습니다. 흥평 2년(195) 이각과 곽사가 장안에서 서로 싸울 때 선의장군이 되었는데, 배송지 주에 인용된 『헌제기』는 이각이 천자를 제 진영에 두려 하자 가후가 「천자를 위협하는 것은 의가 아니다」라며 말렸고, 궁녀를 내놓으라며 몰려든 강족 · 호족의 우두머리들을 헌제의 부탁으로 달래 돌려보냈다고 적습니다. 천자가 장안을 벗어나고 대신들이 보호받는 데는 가후의 힘이 있었고, 천자가 떠나자 그는 인수를 돌려보내고 같은 군 사람인 화음의 장군 단외에게 갔습니다.
단외가 겉으로 예를 다하면서 속으로 그를 꺼리자 가후는 남양의 장수에게 옮겼고, 장수는 그를 자손의 예로 섬겼습니다. 가후는 장수에게 형주의 유표와 손을 잡게 했습니다. 건안 2년(197) 완에서 조조에게 항복한 장수가 다시 조조를 덮쳐, 조조는 맏아들 조앙과 조카 조안민, 그리고 전위를 잃었습니다. 장수전 본문은 조조가 장제의 아내를 들이자 원한을 품은 장수가, 제 목숨을 노린 조조의 꾀가 새어 나오자 먼저 덮쳤다고만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는 장수가 가후의 꾀대로 군을 옮기겠다며 조조의 진영 한가운데를 지나게 해 달라 하고, 군사마다 갑옷을 입게 해 달라 청해 허락받은 뒤 덮쳤다고 전합니다. 그 뒤 장수를 치던 조조가 하루아침에 군을 물리자 장수가 쫓으려 했습니다. 가후는 쫓으면 반드시 진다고 말렸으나 장수는 듣지 않고 쫓다가 크게 졌고, 이번에는 가후가 서둘러 다시 쫓으면 반드시 이긴다고 하여 과연 이겼습니다. 가후는 조공이 물러날 때는 몸소 뒤를 끊으나, 힘을 다하지 않고 물러난 것은 나라 안에 일이 있어서이니 한 번 이긴 뒤에는 서둘러 돌아갈 것이라고 풀었습니다.
건안 4년(199) 관도에서 조조와 맞선 원소가 사람을 보내 장수를 부르자, 가후는 그 자리에서 사자에게 「형제도 서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천하의 국사를 받아들이겠느냐」고 했습니다. 원소는 강하고 조조는 약한 데다 조조와는 원수라며 망설이는 장수에게 가후는 세 까닭을 들었습니다. 조공은 천자를 받들어 천하에 명을 내리고, 세력이 약해 우리를 얻으면 반드시 기뻐할 것이며, 패왕의 뜻이 있는 이는 사사로운 원한을 풀어 온 천하에 덕을 밝히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수가 무리를 이끌고 오자 조조는 기뻐하며 가후의 손을 잡고 「나를 천하에 믿음 있게 한 이는 그대」라 했고, 그를 집금오로 삼아 도정후에 봉했습니다. 이듬해 관도에서 군량이 다해 가던 조조가 꾀를 묻자 가후는 원소보다 나은 조공이 반년이 되도록 결판을 못 낸 것은 만전만 돌보았기 때문이니 기회를 결단하라고 했고, 무제기는 오소를 치라는 허유의 말을 모두가 의심할 때 순유와 가후만이 권했다고 적습니다.
건안 13년(208) 형주를 얻은 조조가 강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려 하자, 가후는 백성을 편안히 하면 싸우지 않고도 강동이 머리를 숙일 것이라 간했으나 조조는 따르지 않았고 싸움은 이롭지 못했습니다. 건안 16년(211) 위남에서 마초 등이 땅을 떼어 주면 화친하겠다고 하자 가후는 거짓으로 허락하라고 했고, 다시 계책을 묻자 「갈라놓을 뿐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조조는 그 꾀를 따라 한수와 마초를 깨뜨렸고, 무제기는 조조가 한수와 말을 나란히 하고 옛이야기만 나눈 뒤 여러 곳을 지우고 고친 편지를 보내 마초 등이 한수를 더욱 의심하게 했다고 적습니다.
조비와 조식에게 저마다 무리가 있어 맏이를 바꾸자는 의논이 일자, 가후는 스스로를 굳게 할 방도를 묻는 조비에게 덕과 도량을 넓히고 아들의 도리를 어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조조가 좌우를 물리고 후계를 묻자 가후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원본초와 유경승 부자를 생각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원소와 유표는 모두 작은아들을 뒤로 세우려 했던 이들이고, 조조는 크게 웃었으며 태자가 마침내 정해졌습니다. 가후는 스스로 조조의 옛 신하가 아닌 데다 꾀가 깊어 의심받을까 두려워 문을 닫고 사사로운 사귐을 두지 않았고, 아들딸의 혼인도 높은 집안과 맺지 않았습니다.
건안 25년(220) 조비가 위왕 자리를 잇자 가후는 태위가 되었고,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조비가 조조에게 한 가후의 대답을 고맙게 여겨 가장 먼저 그를 삼공에 올렸다고 적습니다. 황제가 된 조비가 오와 촉 가운데 어디를 먼저 칠지 묻자 가후는 문을 앞세우고 무를 뒤로 하라고 했으나, 조비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뒤에 강릉을 치다 군사를 많이 잃었습니다. 황초 4년(223) 일흔일곱으로 죽으니 시호는 숙후이고, 맏아들 가목이 뒤를 이었으며 가목이 죽자 그 아들 가모가 이었습니다. 진수는 「순유와 가후는 셈에 빠뜨린 것이 거의 없고 권도와 변화에 통달했으니, 장량 · 진평의 다음일 것」이라 평했고, 배송지는 두 사람이 비추는 것은 같아도 바탕이 다른 밤빛 구슬과 횃불 같다며 한 전에 묶은 것을 나무랐습니다.
荀攸、賈詡,庶乎筭無遺策,經達權變,其良、平之亞與詡自以非太祖舊臣,而策謀深長,懼見猜疑,闔門自守,退無私交『삼국연의』 제9~86회
연의에서 가후는 제9회에 처음 나옵니다. 동탁이 죽고 사면을 청했다가 왕윤에게 거절당한 이각 · 곽사 · 장제 · 번조가 저마다 살길을 찾자고 하자, 모사 가후가 「군사를 버리고 홀로 가면 정장 하나도 그대들을 묶을 수 있으니, 섬의 사람들과 본부 군마를 모아 장안에 쳐들어가 동탁의 원수를 갚자. 일이 되면 조정을 받들어 천하를 바로잡고, 안 되면 그때 달아나도 늦지 않다」고 합니다. 제10회에서는 쳐들어온 마등 · 한수를 굳게 지켜 물리치자고 하고, 한수를 놓아준 번조를 잔치 자리에서 베게 하며, 백성을 달래고 어진 이를 맺으라고 여러 번 권합니다. 제13회에서 이각과 곽사가 싸울 때는 천자의 수레를 호송하고, 울며 목숨을 부탁하는 헌제에게 스스로 도모하겠다고 답하며, 강족에게 천자의 밀조가 있다고 일러 돌려보냅니다. 제14회에서 조조가 오자 이각에게 항복하라고 권했다가 칼을 맞을 뻔하고, 그날 밤 홀로 말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제16회에서는 장수의 모사로 다시 나와, 조조의 대군 앞에서 장수에게 항복을 권하고 몸소 조조의 진영에 가서 항복을 알립니다. 그를 모사로 삼으려는 조조에게는 지금의 주인을 버릴 수 없다며 사양합니다. 조조가 장제의 아내 추씨를 들이자 성난 장수에게 꾀를 일러 주어, 진을 옮기겠다고 청하게 하고 호거아가 전위의 쌍극을 훔친 밤에 조조의 진영을 덮치게 합니다. 제17~18회에서는 남양성을 치는 조조가 서북쪽을 칠 듯 꾸미고 동남쪽으로 넘어올 것을 꿰뚫어 그곳에 군사를 숨겨 크게 이기고, 물러나는 조조를 쫓지 말라 했다가 진 뒤에는 다시 쫓으라 하여 이기게 합니다. 제23회에서는 조조가 보낸 유엽과 원소의 사자가 함께 오자, 원소의 편지를 찢어 사자를 꾸짖고 세 까닭을 들어 장수를 조조에게 이끈 뒤 집금오사가 됩니다.
그 뒤 가후는 조조 곁의 모사로 곳곳에 나옵니다. 제30회 오소를 칠 때는 순유 · 조홍과 함께 본영을 지키고, 제59회에서는 땅을 떼어 화친하자는 한수 · 마초에게 거짓으로 허락하고 반간계를 쓰라고 한 뒤, 요긴한 곳을 지우고 고친 편지를 한수에게 보내 마초가 의심하게 하는 꾀를 냅니다. 제68회에서는 조비에게 꾀를 일러 주어 조조가 싸움터로 떠날 때 울며 절하게 하고, 후계를 묻는 조조에게 「원소와 유표 부자를 생각했다」고 답해 조비를 세자로 세우게 합니다. 제78회에서는 세 마리 말이 한 구유에서 먹는 조조의 꿈을 길한 조짐이라 풀어 줍니다. 제79회에서 조비가 왕위에 오르자 태위가 되고, 제80회에서는 헌제에게 선양을 재촉하고 조비에게 수선대를 쌓게 하는 꾀를 냅니다. 제85회에서는 오와 촉을 서둘러 치지 말라 간했으나, 듣지 않고 세 길로 오를 치다 크게 진 조비가 「가후와 유엽의 말을 듣지 않아 이렇게 졌다」고 뉘우칩니다. 제86회에서 태위 가후가 이미 죽었다고만 전하니, 연의에서 가후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맏아들 가목 · 작은아들 가방 · 손자 가모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난세를 건너는 법을 아오.
가문화요. 나는 오래 사는 쪽을 택하오.
말을 아끼는 것이 내 처세요.
…셈이 하나 틀렸는가.
물러설 자리를 봐 두어야겠소.
이기는 수보다 살아남는 수가 어렵소.
…이번에는 몸을 낮추겠소.
다치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오.
…물러설 때를 아는 것도 재주요.
…끝내 몸을 보전하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