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미상 · 미상 ~ 197년 무렵 · 양주 장액군 · 동탁 휘하
동탁 사후 이각과 함께 장안을 유린하며 후한 정권을 붕괴시킨 군벌
출전 · 『삼국지』 위서 동탁전과 배송지 주의 『영웅기』 · 『전략』 · 위서 여포전 배송지 주의 『영웅기』 · 『후한서』 동탁전과 이현 주의 원굉 『후한기』 · 헌제기 · 주준전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영웅기』는 곽사를 장액 사람이라 하고, 『후한서』는 그의 다른 이름이 다였다고 적습니다. 그래서 이각은 그를 곽다라 불렀습니다. 자는 전하지 않습니다. 제 전은 없고 『삼국지』와 『후한서』의 동탁전 끝에 이각과 함께 그의 일이 붙어 있습니다. 동탁의 사위 우보가 섬에 군사를 두었을 때 곽사는 그 밑의 교위로 이각 · 장제와 함께 진류와 영천의 여러 현을 노략했고, 『후한서』 주준전은 동탁이 이각 · 곽사 등 수만을 보내 하남에서 주준을 막게 하자 맞서 친 주준이 그들에게 깨졌다고 적습니다.
초평 3년(192) 동탁이 죽자 곽사는 가후의 말을 따른 이각 등과 함께 장안을 쳤습니다. 『영웅기』에 따르면 곽사가 성 북쪽에 있을 때 여포가 성문을 열고 나와 「군사를 물리고 몸으로만 승부를 가리자」고 하여 둘이 홀로 맞붙었는데, 여포의 창에 곽사가 찔리자 뒤따르던 기병들이 나와 그를 구했고 둘은 그대로 물러났습니다. 장안을 빼앗은 뒤 곽사는 후장군 · 미양후가 되어 이각 · 번조와 함께 조정을 쥐었습니다. 『후한서』는 장안에 대낮에도 도적이 그치지 않자 세 사람이 성안을 셋으로 나누어 저마다 지켰으나 막지 못했고, 그 자제들이 백성을 괴롭혔다고 적습니다. 흥평 원년(194) 곽사는 이각의 조카 이리 · 번조와 함께 장평관 아래에서 마등과 한수를 깨뜨렸고, 그해 풍익의 강족이 일어나자 번조와 함께 쳐서 깨뜨렸습니다. 이각은 곽사와 번조에게도 부를 열게 해, 삼공과 함께 여섯 부가 인재를 천거하게 되었습니다.
흥평 2년(195) 이각이 번조를 죽이자 장수들이 서로 의심했고, 곽사와 이각은 군사를 다스려 서로 쳤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전략』과 이현 주에 인용된 원굉의 『후한기』에 따르면, 이각이 자주 곽사를 불러 술을 먹이고 묵어 가게 하자 곽사의 아내는 이각이 남편에게 계집종과 첩을 주어 자신의 사랑을 빼앗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이각이 음식을 보내오자 아내는 메주콩을 독이라며 골라 보이고 「한 둥지에 두 수컷이 살 수 없다」고 했고, 뒷날 이각의 집에서 크게 취한 곽사는 독을 먹은 줄 알고 똥물을 짜 마셔 풀었다고 합니다.
곽사는 안서장군 양정과 함께 천자를 제 진영으로 맞으려 했으나 이각이 먼저 천자를 데려갔습니다. 천자가 태위 양표 · 사공 장희 등 십여 명을 보내 화해시키려 하자 곽사는 그들을 붙잡아 두었고, 양표가 「한 사람은 천자를 겁박하고 한 사람은 공경을 볼모로 잡으니 이것이 될 일이냐」고 하자 손수 베려다 좌우의 만류로 그쳤습니다. 『후한서』 주준전은 이때 붙잡힌 대사농 주준이 성품이 굳세어 그날로 병이 나서 죽었다고 적습니다. 곽사는 이각을 쳐서 화살이 천자 앞까지 닿고 이각의 귀를 꿰었으나, 이각의 부장 양봉이 구하러 오자 물러났습니다. 화해를 권하러 온 황보력의 말에는 곧 따랐습니다.
장제의 화해로 천자가 동쪽으로 길을 떠나자 곽사는 거기장군이 되어 양정 · 양봉 · 동승과 함께 수레를 모셨으나, 다시 천자를 위협해 미로 옮기려 했다가 다른 장수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후한서』 헌제기는 그해 10월 곽사가 부장 오습을 시켜 밤에 천자가 묵던 학사를 불사르게 했고, 양정 · 양봉이 곽사와 싸워 깨뜨렸다고 적습니다. 곽사는 군사를 버리고 이각에게 돌아가 다시 손잡았고, 함께 천자를 뒤쫓아 홍농의 동간에서 동승 · 양봉을 크게 깨뜨렸습니다.
천자가 허로 도읍을 옮긴 뒤 곽사는 제 부장 오습의 습격을 받아 미에서 죽었습니다. 『삼국지』는 이 일을 건안 2년(197) 이각이 토벌된 일 바로 뒤에 해를 밝히지 않고 적고, 『후한서』도 해를 따로 적지 않습니다. 진수가 따로 남긴 평은 없습니다. 이각 · 곽사가 장안을 쥐었을 때 주준은 「이각 · 곽사는 어린 놈들이고 번조는 용렬한 자라 멀리 내다보는 꾀가 없다」고 했습니다.
傕、汜小豎,樊稠庸兒,無他遠略柰何君臣分爭,一人劫天子,一人質公卿,此可行邪『삼국연의』 제3회 · 제5~6회 · 제9~11회 · 제13~14회 · 제17회
연의에서 곽사는 제3회에 동탁이 낙양으로 이끌고 간 장수 가운데 하나로 처음 이름이 나옵니다. 제5회에서는 이각과 함께 태부 원외의 집안을 몰살하고 사수관을 지키며, 제6회에서는 낙양의 백성을 장안으로 몰아가고 형양에서 동탁을 쫓던 조조를 오른쪽에서 칩니다. 제9회에서 이각 · 장제 · 번조와 함께 미오를 지키다 동탁이 죽자 양주로 달아나고, 가후의 말을 좇아 장안으로 쳐들어갑니다. 이각의 꾀대로 여포의 뒤를 쳐서 북을 울리면 나아가고 징을 치면 물러나기를 되풀이해 여포를 지치게 하고, 성이 떨어지자 선평문 누각에서 뛰어내린 왕윤을 이각과 함께 죽입니다. 제10회에서는 후장군이 되어 이각과 함께 조정을 쥐고, 제11회에서는 이각과 함께 여포의 처자를 숨겨 준 방서를 죽입니다.
제13회에서 양표는 헌제의 밀조를 받아 아내를 곽사의 집에 보내, 곽사가 이각의 부인과 정을 통한다고 곽사의 아내에게 귀띔하게 합니다. 의심이 든 곽사의 아내는 이각이 보낸 술상에 몰래 독을 넣어 개에게 먼저 먹여 죽게 해 보이고, 이각의 집에서 취해 돌아와 배를 앓는 곽사에게 똥물을 먹여 토하게 합니다. 노한 곽사는 이각을 치고, 궁에 들어가 궁녀들을 잡아가며 궁전을 불사릅니다. 진 앞에서는 이각과 단둘이 열 합을 겨루고, 화해하러 온 양표 · 주준 등 육십여 명을 「이각이 천자를 겁박하는데 나라고 공경을 겁박하지 못하랴」 하며 붙잡아 둡니다. 황보력에게는 이각이 천자를 내보내면 공경을 놓겠다고 합니다. 이각은 그를 「곽아다」라 부르며 말 도둑이라 깎아내립니다.
장제가 화해를 붙이자 공경을 놓아 주지만, 천자가 다리를 지나가자 장제를 속여 넘기고 천자를 다시 미오로 끌고 가려던 참이었다며 다리를 지킨 두 장수를 베고 뒤쫓습니다. 화음에서 양봉의 장수 서황에게 부장 최용을 잃고 동승에게도 지자, 이각과 다시 합쳐 동간에서 크게 이기고 옷가지를 길에 던져 이락의 군사를 흩뜨립니다. 제14회에서 조조에게 크게 지고 이각과 함께 산으로 들어가 도적이 되며, 제17회에서 오습이 곽사를 죽여 그 머리를 조조에게 바칩니다. 연의에서 곽사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내(이름 미상)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장안의 절반은 내 것이다.
장안 절반은 내 것이었다.
도적이라 불러도 좋다. 이기면 그만이지.
…이각 놈이 또 뒤통수를 노리나.
빼앗기면 도로 뺏으면 된다.
난세의 법도다.
천자를 놓친 그날 같군….
내 앞을 막을 자가 있느냐!
…이각에게 또 밀리는군.
이각과 나눈 천하가… 이 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