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張燕

자 미상 · 미상 ~ 미상 · 기주 상산국 진정현 · 한 세력의 주인

장연 초상

백만 흑산적을 이끌다 조조에게 투항한 비연(飛燕)

능력치

통솔80무력81지력54정치48매력62

카드

공격력 5체력 5비용 4값어치 12직군 맹장
포효 호령
적 하나가 다음 국면 공격하지 못한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장연전과 배송지 주의 『구주춘추』 · 『전략』 · 『진혜제기거주』 · 무제기 · 여포전 · 장료전 · 『후한서』 주준전 · 원소전 · 여포전 · 공손찬전 · 영제기 · 헌제기

장연은 상산국 진정현 사람으로 본래 성은 저씨였습니다. 황건이 일어나자 젊은이들을 모아 도적이 되어 산과 못 사이를 돌며 치다가 진정으로 돌아오니 무리가 만여 명이었습니다. 박릉의 장우각도 무리를 일으켜 장연과 합쳤는데, 장연은 장우각을 우두머리로 받들고 함께 영도를 쳤습니다. 장우각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어 가며 무리에게 반드시 장연을 우두머리로 삼으라 했고, 무리가 그 말대로 장연을 받들었으므로 장연은 성을 장씨로 바꾸었습니다. 『후한서』 영제기는 중평 2년(185) 흑산의 장우각 등 열 몇 무리가 함께 일어나 곳곳을 노략했다고 적습니다. 『삼국지』는 장연이 사납고 날래며 빠르기가 남보다 뛰어나 군중에서 비연이라 불렀다고 적고, 『후한서』 주준전은 날래고 용감하며 사졸의 마음을 잘 얻었다고 적습니다.

『구주춘추』에 따르면 장각이 일어난 뒤로 흑산 · 백파 · 황룡 · 비연 · 우독 등 이름도 가지가지인 무리가 저마다 일어났는데, 큰 무리는 2, 3만이고 작은 무리도 수천이 넘었습니다. 『전략』은 이들이 본래 벼슬아치 집안이 아니어서 서로 별명을 지어 불렀다며, 흰 말을 탄 이를 장백기, 날랜 이를 장비연, 목소리가 큰 이를 장뇌공이라 했다고 적습니다. 그 뒤 무리가 점점 늘어 상산 · 조군 · 중산 · 상당 · 하내의 산골짜기가 서로 통했고, 작은 우두머리 손경 · 왕당 등이 저마다 무리를 이끌고 장연을 따르니 무리가 백만에 이르러 「흑산」이라 불렸습니다. 영제는 이들을 칠 수 없었고 하북의 여러 군이 해를 입었습니다. 장연이 사람을 도성에 보내 항복을 청하자 조정은 그를 평난중랑장으로 삼았고, 『후한서』는 하북의 여러 산골짜기 일을 맡기고 해마다 효렴과 계리를 천거할 수 있게 했다고 적습니다. 그러나 장연은 뒤에 하내를 노략하며 도성 가까이 다가왔고, 조정은 주준을 하내태수로 내보내 그를 물리쳤습니다.

동탁이 천자를 장안으로 옮기고 천하에 군사가 일어나자 장연은 무리를 이끌고 호걸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원소와 공손찬이 기주를 다투자 장연은 장수 두장 등을 보내 공손찬을 도왔으나 원소에게 졌습니다. 『후한서』 원소전은 원소가 흑산의 여러 무리를 친 뒤 상산에서 장연과 도각 · 안문의 오환을 맞아 싸웠는데, 장연의 정병이 수만, 기병이 수천 필이었고 열흘 넘게 싸워 장연의 군사가 많이 죽고 다쳤으나 원소의 군도 지쳐 저마다 물러났다고 적습니다. 『후한서』 여포전은 이때 원소에게 몸을 맡긴 여포가 적토를 타고 성렴 · 위월 등 수십 기와 함께 하루에 서너 번씩 장연의 진에 뛰어들어 목을 베고 나왔고, 열흘 넘게 싸워 장연의 군을 깨뜨렸다고 적습니다. 이 뒤로 장연의 무리는 점점 흩어졌습니다.

건안 4년(199) 봄 장연은 공손찬의 아들 공손속과 함께 군사 10만을 이끌고 세 길로 역경을 구하러 갔으나, 닿기 전에 공손찬이 원소의 매복에 져서 죽었습니다. 건안 9년(204) 업이 떨어진 뒤에는 조조의 장수 장료가 상산을 돌며 흑산의 손경 등을 불러 항복시켰습니다. 조조가 기주를 평정하려 하자 장연은 사자를 보내 왕의 군사를 돕기를 청해 평북장군이 되었고, 무리를 이끌고 업으로 와서 안국정후에 봉해지고 식읍 5백 호를 받았습니다. 『삼국지』 무제기는 건안 10년(205) 여름 4월 장연이 무리 10여만을 이끌고 항복해 열후가 되었다고 적습니다.

장연이 죽자 아들 장방이 뒤를 이었고, 장방이 죽자 아들 장융이 이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진혜제기거주』는 장연의 증손 장림이 진나라에서 조왕 사마륜의 난에 가담해 한 해도 안 되어 상서령 · 위장군에 오르고 군공에 봉해졌으나 곧 사마륜에게 죽었다고 적습니다. 진수는 장연 · 장수 · 장로를 두고 「도적의 무리를 버리고 공신의 반열에 올라 위태로움과 멸망을 벗고 종사를 지켰으니 저들보다 낫다」고 평했습니다.

燕、繡、魯舍群盜,列功臣,去危亡,保宗祀,則於彼為愈焉
장연 · 장수 · 장로는 도적의 무리를 버리고 공신의 반열에 올라 위태로움과 멸망을 벗고 종사를 지켰으니 저들보다 낫다『삼국지』 위서 이공손도사장전 평
燕剽捍捷速過人,故軍中號曰飛燕
장연은 사납고 날래며 빠르기가 남보다 뛰어나 군중에서 비연이라 불렀다『삼국지』 위서 장연전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1회 · 제21회 · 제33~34회

연의에서 장연은 앞에 나서는 장면 없이 몇 번 이름만 스칩니다. 제11회에서 장안에서 쫓겨난 여포가 원소에게 몸을 맡겨 상산에서 함께 장연을 깨뜨렸다는 말이 지나가듯 나옵니다. 제21회에서는 역경에 갇힌 공손찬이 장연에게 몰래 글을 보내 불을 올려 안팎에서 치자고 약속하는데, 글을 가져가던 이가 원소에게 붙잡혀 그 불이 오히려 공손찬을 꾀어내는 미끼가 되었다고 만총이 조조에게 아룁니다. 제33회에서 조조가 원담을 베고 남피에 들어서자 「흑산적 장연」이 군사 10만을 이끌고 와 항복하고 평북장군이 됩니다. 조조는 이어 이전 · 악진에게 장연과 함께 병주의 고간을 치게 하고, 세 장수는 호구관에서 막혀 조조에게 알립니다. 제34회에서 조조가 업에 동작대를 쌓게 하며 조식과 조비를 남겨 둘 때 장연에게 북쪽 진채를 지키게 합니다. 연의에서 장연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85흑산의 장우각과 합쳐 일어났고, 장우각이 죽자 그 무리를 이으며 성을 장씨로 바꾸었습니다.
  2. 193상산에서 원소 · 여포와 열흘 넘게 싸우다 많은 군사를 잃고 물러났습니다.
  3. 199공손찬의 아들 공손속과 군사 10만을 이끌고 세 길로 역경을 구하러 갔습니다.
  4. 205사자를 보내 조조의 군을 돕기를 청해 평북장군이 되었습니다.흑산의 비연
  5. 205무리 10여만을 이끌고 업으로 와 항복해 안국정후에 봉해졌습니다.업으로 모여든 두 장수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장방 · 손자 장융 · 증손 장림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흑산의 비연이다!

말을 열며

흑산 백만이 내 뒤에 있소.

되받으며

산에서 구르던 몸이라 말도 날렵하오.

말문이 막혀

…산세가 험하군.

말문이 막혀

제비는 떨어지지 않소.

설전을 이기고

비연이라 불리는 까닭이오.

설전에 지고

산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오.

이긴 뒤

산을 날듯 지나왔다!

진 뒤

…산으로 돌아가야겠군.

쓰러지며

산을 날던 몸이 여기 눕는다.