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섭士燮

자 위언(威彦) · 137년 ~ 226년 · 교주 창오군 광신현 · 한 세력의 주인

사섭 초상

교지를 마흔 해 넘게 지키며 피란 온 선비들을 품은 남쪽의 태수

능력치

통솔53무력31지력78정치90매력89

카드

공격력 3체력 3비용 3값어치 10직군 능리
회유 비용 3
체력 2 이하인 적 하나를 내 편으로 만든다
내응 비용 4
비밀 · 적이 비용 3 이하 장수를 소환할 때 · 그 장수가 내 편으로 선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오서 사섭전 · 보즐전 · 여대전 · 설종전 · 정병전 · 촉서 허정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신선전』 · 『영릉선현전』 · 손성의 논 · 위서 무제기 주의 『조만전』

사섭은 자가 위언이며 창오군 광신현 사람입니다. 조상은 본래 노나라 문양 사람이었는데 왕망의 난 때 교주로 피해 왔고, 여섯 대를 내려와 아버지 사사에 이르렀으며 사사는 환제 때 일남태수를 지냈습니다. 사섭은 젊어서 도읍에 가 배우며 영천의 유자기를 섬겨 『춘추좌씨전』을 익혔습니다. 효렴으로 천거되어 상서랑이 되었으나 공무의 일로 벼슬을 잃었고, 아버지의 상을 마친 뒤 무재로 천거되어 무현령을 거쳐 교지태수가 되었습니다.

아우 사일은 처음에 군의 독우였는데, 교주자사 정궁이 도읍으로 불려 갈 때 정성껏 배웅해 정궁이 사도가 되자 그를 불렀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에 따르면 사일은 사도 황완에게 마음을 다했다가 동탁의 미움을 사 벼슬이 오르지 못했고, 동탁이 관중으로 들어가자 고향으로 달아나 돌아왔습니다. 교주자사 주부가 이민족 도적에게 죽어 주와 군이 어지러워지자, 사섭은 표를 올려 사일을 합포태수로, 그다음 아우인 서문령 사유를 구진태수로, 사유의 아우 사무를 남해태수로 삼게 했습니다.

사섭은 너그럽고 겸손해 선비를 아랫사람으로 대했으므로 난을 피해 그에게 의지한 중원의 선비가 백을 헤아렸습니다. 『춘추』를 즐겨 읽어 주석을 달았습니다. 진국의 원휘는 상서령 순욱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학문이 넓고 정사에도 밝아 큰 난리 속에서 한 군을 온전히 지켜, 스무 해 넘게 국경에 일이 없고 백성이 생업을 잃지 않았다며 하서를 지킨 두융도 그보다 낫지 않다고 했습니다. 허정전은 손책을 피해 교지로 온 허정을 사섭이 두터이 공경해 대했다고 적고, 정병전은 교주로 피란한 정병을 사섭이 장사로 삼았다고 적으며, 설종도 어려서 교주로 피란해 유희에게서 배웠습니다. 『영릉선현전』에 따르면 유파는 교지에 왔다가 사섭과 뜻이 맞지 않아 장가 길로 떠났습니다.

형제가 나란히 군의 태수가 되어 한 주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니, 만 리 밖 외진 곳에서 그 위세가 비길 데가 없었습니다. 드나들 때는 종과 경쇠를 울리고 피리와 북이 따르며 수레와 기병이 길을 메웠고, 수레 곁에서 향을 피우는 호인이 늘 수십이었습니다. 아내와 첩은 휘장 수레를 타고 자제들은 군사와 기병을 거느려 온갖 이민족을 떨게 하니, 사섭전은 남월의 조타도 그보다 낫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갈홍의 『신선전』은 사섭이 병으로 죽은 지 사흘 만에 선인 동봉이 준 환약을 먹고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싣습니다.

주부가 죽은 뒤 한나라는 장진을 교주자사로 보냈으나 장진도 부장 구경에게 죽었고, 형주목 유표는 영릉의 뇌공을 보내 장진을 대신하게 하고 오거를 창오태수로 삼았습니다. 한나라는 사섭에게 옥새를 찍은 글을 내려 「역적 유표가 또 뇌공을 보내 남쪽 땅을 엿본다」며 그를 수남중랑장으로 삼아 일곱 군을 감독하게 하고 교지태수를 그대로 맡겼습니다. 뒤에 사섭이 아전 장민을 보내 도읍에 공물을 바치자, 길이 끊긴 난리에도 공물을 거르지 않았다 하여 다시 안원장군으로 삼고 용도정후에 봉했습니다. 위서 무제기 주의 『조만전』은 조조가 교주로 피한 원충과 환소의 일로 태수 사섭에게 사람을 보내 그 집안을 모두 죽이게 했다고 적습니다. 설종이 뒤에 올린 글은 구진에서 태수가 죽는 난리가 나자 사섭이 군사를 보내 쳤으나 끝내 이기지 못했다고 적습니다.

건안 15년(210) 손권이 보즐을 교주자사로 보내자 사섭은 형제를 이끌고 그 지휘를 받들었고, 다른 마음을 품은 오거를 보즐이 베자 손권은 사섭에게 좌장군을 더했습니다. 건안 말년에 사섭은 아들 사흠을 볼모로 보냈고, 손권은 사흠을 무창태수로 삼았습니다. 사섭이 또 익주의 호족 옹개 등을 꾀어 멀리 동쪽에 붙게 하자 손권은 그를 위장군으로 올리고 용편후에 봉했습니다. 사섭은 사신을 보낼 때마다 여러 향과 고운 갈포를 천 단위로 바치고, 진주 · 유리 · 비취 · 대모 · 무소뿔 · 상아 같은 보배와 파초 열매 · 야자 · 용안 같은 과일을 해마다 거르지 않았으며, 손권은 그때마다 편지를 써서 두터이 상을 내렸습니다. 사섭은 군에 마흔 해 넘게 있다가 황무 5년(226) 아흔 살로 죽었습니다.

손권은 교지가 멀다 하여 주를 나누어 여대를 광주자사로, 대량을 교주자사로 삼고, 진시를 보내 사섭 대신 교지태수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사섭의 아들 사휘는 스스로 교지태수라 일컫고 집안의 군사를 일으켜 대량을 막았고, 대량을 맞으라 간한 아전 환린을 매질해 죽였습니다. 조서를 받은 여대가 밤낮으로 달려와 사일의 아들 사광을 보내 죄를 인정하면 태수 자리는 잃어도 다른 근심은 없으리라고 달래자, 사휘의 형 사지와 아우 사간 · 사송 등 여섯은 웃통을 벗고 나와 맞았습니다. 여대는 이튿날 아침 장막을 치고 사휘 형제를 차례로 들게 한 뒤 조서를 읽어 죄를 세고 묶어 내다 모두 베었습니다. 사일 · 사유 · 사광은 뒤에 나와 볼모로 있던 사흠과 함께 서인이 되었으나, 몇 해 뒤 사일과 사유는 법에 걸려 죽었고 사흠은 아들 없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배송지는 손성의 말을 들어, 믿음을 주어 항복하게 하고는 죽여 공을 노린 여대를 꾸짖습니다. 진수는 「사섭은 남월을 지키며 평생 넉넉히 지냈으나, 아들에 이르러 삼가지 않아 스스로 흉한 허물을 불렀다」고 평했습니다.

士燮作守南越,優遊終世,至子不慎,自貽兇咎
사섭은 남월을 지키며 평생 넉넉히 지냈으나, 아들에 이르러 삼가지 않아 스스로 흉한 허물을 불렀다『삼국지』 오서 사섭전 평
處大亂之中,保全一郡,二十餘年疆埸無事,民不失業
큰 난리 속에서 한 군을 온전히 지켜 스무 해 넘게 국경에 일이 없고 백성이 생업을 잃지 않았다『삼국지』 오서 사섭전에 실린 원휘의 편지

삼국지연의

연의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모종강본 120회 어디에도 사섭의 이름은 보이지 않고, 제29회에서 손책이 우길을 꾸짖으며 든 옛 교주자사 장진의 이야기에 그가 다스리던 교주가 한 번 스칠 뿐입니다.

생애

  1. 210손권이 보낸 교주자사 보즐이 이르자 형제를 이끌고 그 지휘를 받들었습니다.남쪽의 사왕
  2. 210다른 마음을 품은 창오태수 오거를 보즐이 베자 손권이 그에게 좌장군을 더했습니다.
  3. 226교지군에 마흔 해 넘게 있다가 아흔 살로 죽었습니다.
  4. 226손권이 진시를 보내 그를 대신하게 하자 아들 사휘가 스스로 교지태수라 일컬었습니다.
  5. 226여대가 사휘 형제를 달래 나오게 한 뒤 모두 베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사사 · 아우 사일 · 사유 · 사무 · 아들 사흠 · 사휘 등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남쪽에서 왔소이다.

말을 열며

남쪽 끝에서 왔소. 싸움보다 다스림을 아오.

되받으며

사십 년 태평이 내 답이오.

말문이 막혀

…중원의 말은 맵구려.

말문이 막혀

태평에는 인내가 필요하오.

설전을 이기고

다스림이 칼보다 오래가오.

설전에 지고

먼 길을 왔으니 배우고는 가오.

이긴 뒤

남쪽은 오늘도 평온하오.

진 뒤

…사십 년이 흔들리는구려.

쓰러지며

남쪽 사십 년, 조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