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흠華歆

자 자어(子魚) · 157년 ~ 231년 · 청주 평원군 고당현 · 한 세력의 주인

화흠 초상

손책 앞에 갈건 쓰고 항복했으나 끝내 위의 삼공에 오른 청빈한 대신

능력치

통솔25무력33지력82정치83매력14

카드

공격력 3체력 2비용 2값어치 7직군 능리
매복 비용 2
지정한 아군의 이번 공격은 반격을 받지 않는다 (행동 남은 아군만)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화흠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화교보서』 · 『오력』 · 『강표전』 · 『위서』 · 『부자』 · 손성의 말 · 『삼국지』 위서 무제기와 배송지 주의 『조만전』 · 문제기 배송지 주의 원굉 『한기』 · 명제기 · 관녕전 · 『후한서』 황후기

화흠은 자가 자어이며 평원군 고당현 사람입니다. 고당은 제나라 땅의 이름난 고을이라 벼슬아치들이 모두 저잣거리를 노닐었지만, 아전이 된 화흠은 쉬는 날이면 관아를 나와 곧장 집에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의논할 때는 늘 공평해 끝내 남을 헐뜯지 않았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그가 북해의 병원 · 관녕과 함께 떠돌며 배웠는데, 셋이 서로 친해 그때 사람들이 셋을 한 마리 용에 빗대 화흠을 머리, 병원을 배, 관녕을 꼬리라 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는 병원과 관녕의 덕망이 화흠에게 뒤지지 않는다며 이 말로 셋의 앞뒤를 정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같은 군의 도구홍도 이름이 있어 스스로 화흠보다 밝다고 여겼습니다. 기주자사 왕분이 호걸들과 영제를 폐하려 꾀하며 몰래 두 사람을 부르자, 도구홍은 가려 했으나 화흠은 「폐립은 이윤과 곽광도 어려워한 큰일이다. 왕분은 성품이 거칠고 무예가 없어 반드시 이루지 못하고 화가 집안에 미칠 것」이라며 말렸습니다. 도구홍은 그 말을 따랐고, 왕분이 과연 실패하자 화흠에게 탄복했습니다. 효렴으로 천거되어 낭중이 되었다가 병으로 물러났고, 중평 6년(189) 영제가 죽고 대장군 하진이 정사를 돕게 되자 정태 · 순유와 함께 부름을 받아 상서랑이 되었습니다.

동탁이 천자를 장안으로 옮기자 화흠은 하규령으로 나가기를 청했으나 병으로 가지 못하고 남전을 거쳐 남양으로 갔습니다. 『화교보서』는 그가 정태 등 뜻이 맞는 예닐곱과 무관을 걸어 나올 때 길에서 만난 사내를 받아 주기를 홀로 꺼렸으나, 함께 가던 사내가 우물에 빠지자 다들 버리려 할 때 「이미 함께했으니 버리는 것은 의가 아니다」라며 건져 냈다고 적습니다. 양현에 있던 원술이 그를 붙들어 두자 화흠은 군사를 내어 동탁을 치라고 권했으나 원술은 쓰지 못했습니다. 떠나려던 참에 천자의 명으로 관동을 다독이러 온 태부 마일제가 그를 연리로 불렀고, 동쪽 서주에 이르렀을 때 조서로 예장태수가 되었습니다. 다스림이 맑고 번거롭지 않아 아전과 백성이 감동해 그를 아꼈습니다. 『위략』은 양주자사 유요가 죽은 뒤 그 무리가 화흠을 주인으로 받들려 하자, 그는 때를 틈타 제멋대로 명을 내리는 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니라며 달포를 지키는 무리를 끝내 돌려보냈다고 적습니다.

건안 4년(199) 손책이 강동을 거두며 예장으로 오자 화흠은 손책이 군사를 잘 부린다는 것을 알고 폭건 차림으로 나가 맞았고, 손책은 그를 어른으로 여겨 윗손님의 예로 대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력』은 손책이 먼저 우번을 보내 달랬고 화흠이 갈건을 쓰고 맞자 손책이 자제의 예로 절했다고 적고, 『강표전』은 공조 유일의 권유로 밤새 격문을 지어 이튿날 아전을 보내 맞았다고 적습니다. 『화교보서』는 손책의 잔치에서 아무도 그보다 먼저 말하지 못했고 술을 한 섬 넘게 마셔도 옷매무새가 흐트러지지 않아 강남 사람들이 그를 「화독좌」라 불렀다고 전하고, 손성은 그가 숨어 사는 풍모도 왕의 신하다운 지조도 없었다며 나무랐습니다.

건안 5년(200) 관도에 있던 조조가 천자에게 표를 올려 화흠을 부르게 했습니다. 손책은 이미 죽고 손권이 보내지 않으려 하자 화흠은 「장군이 조공과 막 사귀기 시작했으니 저를 보내 마음을 다하게 하는 것이 이롭고, 지금 붙들어 두는 것은 쓸모없는 것을 기르는 셈」이라 달래 떠날 수 있었습니다. 배웅 나온 빈객과 옛 벗이 천여 명이었고 선물이 수백 금이었는데, 화흠은 하나도 물리치지 않고 몰래 저마다 표를 해 두었다가 떠날 때 모두 모아 놓고 「홀로 수레를 몰아 먼 길을 가는데 구슬을 품은 것이 죄가 될까 걱정」이라 했습니다. 빈객들은 저마다 준 것을 거두어 가며 그의 덕에 탄복했습니다.

조정에 이르러 의랑으로 사공 조조의 군사에 참여했고, 상서 · 시중을 거쳐 순욱을 대신해 상서령이 되었습니다. 『후한서』 황후기는 건안 19년(214) 복황후를 폐할 때 상서령 화흠이 어사대부 치려의 부관으로 군사를 이끌고 궁에 들어가, 문을 닫고 벽 속에 숨은 황후를 끌어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조만전』도 화흠이 문을 부수고 벽을 헐어 황후를 끌어냈다고 전합니다. 조조가 손권을 칠 때 표를 올려 군사로 삼았고, 위나라가 선 뒤 건안 22년(217) 어사대부가 되었습니다.

연강 원년(220) 조비가 위왕이 되자 상국이 되어 안락향후에 봉해졌고, 황제에 오르자 사도가 되었습니다. 원굉의 『한기』는 조비에게 승상과 위왕의 자리를 잇게 하는 조서를 받든 이가 어사대부 화흠이었다고 하고, 『위서』는 선양 때 그가 단에 올라 의식을 돕고 황제의 옥새를 받들었다고 적습니다. 그러나 『화교보서』는 신하들이 모두 작위가 오를 때 화흠만은 언짢은 낯빛 때문에 사도로 옮기기만 하고 작위가 오르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까닭을 묻는 조비에게 진군이 「신은 상국과 함께 한나라를 섬겼기에 마음은 기뻐도 의리가 얼굴에 드러난 것」이라 답하자 조비는 크게 기뻐하며 그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화흠은 본래 맑고 가난해 녹봉과 하사품을 친척과 옛 벗에게 나누어 주어 집에 한 섬의 곡식도 없었습니다. 공경들이 죄인의 집에서 몰수한 종을 함께 받았을 때 화흠만은 그들을 풀어 시집보냈고, 사도가 나물만 먹는다는 것을 안 조비는 임금의 옷을 내리고 그 처자에게도 옷을 지어 주었습니다. 진군은 「화공 같은 이는 두루 통하되 교만하지 않고, 맑되 모나지 않다」고 탄복했습니다. 황초 4년(223) 홀로 도를 지키는 군자를 천거하라는 조서에 관녕을 천거했습니다. 황초 7년(226) 조예가 즉위하자 박평후로 올려 봉하고 태위로 삼았는데, 그가 병을 핑계로 관녕에게 자리를 넘기려 하자 조예는 허락하지 않고 큰 조회에 산기상시 무습을 보내 억지로 나오게 했습니다. 태화 4년(230) 조진이 자오도로 촉을 치자 화흠은 나라는 백성을, 백성은 입고 먹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며 먼저 다스림에 마음을 쓰라고 상소했고, 마침 가을비가 크게 내려 조예는 조진을 불러들였습니다.

태화 5년(231) 화흠이 죽자 시호를 경후라 했고, 『위서』는 그때 나이가 일흔다섯이었다고 적습니다. 아들 화표가 뒤를 이었고, 앞서 조비가 그의 봉읍을 나누어 아우 화집을 열후로 봉했습니다. 『화교보서』는 손자 화교가 『후한서』를 지어 좋은 사관이라 일컬어졌다고 적습니다. 진수는 「화흠은 맑고 순수하며 덕이 소박했다」고 평했고, 『부자』는 「화 태위는 그 지혜는 따라갈 수 있으나 그 맑음은 따라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鍾繇開達理幹,華歆清純德素,王朗文博富贍,誠皆一時之俊偉也
종요는 트이고 일을 다스리는 재간이 있었고, 화흠은 맑고 순수하며 덕이 소박했고, 왕랑은 글이 넓고 넉넉했으니, 참으로 모두 한 시대의 준걸이다『삼국지』 위서 종요화흠왕랑전 평
若華公,可謂通而不泰,清而不介者矣
화공 같은 이는 두루 통하되 교만하지 않고, 맑되 모나지 않다고 할 만하다『삼국지』 위서 화흠전 배송지 주의 『화교보서』에 실린 진군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29회 · 제56회 · 제66회 · 제69회 · 제78~80회 · 제91회 · 제94회 · 제99회

연의에서 화흠은 제29회에 처음 나옵니다. 건안 4년 손책이 여강을 빼앗고 유훈을 깨뜨린 뒤 우번을 시켜 예장에 격문을 보내자 예장태수 화흠이 항복했다고 한 줄로 적힙니다. 제56회에서는 동오에 머물다가 고옹의 건의로 손권의 표문을 들고 허도로 가서 유비를 형주목으로 삼아 달라고 청합니다. 동작대 잔치에서 이 소식을 들은 조조가 붓을 떨어뜨리고, 정욱의 꾀대로 화흠을 조정에 붙들어 두고 대리시경으로 삼습니다.

제66회에서 상서령 화흠은 군사 5백을 이끌고 뒤쪽 전각으로 들어가 벽을 헐고 숨어 있던 복황후를 찾아내, 손수 황후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내며 「위공에게 가서 하소연하라」고 꾸짖습니다. 연의는 여기서 밭을 매다 나온 금덩이를 화흠이 주워 보고 귀인의 행차를 구경하러 책을 버리고 나가자 관녕이 자리를 갈라 앉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천 년 동안 욕을 먹으며 용의 머리를 비웃게 되리라는 시로 그를 나무랍니다. 제69회에서는 어사대부가 됩니다.

제78회에서는 두통에 시달리는 조조에게 화타를 천거하고, 조조가 죽자 허창에서 달려와 헌제를 윽박질러 받아 낸 조서로 조비를 위왕에 세웁니다. 제79회에서 상국이 되어 장례에 오지 않은 조식을 벌하자 하고, 조식의 재주를 시험해 못하면 죽이라고 부추깁니다. 이어 이복 · 허지 · 왕랑 등과 함께 헌제에게 선양을 아뢰러 들어갑니다. 제80회에서는 헌제의 용포 자락을 붙잡고 「허락하든 말든 어서 한마디 하라」고 윽박지르고, 수선대를 쌓자고 건의하며, 선양이 끝나자 칼자루를 쥐고 헌제를 가리키며 곧장 떠나라고 소리칩니다. 조비가 황제가 되자 사도가 됩니다.

제91회에서 태위가 된 화흠은 사마의가 모반한다는 방이 붙자, 태조가 사마의는 매처럼 보고 이리처럼 돌아보니 병권을 맡기지 말라 했다며 곧 없애야 한다고 아뢰고, 끝내 그를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제94회에서는 조진이 거듭 지자 천자가 몸소 나서야 한다고 아뢰고, 제99회에서는 양부와 함께 장마 속의 원정을 거두라고 상소합니다. 연의에서 화흠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89영제가 죽고 하진이 정사를 돕게 되자 부름을 받아 상서랑이 되었습니다.
  2. 190동탁이 천자를 장안으로 옮기자 남전을 거쳐 남양의 원술에게 갔습니다.
  3. 199예장태수로서 손책이 오자 두건 차림으로 나가 맞았고 윗손님의 예를 받았습니다.화흠의 두건
  4. 200관도의 조조가 표를 올려 부르자 손권을 달래 북쪽으로 떠났습니다.
  5. 214상서령으로서 벽 속에 숨은 복황후를 끌어냈다고 『후한서』 황후기는 적습니다.
  6. 217위나라의 어사대부가 되었습니다.
  7. 220조비가 선양을 받을 때 단에 올라 옥새를 받들었고 사도가 되었습니다.한이 문을 닫다
  8. 223홀로 도를 지키는 군자로 관녕을 천거했습니다.
  9. 226조예가 즉위하자 박평후로 올려 봉해지고 태위가 되었습니다.
  10. 230조진의 촉 원정을 두고 먼저 다스림에 마음을 쓰라고 상소했습니다.
  11. 231일흔다섯에 죽어 시호를 경후라 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우 화집 · 아들 화표 · 화박 · 화주 · 손자 화이 · 화교 · 화담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위의 삼공이오.

말을 열며

예법을 아는 자와 말하고 싶소.

되받으며

조정의 격에 맞게 답하겠소.

말문이 막혀

…자리가 흔들리는구려.

말문이 막혀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설전을 이기고

명분이 있는 자가 이기는 법이오.

설전에 지고

…내 이름이 또 더럽혀지는구려.

이긴 뒤

청빈해도 이길 줄은 아오.

진 뒤

…또 무릎을 굽혀야겠구려.

쓰러지며

갈건을 쓰고 나아갔던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